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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가슴으로

▪살림문화재단▪ 2010. 3. 13. 23:24

 


따뜻한 가슴으로  

이 지면에 다시 글을 싣게 되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공간적으로는 얼마쯤의 거리를 두고
산다 할지라도 시간적으로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인연의
줄에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 오두막 둘레에는 모란이 한창이다. 산 아래에서는 영랑(永朗)의
표현대로, 5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해발 8백고지나 되는 이곳은 6월에
들어서야 모란이 문을 연다.




▼ 변화 갈망하는 사회 ▼




며칠 전 비바람에 꺾인 한 가지를 주워다가 남색 유리병에 꽂아 식탁 위에 놓아
두었더니 그 빛깔의 조화가 볼 만하다. 자줏빛 꽃잎과 그 안에 보석처럼 돋아난
노란 꽃술, 초록빛 잎사귀에 남색 유리병이 한데 어울려 찬란한 빛깔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식탁의 차림새는 지극히 간소하지만 한가지 꽃으로 인해 어떤 제왕의
수라상보다도 호사스럽게 여겨진다.




우리처럼 외떨어져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단출하게 사는 괴짜들은, 음식물만
가지고 배를 채우지 않는다. 자연이 내려준 한 송이 꽃이나 맑은 물, 따뜻하고
투명한 햇살과 산들거리는 바람결 속에 스며 있는 우주의 살아있는 기운을 평온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면, 그게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건강을 이룬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커다란 생명체인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작은 생명체인 내가
받아들이면서 그 질서와 조화를 함께 이루어나갈 때 안팎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이게 어디 사람만의 건강이겠는가. 우리들이 몸담아 사는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온갖 부정과 비리로 인해 끝도 없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도, 생명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우주적인 그 질서와 조화를 우리 스스로 깨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사회나 세상은 개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존재하는 것은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이지 사회가 아니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여러
모양의 복합체. 당신과 나 개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다.




그런데 추상적인 그 사회가 개인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한편 세상이 또한 사람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
우리들 모두가 정치권과 특정 기업의 검은 유착으로 인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는 것도 바로 그와같은 상관관계에서다.
우리가 기대했던 문민정부, 그러나 부정과 비리로 인해 「부패공화국」으로
전락되어 민주공화국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어떤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국가의 발전도 개인의 인간성장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화되려면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개개인의 의식이 달라지고 생활습관이나 그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 둘레에 물질의 더미는 한없이 쌓여가지만, 그런 것들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지난날 우리가 어렵게 살던 시절, 연탄 몇장과 쌀 몇되를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던 그런 풋풋한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거나 만족할 줄을 모른다. 겉으로는
번쩍거리면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전에없이 초라하고 궁핍하다.
그저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 참으로 걱정해야 할 것 ▼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는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적인 체험으로 알고 있다. 향기로운 한잔의 차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친구와 나눈 따뜻한 말씨와 정다운 미소를 가지고도 그날 하루 마음의
양식을 삼을 수 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차지하고 살면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따뜻하고 살뜰한 정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입만 벌렸다 하면 누구나 불황을 말하고 경제를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인간존재 그 자체다.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인간이 될 수 없다. 행복해질 수 있는 소재는
여기저기에 무수히 널려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가슴을 우리는 잃어가고 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 거듭거듭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속에 들어있다.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시대의 얼룩을 지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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