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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의 역사

▪살림문화재단▪ 2013. 6. 11. 23:13

[서울빌딩클래식101]③근현대사의 현장,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아랫줄 가운데 구세실 주교 (좌)와 순교자 기념 조형물 (우)

대한서울성공회 대성당은 일제 강점기부터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됐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3·1 운동 당시 성공회 대성당은 만세 함성으로 가득찼다. 그리스도계 학생의 만세 운동 거점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

한국 전쟁 중에는 주교를 비롯한 수녀, 사제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전쟁 와중에도 신앙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구세실 제4대 주교는 간첩 혐의로 체포돼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며 고초를 겪었다. 함께 포로로 끌려간 신부와 수녀가 극심한 추위와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성당 안쪽 뜰에는 이들을 위한 순교자비가 마련돼 있다. 한국 전쟁 중 믿음으로 교회를 지켰던 여섯명의 순교자를 기념한 것. 성당 동쪽 제대 외벽에서는 총탄 자국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기관총을 난사해 생긴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6월 민주항쟁 기념비석 (좌)와 주교관 전경 (우)

1970년대 군사 정권 시기에는 사제들이 잇따라 연행됐으며, 예배까지 방해받았다.

주교관 앞에는 6월 항쟁의 진원지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6월 민주항쟁이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민주화의 새 역사를 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관은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재야 운동가와 지식인·정치인 등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곳이기도 하다. 대한 성공회 선교 초기부터 주교 집무실로 사용됐고, 현재 서울 교구 주교가 사용하는 곳이다.

서울 중구 정동 3번지에 위치한 서울대성당 주변에는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경운궁 양이재, 덕수궁, 서울특별시청, 주한 영국대사관, 서울특별시의회, 주한 미국대사관 등이 있다.

대성당 부지에는 경운궁 양이재를 비롯해 사제관과 성가(holy cross) 수녀원도 있다. 사제관을 포함한 다수의 성공회 성당 부속 건물들이 한옥이고 벽돌 건물과 한옥의 결합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양이재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267호로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원래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실 공사인 경운궁을 중건할 때 궁 안에 건립한 건물이었다. 궁 안의 황족과 귀족의 자재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근대식 교육기관인 수학원(修學院)으로 사용됐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옆의 한정식 전문 음식점 ‘달개비’도 눈에 띈다. 본래 달개비는 가회동 헌법재판소 근처에 있었으나 2009년 6월 서울 정동 성공회 부속 건물로 이사오면서 컨퍼런스 하우스(Conference House)’ 형태로 바뀌었다.

이 공간을 먼저 제안한 것은 성공회 측이었다. 외국에서 오는 성직자들이 잠을 자고, 회의를 할 만한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달개비는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회동지로도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과거 세실 레스토랑이었던 시절부터 있었던 나선형 계단에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 항쟁 당시 시위를 하는 모습 등의 사진이 걸려 있다. 민주화 세력의 사랑방으로도 애용됐던 곳이다.

 

 

*********[서울빌딩클래식101]②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의 역사

 

 

 

 

상공에서 바라본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의 모습. 십자가(十)형태다.

“영국왕립 건축협회 소속 아더 딕슨이 설계하여 1927년 미완성형태로 건립됐다가 1998년에 다시 재건축됐다.”

광화문 대한성공회 대성당 중앙 전면부 앞에 있는 건물의 역사를 기술한 관광 안내문이다. 아더 딕슨은 누구이며, 70년 만에 완성된 사연은 또 무엇일까.

1889년 11월 1일,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 벤슨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존 코프(C. John Corfe)를 주한 주교로 임명했다. 코프 주교는 두 명의 영국 의사와 옥스퍼드 대학 출신인 트롤로프 신부와 워너 신부, 인쇄기술자 등으로 구성된 선교단을 이끌고, 1890년 9월 29일 국내에 상륙했다.

존 코프 주교는 정동 4번지 현재 영국공사관이 자리에 있는 한옥에 살며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1892년에 들어선 코프 주교가 정동에 세운 교회는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이라고 불렸다.

‘장림’은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장림절 또는 강림절은 크리스마스 전 넷째 주 일요일을 대림절 제1주일로 하는, 크리스마스까지의 준비 기간을 말한다.

1909년 부지를 사 교회 부지를 확정하고, 1912년부터 교회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성당 건립은 서울 대성당 제3대 마크 트롤로프(M.N. Trollope) 주교가 주도했다. 토롤로프 주교는 어느 정도 자금을 모은 뒤, 버밍햄 지역의 유명 건축가인 아더 딕슨(Arthur Dixon)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1917년 설계를 시작해 1922년 착공에 돌입했다.

그러나 대한성공회 대성당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원 설계도인 ‘큰 십자형’ 모양을 완성하지 못하고 양쪽 날개와 아래쪽 일부를 뺀 ‘작은 일자형’으로 공사가 마무리됐다. 미완성인 상태로 성당은 1926년 헌당(獻堂)된다. 이후 대한성공회 성당은 미완성된 건물을 70년 동안 사용했다.

성당 재공사는 창립 100년을 앞두고 1991년 결정됐다. 그러나 당시 원 설계도가 유실돼 공사는 바로 시작되지 못했다. 뜻밖에도 한 영국 관광객이 자신이 근무하는 영국 렉싱턴 지역 도서관에 아더 딕슨의 원 설계도가 보관돼 있다고 성공회 측에 전하면서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한 성공회 성당 재건 당시 설계도   

당시 재공사를 맡았던 김원 광장 건축대표는 이 단서를 바탕으로 1993년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건축가에게 부탁해 영국 렉싱턴 도서관에서 원 설계도를 찾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영국으로 가 복사비만 지불하고 원 설계도를 복사해서 국내로 가져왔다. 대한성공회는 1994년 한국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증축 공사를 시작했다. 1996년 현재의 모습으로 공사를 마치게 된다.

1840년대부터 1900년 초까지 새로 건축된 영국 교회 건물은 대부분 하늘에 닿고자 하는 신앙심을 표현한 뾰족한 첨탑 느낌의 네오 고딕양식이었다. 초기 한국에 온 영국 선교사 모두가 그랬듯 트롤로프 주교도 옥스퍼드 운동의 영향을 받아 서울주교좌교회를 고딕풍으로 건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설계를 맡았던 아더 딕슨은 1910년 초 영국에 네오 고딕(Neo-Gothic) 운동이 사라지고 비잔틴 로마네스크 바람이 불고 있을 때 비잔틴 연구에 합류했던 사람이었다. 결국 트롤로프 주교는 딕슨과 상의 끝에 제단을 비잔틴 풍, 외향은 로마네스크 풍으로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건축하는데 합의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대성당(좌) 고딕식 건물인 명동성당(우)

성공회 대성당을 그 규모와 외양에서 천주교 명동성당과 비견된다. 전문가들은 모양새 덕분에 ‘뾰족집’이란 별명을 얻었던 명동성당을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첨탑으로 상징되는 수직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평했고, “성공회대성당은 둥근 원형의 아치가 건물 전체에 너울지면서 사람을 평안하게 품으면서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그리스도 정신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빌딩클래식101]①광화문 대한성공회 서울 대성당

 

 

                

열 두 사도를 상징하는 기둥이 있는 1층 마리아 니콜라 성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시청 방면으로 걷다 보면 우측 샛길로 이탈리아나 프랑스 남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적색 지붕의 성당을 만날 수 있다. 분주한 광화문 사거리에서 불과 300m도 채 되지 않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형형색색의 꽃나무가 다채롭게 식재돼 한눈에 시선을 잡아끈다. 평일 정오와 오후 6시에 울리는 저음의 종소리는 인근을 지나는 이들에게 경건함을 선사한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건축기법을 조화시킨 건물이다. ‘로마적(的)’이라는 뜻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11~12세기 신성로마제국 때 서유럽 등지에서 유행했던 건축 양식이다. 두꺼운 벽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고 비잔틴 미술의 영향으로 반원과 로마스타일의 아치로 동양적 느낌을 가미한 것이 독특하다.

이 성당의 구조적 특징은 건축물 자체가 장십자형(Latin cross)으로 돼 있다는 것. 중앙 전면부를 중심으로 좌우로 날개를 펼친 형상이다. 중앙의 넓은 공간을 ‘신랑’과 ‘측랑’, 팔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수랑’이라고 부른다.

측면은 건물 전체의 높낮이를 달라 율동감이 느껴진다. 건물 중앙의 큰 종탑과 그 옆에 달린 2개의 종탑, 모서리에 소탑 8개가 생동감 넘치게 이어져 있다. 성당의 십자가 모양에서 가로 구조물은 둥근 아치 형태로 돼 있다. 벽돌과 돌을 이용했기 때문에 층고가 낮고 둥글둥글한 느낌이 든다.

건축물 전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분류되지만, 건물 곳곳에는 한국적 요소가 가미돼 있다. 특히 대성당의 창문은 한국의 문창살 문양을 본떴고, 지붕은 진회색의 한국 기와와 S자로 구부러진 붉은 서양식 기와를 썼다. 지붕 끝은 한국의 처마처럼 섬세하게 처리됐다. 현재는 보수 공사 이후 대부분 일본 기와로 대체됐다.

 

                 

성당 정면의 모자이크(좌)와 성당 측면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우)

내부로 들어가면 단번에 황금색의 대형 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비잔틴 양식의 색유리 모자이크 성화는 반돔형으로 윗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 아래로 중앙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왼쪽에는 순교자 스테판 이사야, 오른쪽에는 요한과 성 니콜라 주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든 책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EGO SUM LUX MUNDI·그리스어)’라고 적혀 있다. 이 성화는 국내에 도입된 모자이크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일 일대에 울려 퍼지는 종은 영국의 세인트폴, 리버풀 대성당의 종과 같은 종류다. 평일 정오, 오후 6시, 감사성찬례, 장례식이나 결혼식 때 타종이 이뤄진다. 현재까지 약 90년 넘게 매일 종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상 1층의 ‘마리아-니콜라 성전’에 들어서면 12사도를 뜻하는 12개의 기둥이 성당을 지지하고 있다. 아치를 받치는 기둥은 허리 부분이 가장 볼록하고 천장과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배흘림 기법이 적용됐다.

정창진 신부는 “자세히 보면 앞의 돌기둥과 뒤쪽의 돌기둥 색이 다르다”며 “1926년 완성될 때는 설계 비용가 모자라 돌기둥 6개는 벽돌로 마감했고, 70년이 지난 후 재건 과정에서 추가로 6개 기둥을 더 세웠다”고 말했다.

오색 빛깔 무늬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d glass)는 성당 내부를 좀 더 차분하게 한다. 1995년 성당을 증축할 때 유리미술가 심현지씨가 만들었다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창문 위치에 따라 조금씩 그 색이 다르다. 좌측 수랑은 청·백·적·흑·황색 등 한옥의 오방색을 썼다면 대제대 상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떨기나무에 불이 피어오르는 형태와 강렬한 색감을 담았다.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 개수는 총 1450개로 1450개의 음을 낸다(좌), 지하성당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우)

 

성당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오르간 음악도 한몫한다. 성당 뒤쪽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은 영국의 ‘해리슨&해리슨’사가 2년 10개월간 제작해 1985년 설치한 예배용 오르간이다. 2006년 8월 수랑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겼다. 파이프 오르간은 20개의 음전과 1450개의 파이프로 맑고 풍부한 음색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점심때 직장인을 위한 문화 공간을 마련하고 오르간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4~5월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 20분 ‘성공회 정오음악회’를 무료로 개최하고 있다. 매주 파이프 오르간이나 트럼펫, 피아노 등 독주회나 듀오 연주회를 연다.

지하로 내려가면 동굴 형태의 지하 성당이 나온다. ‘세례자 요한 성당’이라 불리는 이곳은 1920년 서울대성당을 건립한 제3대 마크 트롤로프(M.N. Trollope) 주교의 시신이 영구 안치돼 있다.

정창진 신부는 “원래는 서울 사대문 안에 왕이 아닌 다른 이의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하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면서 “동굴 같은 아늑한 느낌이라 주로 매일 아침저녁 예배인 성무일과를 드리거나 가족 친지들끼리의 모여 작은 장례식이나 예식 등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서울빌딩클래식101]①광화문 대한성공회 서울 대성당 허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