[잠깐! 이 저자] "과학, 연구실에나 있는 서양 것이라고?"
- [잠깐! 이 저자] "과학, 연구실에나 있는 서양 것이라고?"
- 《담장 속의 과학》 펴낸 이재열 경북대 교수
옛집, 겨울엔 추워서 싫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온도 변화 적응력 갖춰야 아파트는 면역력 떨어뜨려
- 이재열 교수는“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분수를 지키는 우리네 옛 생활방식이 진정한 과학이었다”고 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서울대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평생 미생물을 연구한 경북대생명과학부 이재열(59) 교수. 그가 2년간 추사(秋史) 고택과 안동 하회마을 등 옛집을 돌아다니며 전통 의식주에 깃든 과학의 원리를 담은 《담장 속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을 펴냈다.
"과학은 서양의 것이고, 연구실과 복잡한 논문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담장 안에서 과학은 늘 우리와 함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미생물학이나 대기순환을 따로 공부했겠습니까.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경험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게 살아온 것뿐이죠. 그런데 알고 보면 거기에 엄청난 과학이 숨어 있는 겁니다."
옛날 집의 단점은 '웃풍'. 창호지로 바른 문과 흙벽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현대인들은 시멘트벽에 단열재를 심고 이중창과 베란다를 만들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추방된 웃풍이지만, 환풍과 습도조절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공간 과학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겨울에는 추워 싫다고? 이 교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온도 변화에 견디는 적응력을 갖춰야 건강할 수 있다. 지금의 아파트는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집의 형태다"라고 했다.
초가집 지붕은 어떤가. 속이 빈 볏짚은 열을 잘 간직해, 초가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창호지 문 역시 방 안의 열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온돌은 열의 전도를 이용한 복사 난방 방식으로 빠른 시간에 공기 전체를 데워주고 습기 걱정, 화재 위험을 잡는다. 온돌의 열효율은 30% 정도. 조상들은 이 비효율성을 보완하기 위해 아궁이 위에 가마솥을 얹어 밥을 짓고 물을 끓였다.
발효음식에 담긴 과학, 콩이나 녹두를 갈아 만든 '비루'(飛陋·오늘날의 비누)의 세척력과 일본에까지 전파됐다는 천연염료 등 책에는 옛 방식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옛것을 새롭게 보는 시선은 그가 자라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쭉 서울에서 자랐죠. 독일 유학시절부터 시작된 아파트 생활이 30년째고요. 옛날 방식대로 흙집을 짓고 텃밭도 가꾸는 삶이 그렇게 좋아 보였어요."
이 교수는 이 책이 옛 방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리네 생활방식이 꽤 과학적이었다는 사실, 그 속에서 현대 생활에 응용할거리가 아주 많다는 점 정도만이라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미생물의 세계》 등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 6권의 책을 썼고, 2004년에는 우리 불교 문화재를 다룬 《불상에서 걸어나온 사자》를 펴냈다. 이 과학자로 하여금 연구활동 틈틈이 글을 쓰게 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내 자식을 포함해 요즘 젊은이들 너무 책을 안 읽어요. 문·이과로 철저히 나뉜 교육과정 때문에 문과생은 과학서를, 이과생은 인문학을 멀리하죠. 교수들도 책 안 읽는다고 타박만 할 게 아니라, 이들이 읽을 책을 남겨야 합니다. 학생들이 쉽고 재밌게 학자들의 지적 성취를 빨아들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서울 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기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 플랑크 생화학 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경북 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모두 어렵다고 말하는 미생물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보물』『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미생물의 세계』『우리 몸 미생물 이야기』『자연의 지배자들』『보이지 않는 권력자』등 미생물과 바이러스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그 외에『불상에서 걸어나온 사자』를 썼고, 『파스퇴르』(공역)『미생물의 힘』(공역)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