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문화재단/살림망[sallim net]의 이모저모

만주를 만나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가 보인다.국제행사편 / 정구선

▪살림문화재단▪ 2010. 2. 8. 16:47

 

만주를 만나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가 보인다(1) | 여행낙수(旅行落穗)
 

전체공개 2006.07.20 14:39
심양시 교육국과 조선족제6중학교(심양국제학교) 교장의 초청을 살림문화재단 "韓國周" 행사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기술교육과 외국어를 교육, 인력수출을 위한 교육기관. 우리의 술학원과 비슷하였지만 그 규모는 엄청났다. 환인현에 있는 이 학교는 수천평의 넓이에 4,000명의 학생이 있었다.               
부여성(五女城)이 있는 桓仁滿族自治縣 거리 

환인거리에는 삼륜자전거가 택시를 대신하고 있었다.

   

부여성의 건물址

부여성의 天池

부여성에서 바라본 강과 호수, 호수는 두 강이 만나는 곳에 한 줄기를 막아서 만든것이다. 


밑에서 바라본 오녀성(부여성).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여 3년만에 즙안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원래 부여성이라고 했는데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하고 난 후 이름이 바뀌었다는데, 이 성에 사악한 오녀가 살아서 당나라가 정벌하였다는 식으로 전설을 조작한 느낌이었다. 

청태조 누루하찌가 있던 궁. 2대까지 있다가 명나라를 치고 북경의 자금성으로 옮겼다.


 

 

韓國周 개막식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한국주행사 저녁만찬

 

 

요란한 폭죽이 터졌다.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본계수동(本溪水洞), 굴안에서 저속의 작은 모타보트로 30분을 넘게 탔다.
 
중국은 여러번 갔었지만, 심양(瀋陽)방문은 나와 만주의 첫 만남이었다.
심양은 병자호란을 맞아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孝宗)이 7년간 볼모가 되어 있었던 곳, 삼학사(三學士)인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가 잡혀와 참형당한곳이기도 하다. 1636년(인조 14년) 청나라를 세운 누루하지(淸太宗)가 10만 대군으로 처들어와 남한산성()을 포위했을 때, 최명길() 등은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했으나 삼학사는 결사항전()을 주장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척화신()으로 선양(陽)에 잡혀가 참형()된 것이다. 심양은 또 일제때 낯익은 이름 봉천으로 알려진 곳. 우리 민족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있는 만주를 정작 이제야 다녀온 것이다. 처음 간 만주에서는 우리에게 잊혀져가고 있었는 고구려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요녕성 심양시에서 한국주(韓國周) 행사가 있었다. 심양시 교육국과 조선족제6중학교(심양국제학교) 교장의 초청을 받은 우리 일행[살림문화재단]은 이우송신부와 한양대학교 오교수, 조선대학교 김용채이사장, 광주여자대학교 오장원총장과 김제남 기획처장,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인 수원대 장영란교수와 나까지 모두 7명이었다. 나와 김용채이사장이 함께 광주에서 올라와 인천공항에서 합류한 우리 일행은 저녁 8시 40분 중국 CZ672편으로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 30분만에 중국 요녕성 선양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마중나온 제6중학교 桂鳳梧교장 일행의 안내를 받아 Kempinski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16일, 살림문화재단 방문단은 조선족제6중학교를 방문하여 교류의정서를 교환하고 오후 6시에 "韓國周" 행사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요란한 폭죽과 함께 심양시민이 모두 쏟아져 나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심양은 특별히 볼것이 없는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무슨 행사만 있으면 저절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서 사람모으는데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저녁에 우리 호텔로 찾아온 광주광역시관광협회장 강원구박사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살림문화재단 일행은 각기 나뉘어 다른 행사에 참석하였다. 나는 공단에서 있었던 한국기업인 초청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만찬후 공단을 둘러보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마쳤다. 계획으로는 환경시설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아마 볼만한 것이 없었던지 슬그머니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다.중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나 주장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인식은 아직 열악한 것 같았다.
우리는 일정도중에 조선족과 한국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사는 서탑(西塔)교회가 있는 서탑거리를 방문하여 "평양동묘향산"이라는 북한식당에서 저녁을 들었는데 온통 한국사람들로 북작대고 있어 최소한 심양에서는 종업원과 손님의 입장이지만 남북이 비교적 막힘없이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잘 아는 광주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일정가운데 청태조 누루하찌가 세운 궁을 찾기도 했으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18일부터는 관광길에 나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부여성을 보기위해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을 찾았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소수민족인 고구려의 건국지로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되기까지 한국사람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 지금은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부여성의 이름도 오녀성(五女城)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5.18현장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험하면서 지배자의 역사란 이렇게 왜곡되어 꾸며지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정보화사회라는 오늘날에도 이럴진데 하물며 옛 역사란 얼마나 왜곡된 것일가. 역사의 진실을 알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중국땅에 있는 우리의 역사를 찾기란 얼마나 힘들 것인가? 고구려의 건국지가 오녀성으로 불려지는 것을 보면서 피부로 느낌이 오는것과 현실사이에 엄청난 괴리를 다시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주에는 분명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가 느낌으로 다가와 민족의 역사가 여기에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Copyright ⓒ 2007 살림문화재단 다석채플 All rights reserved. home to salli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