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단상(한국타임즈)

광복 70돌을 맞는 역사적 진의와 미술계의 동정

▪살림문화재단▪ 2015. 9. 3. 01:54

 

강행원/살림단상칼럼니스트

 

광복 70돌을 맞는 역사적 진의와 미술계의 동정

강행원 (화가/동양미학)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하고, 종교는 박해를 받을수록 확장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본질은 어떤 입장의 박해라도 강제하게 되는 힘의 최후는 결국 끝까지 저항하게 되는 정의(定義)앞을 가로 막거나 넘어설 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광복역시 정의와 저항의 역사 속에서 맞이한 기쁨이기에 그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복70년을 맞아 그 역사적 진의와 미술계가 걸어왔던 오늘의 동정을 함께 점검해 보고자 한다.

 

1. 슬픔도 주고 기쁨도 주고

 

광복은 70년을 맞이한다고 해서 더 특별한 것은 아니다. 여느 해를 막논 하고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명으로서의 다짐을 기념하는 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70년을 수식 한 것은 숫자의 끝이 맞아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광복에의 기쁨이 전재되는 것은 왜 설음을 겪어야 했는가하는 원인에 있다. 광복을 생각하면 미국은 우리에게 구세주로 여기게 되는 최 우방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정서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먼저 슬픔을 제공한 것도 미국의 책략이 가져다준 음모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세계1차 대전 이후 소련이 중국과 연대한 공산주의 힘을 억제하기위하여 미국이 동아시아에 내린 전략으로 일본에 한국을 묶어 소련 방어의 교두보로 삼고자 한데 있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일본으로 하여금 사실상 한국의 강점을 용인한 것이다. 증거는 “1905년 미, 일간에 체결된 카스라 태프트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양국이 동의 했다는 점이다.”<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역사적 원형, 김기정 저 인용>

 

이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된 35년간의 비극에 대한 선열들의 그 고단한 역사는 광복70년을 맞고도 채 잠들지 못하고 있다. 일제에 빌붙어 잘 살던 자들의 친일행각에 비춰진 그림자 역시 제대로 지우지 못한 두 얼굴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일제하에서 미술인들도 국권을 향한 민족자주미술운동을 펼쳤던 저항의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일본제도에 편승한 협력의 역사도 만만치 않았다. 해서 친일화가들은 편히 살 수 있었지만 자주성을 가진 작가들에게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었다.

 

이와 같이 한국이 해방을 맞기까지의 비통한 점철을 밟는 동안 힘이 커진 일본의 야욕은 대동아전쟁(세계 제2차 대전인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맞서보고자 했을 때 한국인은 그 전쟁터에 끌려가 성 노예를 비롯한 강제 노역과 처참한 총알받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던져진 미국의 원폭 투하로 한국은 해방을 맞는다. 미국은 우리에게 슬픔도 주고 기쁨도 준 셈이다. 그 기쁨은 우리에게 일제의 억압보다 진화된 자유이지만 또 다른 미국의 속국 행을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은 한국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핑계 속에 우리는 다시 분단으로 이어지는 그들 책략에 맡겨져야 했다. 소련과 미국은 북녘과 남녘에 김일성과 이승만을 각각 내세워 우리 국토를 양분하여 지금까지 고착시킨 것이다. 갈라진 조국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 한스러움이 외세 때문이고 우리자신들에게는 정작 책임이 없단 말인가? 문제는 우리국민 스스로의 자주의지가 그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데올로기의 탓도 함께 있다.

 

지금까지도 보수와 진보로 갈린 진정한 가치이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1950년 동족상잔이 가져온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터, 70년이 되었어도 이산의 아픈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폐허의 그 위에 아무리 부를 쌓아올렸어도 재생불가의 세계유산이기도한 우리문화재들이 일제의 수탈과 더불어 송두리 채 사라져 버렸다. 이는 세계적인 문화적 손실이며, 우리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한()이다.

 

2. 첫 단추를 잘 못 끼우고

 

돌아보면 광복의 정통성을 세우는 일마저 그르친 이승만 정부의 미술계의 엉뚱한 문화잔치는 1949년 황당하게도 식민문화 그대로의 재현이었다. 이는 남북이 갈리면서 북녘을 택한 예술인들을 잊지 못하는 잡음을 잠재우고, 남녘에 남은 예술인들의 위로와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이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시급한 개최였다. 미술인들에게는 활력의 선물이기는 했으나 기치는 반일(反日)을 표방하고 출범했음에도 일제의 선전(조선미술전람회)방식 그대로 운영되었다. 이는 해방덕분으로 정치적 지배세력이 된 이승만 정권이 지닌 이중성이다.

 

그는 친일을 기반한자들에게는 관대했으나 냉전체재의 반공이념에는 한 치의 틈도 용납지 않았다. 6.25가 비켜갈 수 없었던 첨예한 이유이며, 미국의 빌미 또한 반공이데올로기 수호명령이 곧 노근리 양민학살과 제주 3.4사건의 원흉이기도 했던 점이다. 미국의 조정은 이뿐만 아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채결 과정에서 1차에서 5차까지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문서목록에 포함시켰다가 최종 문건에서 이를 누락시켰다고 한다.”<위키백과 인용>

 

일본이 우리 땅 독도를 놓고 떠드는 이유이다. 몇 세기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불가 한 세기전의 이토 히로부미의 간악한 호전성을 고이지미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다. 우리의 광복70년 기념에 맞춰 일본 역시 종전 70년을 기념하며,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아무리 미국의 영향권 밑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성장이 길들여져 왔다 하더라도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만 정부에서 시작된 문화정책의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채로의 답습은 박정희정부에 이어져, 창작 자율성의 소재적 제약은 한층 강화되고, 권위와 부정은 더욱 심화된 채 운영되어 왔었다. 결국 식민잔재의 국전은 부정부패로 얼룩져 온갖 잡음 끝에 30년을 맞으면서 1982년 전두환 정부에서 폐지된다. 대신 민전개념의 대한민국미술대전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문화예술진흥원으로 이관한다. 그리고 4년 뒤 다시 운영주체를 한국미술협회로 옮겨 비리가 만연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뿌리는 광복과 같이한 긴 세월임에도 여전히 식민문화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한 채 주체성을 혼돈하며 표류하고 있다.

 

광복이후 제도미술은 낙후보다 무서운 것이 의식의 타락이었다. 과도적인 희망은 1980년대 이후부터 제도미술의 오점을 보면서 생긴 국제적인 시각의 개안(開眼)이다. 이로부터 열린 작가들의 폭넓은 해외교류와 진출이 잦아져 시각의 넓이와 깊이가 변모되어왔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활발히 논의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지 향적 미술운동도 점차 퇴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대립각도 융회되어 화단구조의 재편을 가져온 것이다.

 

21세기의 오늘로 이어진 전체국면의 문화현실은 국가경제발전에 비하면 미진하지만 치자(治者)의 철학적인 의지에 따라 성숙도가 얼마든지 신장 될 수 있다. 그것은 그동안 잠재 되었던 가치들을 새롭게 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부가 설치한 야심찬 문화융성위원회는 거창한 이름만 드날릴 뿐 낙후된 문화 혼은 아직도 졸고 있다. 또한 불균형한 복지혜택도 예술인들의 창작생활에 활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국립현대미술관장공석이 8개월여에 이르고 있다. 15명이나 응모했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능력자가 없다는 것이다. 미술도 음악처럼 세계가 함께 공유하는 문화라서 개성적인 조형언어를 창출하는 힘이 곧 한류의 잠재이다. 지금 빛나고 있는 가요와 춤이 결합한 세계무대의 한류에서 오는 힘을 보면 알 것이다. 미술계에도 적극적인 통 큰 투자를 하여 국제적인 유명작가들을 길러낸다면 미래의 동력은 대기업에 거는 기대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광복을 돌아보는 역사의 진의는 더욱 김구선생의 문화예찬을 잊을 수 없게 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생활을 족히 할 만하고,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곧 국격(國格)이며 국력이다. 또한 나라의 얼굴인 동시에 세계가 주목하게 되는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한반도에 처한 오늘의 긴장된 삶이 진정한 광복인가를 생각하며, 미래의 비전은 통일과 문화의 힘만이 성장 동력이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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