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방/불가의 도담방

믿고 따를 수 있게 하라

▪살림문화재단▪ 2010. 3. 13. 23:27

 


믿고 따를 수 있게 하라  

◎“지역감정 이번이 마지막 시대의 어둠 탓하지 말고
진신의 등불 밝혀나가자”

지난 12월19일 새벽 라디오로 개표방송을 들으면서 이 땅에 새
로운 변화의 물결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실로 감개가 무량했었다.
험난한 세월을 거쳐 50년만에 국민의 선택으로 정권교체가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우리 생애에서 처음있는 감격적인 일이다. 왕복 2
천5백리 길을 달려가 20년만에 투표에 참가한 것이 허사가 아니었
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해낼 수 있습니다.” 선거기간 중 간
절하게 지지를 호소하던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모습이 미명 속에
떠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평생의 기회는 주어졌지만 나라의 살림살이
는 거덜나서 승리의 축배를 들 여유도 없이 밤잠을 이룰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가 겪어온 인고의 세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같은 시대의 인간동지로서 안쓰러운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회에 새 정부와 새 대
통령에게 몇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이 땅에서 지역간의 갈등은 그
골이 너무도 깊다. 그 뿌리를 캐자면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야겠지만 가까이는 지지기반이 취약한 군사정권이 지역감정에 불을
붙여 대결구도로 집권, 편협한 정치행태를 자행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 사람의 인격과 경륜, 기량과 정책은 묻지 않고 어느 지역 출
신이어야만 되고 어느 지역 출신은 절대로 안된다는 이런 전근대적인
억지가 이 땅에서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왔다는 것은 현대적인 신화
다. 심지어 일부 지방에서는 시집장가를 갈때도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한가지 사실 때문에 타지역과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슴아
픈 현실이다.명문대학출신이며 학교장이 추천하는 사람임에도 특정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면접에서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일부 계층에서는 김대중 통령당선자가 집권과
정에서 혹시 한풀이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죽을 고비를 몇차례씩 겪으면서 온갖 시련을 이겨낸 그가 좁은 도
량이었다면 그런 고난을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 할 것도 없이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을 고르라
면 나는 선뜻 김당선자를 지목하겠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지역갈등의 피해자요, 또한 그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국은 한때 참고 견디어 나가면 능
히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지만 뿌리깊은 지역간의 대결구도는 정치적
인 배려 없이는 해소되기 어렵다. 그 절호의 기회가 바로 새 대통
령 재임기간이다.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 이 한가지만으로도
그는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대 정권의 쟁쟁한 반면교사들의 온갖 행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교훈
을 배우고 익혔으리라 믿는다.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마치 전리
품을 나눠 갖듯 논공행상식 인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측근들의
장막에 가려 전체를 통찰하는 지혜의 눈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제는 호남인들 스스로가 지역갈등의 해소를 위해 성숙한 자세로 불이
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예향이 지닌 여유와 멋과 아량으로
우리시대에 화해와 결속이 이루어지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영남출
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새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은 현명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대통령은 이제 야당의 대표가 아니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
이기 때문에 국민 앞에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민은 지
도자를 믿을 수 있어야 존경하고 따른다.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
는 힘이 곧 지도력이다. 국민의 에너지는 신뢰에 기반을 둔 지도력
에 의해 하나로 결집될 수 있다.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낸다.
선거공약은 마땅히 이행되어야 하겠지만 1백가지도 넘는 그 많은
공약을 한정된 임기 안에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이
잘 알고 있다. 선거공약에 얽매여 경부고속전철사업과 같은 실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상황은 늘 변한다. 그 변화에 시기를 잃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치역량이다. 이제 우리는 어둠만
탓할 게 아니라 각자 등불을 밝혀 어둠을 뚫고 나가야 할 때다.
냉혹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한 배를 타고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공동운명선의 새 선장에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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