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차 한잔의 여유

경북대 이재열 교수 닫힌 아파트에서 열린 한옥을 그리워하다

▪살림문화재단▪ 2013. 4. 15. 23:11

 

 

 

<담장 속의 과학> 경북대 이재열 교수 닫힌 아파트에서 열린 한옥을 그리워하다컬쳐/피플/ 룰루랄라웰빙이야기

미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눈으로 옛집을 바라본 결과는? 여행 삼아 연구 삼아 오래된 한옥을 찾아다니며 쓴 <담장 속의 과학>은 열린 공간이었던 전통 가옥 안에 가득한 지혜를 주목한다. 유년 시절을 보낸 북촌 마당집을 그리워하는 그의 현실적인 대안은 닫힌 아파트를 조금이나마 열린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생활방식이 가장 과학적이라는 사실은 우리 아파트人을 숙연하게 한다.
요즘 ‘귀향’이다 뭐다 해서 교외로 나가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지요? 하지만 마음은 굴뚝같아도 직업이나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살기 어려운 사람이 훨씬 많겠지요. 그렇다면 아파트를 격리된 콘크리트 상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공간의 여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아파트가 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넓지 않거든요. 사랑채, 안채 등으로 나뉘어 있던 옛날 집을 떠올려보면 훨씬 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아파트가 사람의 건강에 좋은 형태는 아니라고 해도 집 모양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집안의 사람들이 편안하고 바깥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옛날에는 울타리 너머로 마당이 보일 정도로 담장이 낮았습니다. 담장 너머로 발돋움하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어 인사도 나누고 안부를 물었지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양방향 소통이 아닐까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돌과 흙을 섞어 담장을 쌓아올리면서 기와나 전돌을 드문드문 넣어 ‘꽃담’을 만들기도 했지요. 이런 화려한 꽃담은 궁궐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파트에도 우리네 담장이 등장하더군요. 일반 벽돌 담이 아니라 정말 전통적인 담장이나 꽃담을 세우기도 하더라고요. 전통의 미학을 현대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재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기다란 아파트 벽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타일을 활용해 모자이크를 구현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꽃담 같기도 하고 고구려 벽화 같기도 한 모습….

아파트를 짓는 분들의 생각이 바뀐다면 좀 더 열린 아파트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아파트를 직접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겠지요. 지금 사람들은 새 집으로 이사하더라도 인테리어를 바꾸는 방향으로 생각해버리곤 하지요. 저와 아내 역시 모델하우스에서 전실(前室)에 화초를 놓은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들어와 보니 수챗구멍이 없어 물이 흘러나갈 자리가 없고 북향이라 식물들을 키우기가 어렵더군요. 그저 샘플 주택 그대로 만들고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다 보니 일어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가 봅니다. 업체에서 소비자의 욕구에 귀 기울인다면 아파트 구조가 좀 더 전통적으로, 좀 더 옛집처럼 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집은 열린 집이었어요. 방에 이부자리를 깔면 ‘침실’이 되고, 이불을 개고 책상을 놓으면 ‘공부방’과 ‘서재’가 되고, 밥상을 들이면 ‘식당’이 되었지요. 물론 현대식 집에 산다고 해서 전통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자신의 집을 떠올려보세요. 현관에 들어서면 나오는 거실. 마루 바닥재를 깐 거실에 앉아 과일을 깎아먹으며 TV를 보고, 아이는 옆에서 엎드려 책을 보고 있겠지요.

전통 집에서의 ‘대청마루’는 요즘 아파트의 거실과 같은 곳이에요. 가족이나 손님들이 함께하는 교류의 공간이지요.

알고보면 우린 여전히 온돌방의 생활 방식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전통 가옥에서 방으로 들기 전에 마루를 거치게 되고, 여기서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신분의 차이나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누구든 말입니다. 방 안은 아늑해지고 가구도 방 안 분위기에 맞게 단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뒹굴뒹굴 온돌 바닥을 즐기는 것이지요. 온풍기나 라디에이터보다 훨씬 더 방 안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온돌 난방. 그래서 한국의 아파트는 온수 파이프를 통해 바닥을 데우는 온돌 보일러 형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지에 기름을 먹여 겹겹이 붙인 장판은 아니지만 장판 무늬 바닥재를 좋아하지 않나요? 마치 옛날 대청마루를 재현하고 싶은 것인지 나무 합판을 거실에 깔기도 하지요.
거실 바닥을 진짜 나무로 시공하면 값이 더 올라간다고 하지요. 그렇게 나무판을 깐 마루 위에 입식 생활의 상징인 소파를 올려놓고, 장판이 깔린 온돌방 안의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생활. 정말 생경한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식이로든 우리 마음속에는 전통의 가닥이 남아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네 조상님들이 온돌방을 만들고 나무로 대청마루를 만들면서 누렸던 소소한 생활의 재미들은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온돌방 위 침대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는 이중적인 생활상을 계속하는 한 말이죠.

조상들의 공간이 그때그때 필요한 용도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는 열린 마음에서 출발했듯이 우리 집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한 가지 용도로 썼던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바꾼다면 아파트인 우리 집 역시 살아 숨 쉬는 생활공간이 될 수 있겠지요. 부족한 가운데서도 여유 있게 생각하면서, 생각 사이로 여유를 즐기는 것이 우리 조상님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토가 아니었나 합니다. 전통 생활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는 이어져야 할 무언가가 아니랍니다. 바로 지금을 사는 우리 자신의 것이에요. 그 지혜가 있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미니 정원보다는 화분을 키우세요_ 식물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은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져요. 식물이 없는 공간은 마치 모델하우스 같지요. 아파트 안에 미니 정원을 만들면 보기엔 탐스럽겠지만 그 자체가 인공적입니다. 인공과 자연의 차이는 명백합니다. 오히려 화분을 이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고가구를 쓰세요_고가구는 어디에 놓아도 어울립니다. 세트로 사지 않고 조금씩 놓아도 따로 놀지 않아요. 그리고 누가 봐도 고풍스러운 맛이 나지요. 물론 요즘은 이미테이션을 많이 만들어내는데, 처음엔 빛나도 나중엔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니 조심하세요. 진짜 고가구는 흉내를 못 내는 것이랍니다. 정말 깊은 멋이 나는 건 70년~1백 년 된 것들이에요. 이게 바로 ‘앤티크’지요. 다만 서양 고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아쉽네요. 실제로는 우리의 전통 앤티크도 그만큼 맛과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우리 고가구의 진가를 알고 찾곤 한다죠?
소파를 치우세요_거실 인테리어에 대한 인식이 이미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래요. TV를 놓고, 웨딩 사진을 걸고, 소파를 놓는 등의 뻔한 패턴을 다른 방향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하면 거실은 더욱 열린 공간이 되겠지요.
더욱이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부모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거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소파를 없애보세요. 좁은 공간을 넓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대청마루와는 달리 요즘 거실은 온돌방같이 뜨끈한 바닥이니 고풍의 정을 나눌 수 있겠지요.
인테리어를 완벽하게 하지 마세요_ 화장도 한 듯 안 한 듯한 화장이 잘한 것 아닌가요?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혼부부도, 자기 집이 생긴 사람도 기본 구조부터 뭔가 달라 보이고 싶어 허세를 부리곤 하지요. 얼마나 자연적인 멋, 인간적인 멋이 우러나올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집’이니까요.
환경을 해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세요_ 우리네 전통 건축은 자연과의 일체를 도모하는 환경 친화적인 건축입니다. 창문에 창호지를 바르고, 바닥에는 한지를 여러 겹 붙이고 기름을 먹인 장판지를 까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을 거스르는 재질의 물건을 많이 사들이지 마세요. DIY에 열중하느라 집 안 곳곳에 유해한 페인트를 칠하거나 접착제를 뿌리는 건 본말이 전도된 행동이지요.
텃밭을 만드세요_ 마당이 없더라도 아파트 부녀회나 지역 단체에서 빈터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길러보세요. 물론 경제적으로도, 식생활 면에서도 좋은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마당 있는 옛집의 기억이 떠오를 겁니다. 며칠만 예쁘고 시들어버릴 꽃밭 대신 다양한 채소를 가꾸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텃밭을 만들자고 강력하게 밀어붙이자고요.
‘생태맹’이 되지 마세요_환경보호를 주장하면서 집 안 인테리어를 계절마다 바꾸고 가구도 쉽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더 큰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는 행동을 생각 없이 하는 ‘생태맹’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더 위험해요.
공동 공간을 제안하세요_ 외국 학교의 기숙사에는 공동 세탁실과 건조실이 있어 그곳에서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지요.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에는 공동 장소라는 것이 없어요. 20층 건물이라면 1층 정도는 로비든 뭐든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네 아파트는 모든 곳을 분양해버리고 말지요. 동사무소나 아파트 부녀회에서 신경 써서 아파트 공간 속 한쪽에 공동 면적을 만들도록 제안해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