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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길림성 통화, 6,000여년 전 [신별神鱉문화] <왕팔발자> 유적

▪살림문화재단▪ 2013. 10. 18. 23:37

길림성 통화, 6,000여년 전 [신별神鱉문화] <왕팔발자> 유적

 

왕팔발자(만발발자) 유적 발굴 일지

1956년 봄, 길림성 문화국 산하의 고고조사팀이 처음으로 “왕팔발자”의 유적을 발견

 

1995년 6월 4일, <중국문물보(中国文物報)>의 초판에 “동북에서 고고문물의 중대한 발견 - 장백산지구에서 처음으

로 고(古) 제단(祭壇)의 여러 유적지 발견”이라는 제호로 등재되었으며, 5월 8일과 6월 7일 중국신문사, 신화사통신

사에서 <장백산에서 고제단(古祭壇)이 처음으로 발견>,<이수림(李樹林)이 10여년 만에 고고 중대 발견을 하다>라

는 내용으로 연이어 국내외에 타전하였다.


1997년 5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에서 3년간에 걸친 발굴에 힘을 쓴 결과, “신별”은 6,015평

방미터에 이르며 일찍이 장백산지구에서 발굴된 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적지라고 발표를 하였다.

 

 

 

 

 

왕팔발자 유적,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000년 ~ 3,000년 이상 앞선 문명이 요하지역에서 발견되어 이를 "요하문명"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요하문명보다 시기가 늦지 않는 동북방 백두산 일대의 상고 문명이 있으니, 이를 "왕팔발자 유적"이라고 한

다. 왕팔발자 유적은 BCE4,000년 경부터 고구려 주몽 때까지 5천 여년을 꿰뚫는 중첩의 문화라고 한다.

 

왕팔발자 유적은 어느 시대의 문화인가? BCE3,898년에 개국한 배달국은 그 중심이 백두산 일대로 알려져 있다.

렇다면 왕팔발자 유적은 배달국 신시神市의 유적이 아닐까?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에서 백악산 아사달(장춘), 장당경 아사달(개원)로 옮겨졌으므로,

백두산 일대와 약간의 거리가 있다.

 

따라서 왕팔발자(만발발자) 유적은 배달국 신시의 문화가 아닐까 추정해보는 것이다.

 

이 앙팔발자 유적은 상고 한민족 문화의 특징인 "신神의 사회", "제사 문화" "제천 문화" 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구글 검색, 길림성 통화현 동창구 만발발자 유지 吉林省通化市东昌区王八脖子村 南...>

 

 

중국사회과학원의 이수림의 논문

아마 아래 내용은 중국사회과학원의 이수림李树林이 발표한 논문의 일부로 보인다.

 

俗话说:山不在高,有仙则名;水不在深,有龙则灵。在通化市区浑江东南岸,有一伸向江南平原的小山丘,因其造型

酷似一只引颈吸水的鳖鱼,当地群众俗称为“王八脖子”(后被文物部门改称为“ ”)。人们大概不会想到,这只沉睡千年的

“神鳖”却在20世纪末,突然被人唤醒,成为国内外考古学界瞩目的文化“圣地”!

민간의 속어(俗語)에 이르기를, “산은 높은데 있지 않지만 신선(神仙)이 있어 명성이 있고, 물은 깊은데 있지 않지만

용(龍)이 있어 영(靈)이 있다.”라고 하였다.

통화시(通化市) 동창구(東昌區) 혼강(渾江)의 동남쪽 기슭에 강의 남쪽 평원으로 펼쳐진 작은 구릉이 있다. 그 이루어

진 구조물의 형상이 마치 한 마리의 자라(거북)가 목을 늘어 빼고 물을 마시는 모습과 같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것을 “왕팔발자(王八脖子, 거북이 목, 바보 얼간이의 모가지)”라 불렀다.

 

- 문화재 당국에서 후에 “만발발자(萬發拔子)”라 이름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20세기말에 이르러 천년 동안 깊은 잠을

자던 “신별(神鱉)”이 갑자기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내외 고고학자들이 문화의 “성지(聖地)”로 보게 될 줄

은 아마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혼강의 기슭에 왕팔발자 유적이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고주몽이 물고기와 자라를 밟고 건넜던 혼강. 혹시 고주몽이 신시의 옛터에서 "내가

제의 아들이다." 외쳤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었던 것은 아닐까?...>

 


千年“神鳖”——— 천년의 신별(神鱉)
重大发现世人惊 (중대한 발견으로 세상 사람들이 놀라다)

中国近现代史上有许多重大考古发现,最初的发现都带有一定的偶然性,例如我们熟知的甲骨文、敦煌珍贵经卷遗书、

秦始皇兵马俑、广州越秀山越王墓等一大批重大考古发现几乎都是这样,而“王八脖子”遗址的发现却具有历史的必然

性。

중국의 근.현대사상 수많은 중대한 고고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최초의 발굴은 모두 일정한 우연성이 있다. 예를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갑골문, 돈황(敦煌)의 경전과 서적, 진시황의 병마용, 광주(廣州) 월수산(越秀山)의 월왕묘(越王墓)

등의 일대 중요한 고고발굴이 모두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왕팔발자”유적지의 발굴은 오히려 역사적 필연성을 갖추

고 있다.

 

<왕팔발자 유적지...>

 

<왕팔발자 박물관...>

 


早在1956年春,吉林省文化局组织考古调查组首次发现了“王八脖子”遗址,经多次复查,遗址被认定为原始社会聚落

性质,后又被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确定为是距今3000年前青铜时代的村落,并将这一似乎权威性的定论镌刻在遗址

前的文物说明碑上。

1956년 봄, 길림성 문화국 산하의 고고조사팀이 처음으로 “왕팔발자”의 유적을 발견하면서 점차로 거듭된 조사에 의

해 유적지가 원시사회의 취락지의 성격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길림성 문화재고고연구소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의 청동기시대의 촌락이라고 확정이 되었으며, 더불어 이러한 것이 권위를 갖춘 정론으로 받아들여져 유적지 앞에

문화재를 설명하는 비(碑)위에 새겨져 있다.

1995年6月4日,《中国文物报》一版刊登了题为“东北考古获重大发现———长白山区首次发现古祭坛群址”的消息;5

月8日和6月7日,中国新闻社、新华通讯社相继向国内外播发了《长白山首次发现古祭坛》、《李树林十年业余考古获

重大发现》的电讯稿。

1995년 6월 4일, <중국문물보(中国文物報)>의 초판에 “동북에서 고고문물의 중대한 발견 - 장백산지구에서 처음으

고(古) 제단(祭壇)의 여러 유적지 발견”이라는 제호로 등재되었으며, 5월 8일과 6월 7일 중국신문사, 신화사통

신사에서 <장백산에서 고제단(古祭壇)이 처음으로 발견>,<이수림(李樹林)이 10여년 만에 고고 중대 발견을 하다>라

는 내용으로 연이어 국내외에 타전하였다.

“一石激起千层浪”。鉴于这一重大发现广泛涉猎中华文明史和东北古代民族史等重大历史课题,引起了国内外史学界的

高度关注。为解决以通化为中心的在长白山地发现的古祭坛的性质,探寻高句丽早期文化遗存与高句丽民族起源的关系,1996年国家文物局批准立项,对“王八脖子”遗址进行大规模的主动性科学发掘。


“돌 하나로 천층(千層)의 파도를 불러일으켰다(一石激起千層浪, 일석격기천층랑, 일파만파).” 이러한 하나의 중대한

발견은 광범위하게 중화문명사(中華文明史)와 동북고대민족사(東北古代民族史) 등에 중대한 과제를 안겨 주었으며

국내외 사학계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장백산의 중심지역인 통화(通化)에서 발견된 고제단의 성격을 풀기

위하여, 또한 고구려 초기 문화 유적과 고구려민족의 기원의 관계를 찾기 위하여, 1996년 국가문화재국에서 “왕팔발

자”의 유적지에 대해 과학적인 발굴을 대규모로 주도하기 위한 계획을 비준하였다.

王八脖子”遗址这座沉睡数千年之久的“神鳖”,究竟“神”在何处?

왕팔발자”유적지에서 수천년동안 깊은 잠을잔 “신별(神鱉)”의 “신(神)”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考古发掘石破天惊古代文明异彩纷呈

전대미문의 파천황(破天荒)격인 고고발굴이 고대 문명의 색다른 분쟁을 불러일으키다.

从1997年5月至1999年10月,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历经3年的辛勤发掘,共揭露“神鳖”6015平方米,这是目前在长白

山区发掘面积最大的文化遗址。令人惊叹的是,“神鳖”虽小却“五脏俱全”,地下古代文化遗存、遗物异常丰富,令人目

不暇接。

1997년 5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에서 3년간에 걸친 발굴에 힘을 쓴 결과, “신별”은 6,015평

방미터에 이르며 일찍이 장백산지구에서 발굴된 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적지라고 발표를 하였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신별”은 적어도 “오장구전(五臟俱全, 인간처럼 다섯 장기를 두루 갖췄다는 뜻, 완전하다는 뜻)”으로

서 지하에 고대의 문화 유적이 두루 갖춰져 있고 유물이 매우 풍부하여 사람들의 눈을 붙일 겨를이 없게 한다는 것이

다.

遗址中共发现22座不同年代的古房址。年代最早的房址距今约5000-6000年,最晚为魏晋时期高句丽人所建,晚期房址

较具特色,在挖成浅穴后,以块石或板石在房子的四周立砌成两组烟道,上铺平整的板石,形成长方形火炕,以利于寒

冬季节里房内取暖,这是迄今为止发现的年代最早的火炕。


유적지 중에서 함께 발견된 22개의 고(古) 방지(房址)는 각각 다른 연대의 것이다. 가장 빠른 연대(年代)의 방지(房址)

는 지금으로부터 약 5 ~ 6천년의 것이며, 가장 늦은 시기는 위진시대(魏晉時代)때 고구려 사람들이 건축한 것인데 말

기(末期)의 방지(房址)는 비교적 특색을 잘 갖추고 있는데, 얕게 혈(穴)을 파 낸 후에 돌이나 판석(板石)으로 방의 사방

(四方)의 주위를 섬돌로 겹쳐 쌓아 두 개의 연기의 통로를 만들었으며, 위는 평평하고 가지런한 판석(板石)으로 깔아

놓아 장방형(長方形)의 온돌을 만들어서 추운 겨울철에 방안을 따뜻하게 하는데 이용하였는데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온돌 중에서 가장 빠른 시기의 온돌이다.

一个面积不大的“神鳖”,集中地发现春秋战国、西汉、魏晋、明代不同时期的各类墓葬56座,其种类之多、年代跨度之

大、演变谱系之完整,在东北乃至全国都十分罕见。墓葬类型有土坑墓、土坑石椁墓、大盖石墓、大盖石积石墓、积石

墓、阶坛积石墓7种,其中土坑墓数量多达28座,高句丽早期方坛积石墓1座。编号M21墓葬有35人,年龄从6个月到50

岁不等,男女比例大体相近。33具人骨的陪葬中心是两位年龄约30岁的青年女性,这是目前在东北地区发现的最大的

战国时期丛葬墓。

“신별”은 하나의 크지 않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춘추전국(春秋戰國), 서한(西漢), 위진(魏晉), 명(明)대의 다른

시기의 여러 종류의 묘장(墓葬)이 56좌(座)가 있으며, 그 종류 또한 많고 연대(年代)가 매우 넓고 크며 변천의 연역

계보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어 이러한 것은 동북(東北)지방과 전국에서도 매우 보기 드물다. 묘장(墓葬)의 유형에는

토갱묘(土坑墓), 토갱석곽묘(土坑石槨墓), 대개석묘(大蓋石墓), 대개석적석묘(大蓋石積石墓), 적석묘(積石墓), 계단

적석묘(階壇積石墓) 등 7종류이며 그 중에서 토갱묘의 수가 많으며 28좌(座)에 달하며, 고구려 초기의 방단적석묘(

方壇積石墓) 1좌(座)가 있다. 분류기호 M21 묘장에는 35명이 있으며, 연령은 6개월 된 아이에서부터 50세까지 같지

않으며 남녀의 비율은 대체로 비슷하다. 33구의 인골이 있는 배장(陪葬)의 가운데에는 약 30세가량의 젊은 여성 두

명이 잇는데, 이는 현재 동북지역에서 발견된 최대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합장묘(合葬墓)이다.

"神鳖”出土陶、石、玉、骨、蚌、青铜、鎏金、银、铁、瓷器6942件,既有日常生活用品,也有生产工具;既有祭礼神

器,也有各类兵器和装饰物品。出土文物数量之多、类别之丰、品级之高,在东北考古史上是比较少见的,把它说成

是“东北历史天然博物馆”、“古文化的文物宝库”一点也不过分。

“신별”에서는 도기(陶器), 석기(石器), 옥기(玉器), 골(骨), 조개(蚌), 청동기, 유금(鎏金), 은(銀), 금(金), 철(鐵), 자기

(瓷器) 등 6,942 건이 출토되었으며, 일상생활용품, 그릇을 만드는 공구(工具), 제례신기(祭禮神器), 각 종류의 병기

(兵器)와 장식물(裝飾物) 등이 있다. 출토된 문물은 수량이 많고 종류가 풍부하며 품질이 높은 것이며, 동북지방에서

는 고고(考古) 역사상 비교적 볼 수 없던 것들이어서 이를 “동북역사천연박물관(東北歷史天然博物館)”, “고문화(古文

化) 문물(文物)의 보고(寶庫)”라 불리게 된 것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值得一提的是,“神鳖”还发现了春秋战国时期冶炼、制作青铜工具的作坊,出土了青铜短剑、青铜锭、青铜矛、青铜

环、青斧和一批制作青铜器物的铸范,包括斧、剑、镞范等珍贵文物,其青铜器工艺风格,与1983年通化县英额布镇小

都岭遗址发现的斧、矛、镜、镞范工艺完全一致。这表明早在距今两千多年前,居住在浑江地区的古代先民就已发现了

这里的铜矿。现今通化县赤柏松铜镍矿、马当铜矿就坐落在这条古矿脉上。此外,他们还发现并开采了金厂一带的金矿,

加工制作了大量的黄金制品,我们可以惊叹地说:“神鳖”还是东北地区青铜冶金工业的摇篮地!

이러한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신별”은 또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시기의 청동기를 야련(冶煉)하고 제작한

작방(作坊)이 발견되었으며, 청동단검(靑銅短劍), 청동정(靑銅錠, 청동으로 된 祭器), 청동모(靑銅矛, 청동으로 된 긴

창), 청동포(靑銅泡), 청동환(靑銅環), 청동도끼(靑銅斧)와 청동기 그릇을 주조하고 만드는 거푸집과 도끼를 포함하여

검(劍), 화살촉집 등 진귀한 문물이 발견되었다. 그 청동기 공예의 스타일은 1983년 통화현(通化縣) 영액포진(英額布

鎭)의 소도령(小都嶺) 유적지에서 발견된 도끼(斧), 긴창(矛), 거울(鏡), 화살촉집 등의 공예품과 완전 일치한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일찍이 2천여 년 전에 혼강지역에 거주하였던 고대 조상들이 이미 이곳의 청동 광산을 발견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 통화현의 적백송(赤栢松)청동니켈광산, 마당(馬當)청동광산은 이러한 고대의 광맥 위에 있다. 그

밖에 그들은 일대의 금광(金鑛)을 발견하고 캐내어 대량의 황금제품을 가공 제작하였다. 우리는 가히 “신별”은 동북

지방에서 청동을 야금한 공업의 요람지라고 경탄하여 말할 수 있다.

古代祭祀文化中心五千年文明一脉相承

고대 제사(祭祀)문화의 중심은 5천년 문명과 하나의 맥으로 서로 이어져왔다.

“神鳖”的发现,引起中国考古学界的广泛重视。已故考古学宗师苏秉琦教授惊叹道:“这是大文化、大文物、大发现,

具有都邑性质!”中国社科院考古研究所刘晋祥、朱延平等权威专家认为:这种遗址本身决非一般性聚落,而是一种礼

仪性建筑。

“신별”의 발견은 중국 고고학계의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고고학 종합사범대학 소병기(蘇秉琦) 교수는, “이

는 대문화(大文化)이며 대문물(大文物, 大文化財)이며 대발견(大發見)이며 나라(邑)의 성격을 모두 갖춘 것이다.”라

고 감탄의 말을 하였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의 유진상(劉晋祥)과 주연평(朱延平) 등 권위가 있는 전문가들도

“이러한 종류의 유적지 그 자체가 결코 일반적인 취락(聚落)이 아니며 이는 일종의 의례(儀禮)와 관련된 건축

물이다.”라고 하였다.

 

 

<삼환제단三環祭壇 형태로 되어 있는 중국 천단天壇 공원의 기년전. 만주족 청이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

리던 장소이다. 이 삼환제단 유래가 "왕팔발자 문화" 나 "우하량 유적"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유래

나 까마득하게 오래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왕팔발자 유적의 삼환제단三環祭壇이 길이가 130m이고, 높이가 21m라고 하니, 기년전보다도 훨씬 더

던 대규모의 제단 형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遗址造型呈前方后圆三环阶梯式结构,东北至西南向长130米,西北至东南向宽为110米。圆丘高21米,比辽西红山文

化牛河梁巨型“金字塔”祭坛还要高出5米,它是一座目前国内发现的规模最大的史前三环祭坛建筑。

유적지의 형태는 전방후원(前方後圓)으로 3개의 고리로 된 계단식 구조를 드러내고 있으며, 동북(東北)에서 서남(西

南)쪽의 길이는 130m이고 서북(西北)에서 동남쪽의 두께는 110m이다. 원구(圓丘)의 높이는 21m이며 요서(遼西) 우

하량(牛河梁)의 거대한 “금자탑(金子塔, 피라미드)”제단에 비해 5m나 더 높이 솟아 있다. 그 것은 현재 국내에서 발

견된 최대의 사전(史前)의 삼환제단(三環祭壇)의 건축물이다.

令人兴奋的是,遗址中发现的大量卜骨、神格化的动物陶猪、陶塑人头像、礼仪性玉器,尤其是当地群众早年发现的西

汉螭虎玉印“在垣左巫”说明巫觋已有了明确的祭礼分工,使人不得不想到21号大墓中心的那两位尊贵女性,或许就是氏

族首领兼祭司“左巫”“右巫”一类的神权人物。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은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량의 복골(卜骨)과 신격화(神格化)된 동물 형태를 띤 도저(陶猪,

돼지 모양의 도기), 도소인두상(陶塑人頭像, 사람의 머리 모양의 도기), 제사의례용 옥기(玉器)등이 있으며, 더욱이 그

것은 해당 지역의 군중(群衆)들이 초기에 발견한 서한(西漢)시대 이호옥인(螭虎玉印)인 “재원좌무(在垣左巫, 원(垣)의

왼쪽에 무(巫)가 있었다)”의 무격(巫覡, 여자무당과 남자무당의 총칭)이 이미 존재하여 제례를 나누어 받들었다는 것

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21호 대묘(大墓)의 중심에서 두 사람의 존귀한 여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며, 혹은 씨족(氏族)의 수령(首領)과 제사(祭祀)를 겸한 “좌무(左巫)”, “우무(右巫)” 한 가지의 신권(神權)을

가진 인물일 것이다.

在“神鳖”的周围,考古工作者先后发现了十分密集的原始社会至汉代的古聚落、古墓群和山城址,形成了“众星捧月”之

势。我们完全可以想象出,每到春分秋至等重大祭天祭地时节,人们便从四面八方赶来参加规模盛大的祭祀礼仪活动,

载歌载舞,乞求上天的保佑,其场面该有多么的庄严和隆重!

“신별”의 주위에서 고고발굴자들이 원시사회에서 한대(漢代)에 이르기까지 매우 밀집된 고취락, 고묘군(古墓群)과 산

성(山城)의 유적지를 발견하였는데 “중성봉월(衆星捧月 뭇별들이 달을 떠받드는 형상)”의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는 매년 춘분(春分)에서 추분(秋分)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祭天)제지(祭地)의 매우 중요한 시

기이며 사면팔방(四面八方)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어 성대한 규모의 제사의식에 참가를 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하늘의 보살핌을 빌기도 했었는데 그러한 광경이 매우 장엄하고 융성하였다는 것을 가히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다.

“神鳖”实际上就是一座约建于商周时期、兴盛于秦汉时期的古祭坛,是北京天坛、地坛、日坛、月坛原始雏形的早期历

史阶段,5000年一脉相承的中华文明史令人惊叹!

“신별”은 실제로 대략 은주(殷周)시기에 건립된 하나의 묘장(墓葬)이며 진한(秦漢)시기의 고제단(古祭壇)에서 흥성(

興盛)함을 보여주는데, 이는 북경(北京)의 천단(天壇), 지단(地壇), 일단(日壇), 월단(月壇)의 형태가 초기 역사 단계

의 원형에서 비롯된 것이며 5천년 동안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 중화문명사(中華文明史)라는 것이 사람들을 감탄하게

한다.

古王国启开大门诸民族再现踪影

고왕국(古王国)이 문을 열어 여러 민족의 종영(踪影, 발자취)을 재현하다.

“神鳖”负载的历史年代跨越了整整6000年!人们不禁会问:居住活动在这里的古代先民到底为哪些古代民族呢?

“신별”에 담겨진 역사의 연대는 장장 6천년을 뛰어 넘는다!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거주하고 생

활했던 고대의 선조들은 도대체 고대 어떤 민족인가?

据《尚书大传》和《史记·周本纪》载,周武王灭商释箕子,箕子率五千商之遗民东走长白山区,联合土著居民建立了“

箕氏侯国”,“因受周之封,不得无臣礼,故于十二祀来朝。”周初,辽东地区居住着土著民族高夷和外来民族商、周等。

<상서대전(尙書大傳)>과 <사기.주본기(史記.周本紀)>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자(箕

子)를 풀어주어 기자가 5천명의 상(商)나라 유민(遺民)을 이끌고 동쪽 장백산지역으로 달아나 토착 주민들과 연합하

여 “기씨후국(箕氏侯國)”을 건립하였는데, “주(周)의 봉작을 받음으로 인하여 부득이 신하의 예(禮)를 갖추지 않았다.

12사(祀)에 연유하는 까닭으로 내조(來朝)하였다.”라고 실려 있다. 주나라 초기에 요동지역에 거주하던 토착민족은

고이(高夷)와 외부에서 온 상(商)과 주(周)민족 등이다.

到了春秋战国时期,居住在浑江流域一带的古代先民应为秽貊族系统。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에 이르러 혼강(混江)유역 일대에 거주하던 고대의 민족은 당연히 예맥(穢貊)계통이다.(고조

선이라 언급을 피함)

秦统一中国时,中原之民纷纷逃至辽东,燕人卫满推翻了箕氏政权自立韩王,史称“卫氏朝鲜”。至公元前108年,汉武

帝发兵灭“卫氏政权”,致使貊族集团分为扶余族和高句丽族。公元前37年北扶余人朱蒙(又名邹牟、东明)南下入高句丽

县境,联合当地貊族部落建立了高句丽政权,都纥升骨城(今辽宁省桓仁县五女山城),形成了历史上的高句丽民族,臣

属于汉王朝。《后汉书·东夷佳书·高句骊》载曰:“句骊一名貊耳。有别种依小水为居,因名曰小水貊”,小水即今浑江。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 하였을 때 중원의 백성들은 흩어져 요동으로 도망을 하였다. 연(燕)나라 사람 위만이 기씨

(箕氏)정권을 뒤엎고 스스로 한왕(韓王)에 즉위하였는데 사서(史書)에서는 “위씨조선(衛氏朝鮮)”이라 한다.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군사를 일으켜 “위씨정권”을 멸망시키고 맥족(貊族)집단을 나누어 부여족과 고구려족으로 삼았다.

기원전 37년 북부여인 주몽(일명 鄒牟, 東明)이 고구려현의 경내로 남하하여 그 지역의 백족부락과 연합하여 고구려

정권을 건립하였는데, 홀승골성(纥升骨城, 지금의 요녕성 환인현 오녀산성)에 도읍하고 역사적인 고구려민족을 형성

하고 한(漢)왕조에 신하로 예속되었다. <후한서. 동이전 고구려>전에는 “구려(句驪)는 일명 맥(貊)이다. 별종(別種)이

 있어 소수(小水)에 의거해서 살아 이로 인하여 소수맥(小水貊)이라 부른다.”라고 실려 있다. 소수(小水)는 오늘날의

혼강(混江)이다.

  貊族人相信自然界万物有灵,存在着以崇拜和敬奉太阳为主神的一种原始宗教信仰,居住在“神鳖”一带的卒本扶余

人、高句丽人在祭天上继承了先人貊族的文化习俗。《三国志·扶余传》曰:“以殷十月祭天,国中大会连日,饮食歌舞,

名曰迎鼓。”《三国志·高句丽传》曰:“以十月祭天,国中大会,迎隧神还,于国东有大穴,名隧穴。十月,国中大会,

迎隧神还,于国东上祭之,置木隧于神座。”

맥족(貊族) 사람들은 자연계의 만물에는 영(靈)이 있다고 믿는데 그 붙어 있는 존재를 숭배를 하고 태양을 주신으로

공경하고 받드는데 일종의 원시종교의 신앙이며, “신별”일대에 거주하는 졸본부여인과 고구려인은 선조인 맥족의 문

화 풍속인 제천(祭天)행사를 계승하고 있다. <삼국지. 부여전>에 “10월에 제천(祭天)행사를 성대하게 하는데 국중대

회(國中大會)가 연일 열리며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이를 영고(迎鼓)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10월에 제천(祭天)을 하고 국중대회가 열리고, 나라의 동쪽의 대혈(大穴)에서 수신(隧神)을

 맞이하는데 수혈(隧穴)이라 한다. 10월 국중대회가 있고, 수신을 맞이하는 행사가 나라의 동쪽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신좌(神座)에 나무로 된 수신(隧神)을 둔다.”라고 이르고 있다.

到了明代,通化一带居住着建州女真完颜部落,都邑在市区江北自安山城。在“神鳖”的西南下层大环阶,考古发掘出一

处较大的家族墓地,葬有明代瓷器等文物。

명(明)대에 이르러 통화 일대에는 건주(建州)여진(女眞)완안(完顔)부락이 붙어서 거주하였는데 도읍(都邑)이 통화시.

구의 강북 자안산성(自安山城)에 있다. “신별”의 서남쪽 아래에는 큰 고리 모양의 계단이 겹쳐 있는데 비교적 큰 가족

묘지가 한 곳에서 발굴되었는데 명(明)시기의 자기(瓷器)등의 문물이 부장되어 있다.

  需要说明的是,在高句丽民族形成之前,中原地区的汉民族共同体尚未形成,在这以前,史学界往往将那些与三皇

五帝等中华民族始祖有血缘关系、有密切文化联系的先秦时期各民族,统称为华夏族。所以说,繁衍生息在浑江流域的

古高夷、秽貊、扶余、高句丽等古代民族,是华夏民族的一员。

고구려 민족이 형성되기 전에, 중원지역의 한(漢)민족 공동체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는데 이 시기 이전에 사학계에서

는 왕왕 삼황오제(三皇五帝)등 중화민족의 시조는 혈연관계가 있고 선진시기(先秦時期)의 각 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통칭 화하족(華夏族)이라 한 것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설에 의하면 혼강유역에서 생겨나고 번식을 한

옛 고이(高夷), 예맥, 부여, 고구려 등의 고대민족은 화하민족의 일원이다 (중국학자들의 억지).  

千古“神鳖”展风采“跃进文化”填空白

천년 “신별”은 모습을 드러내고 “약진문화”는 공백을 메웠다.

 

 

 

 



“神鳖”的考古发现,有着极高的学术价值和重大的历史意义:———发现并命名了“跃进文化”,填补了鸭绿江流域无考

古学文化的空白。由于跃进村“王八脖子”遗址比黎明遗址更具有典型性,“黎明文化”由此更名为“跃进文化”。“王八脖子”

遗址发现文化堆积13层6期,被划分为六期七段:一期为新石器时期遗存,早段年代距今6000———5500年,晚段距今

为5500———5000年;二期、三期、四期、五期、六期相当于中原地区的商周、春秋战国、两汉、魏晋和明代。其中四

期遗存过去在考古中从没有发现过,是国内首次发现的可确定高句丽早期的文化遗存。“跃进文化”是以古祭坛、古聚落、

古墓葬布局为内涵特征的考古学文化。地理分布上以通化浑江中游为中心,广泛分布于浑江、富尔江、辉发河上游的辽

东长白山地区。

“신별”의 고고학적 발견은 매우 높은 학술적 가치와 중요하고 큰 역사적 의의가 있다. 더불어 “약진문화(躍進文化)”라

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압록강 유역에 고고학 문화의 공백을 보충해준다. 약진의 마을 “왕팔발자”유적지는 여명(黎

明)유적지에 비해 전형적인 것을 갖춤으로 인해, “여명문화(黎明文化)”는 “약진문화”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왕팔발자”유적지는 13층 6기(期)에 문화의 퇴적이 발견이 되고, 그것은 6기 7단으로 나누어 구분된다. 1기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인데 초기의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 ~ 5,500년의 유물이 있고 말기는 지금으로부터 5,500년

 ~ 5,000년이다. 2기, 3기, 4기, 5기, 6기는 중원지역의 상주(商周), 춘추전국(春秋戰國), 서한(西漢), 위진(魏晉)과 명(

明)대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 중의 4기의 유적은 과거 고고학계에 아직 발견이 된 적이 없는 것이며, 이는 고구려 초기

문화 유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가히 확정지을 수 있다. “약진문화”는 고제단(古祭壇),

고취락(古聚落), 고묘장(古墓葬)등이 펼쳐진 고고학 문화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지리적인 분포로 보면 통화 혼강의

중류지역이 중심이 되며, 혼강, 부이강(富爾江, 부얼강 또는 불강으로 불림), 휘발하(揮發河) 상류지역의 요동 장백산

지역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将长白山区文明史由3000年的旧说推前到距今6000年,科学证明浑江流域也是中华文明的发祥地之一。过去由

于考古发现所限,国内史学界曾认定长白山区古文明史的距今年代,只有3000年,该学说一度统治史学界整整40年!

“神鳖”还出土了一定数量的刻有原始文字符号的陶片,这对研究汉字起源具有重大的科学意义。“跃进文化”的考古发现,

结束了浑江鸭绿江流域“无文可考”的历史。

장백산 지역의 문명사(文明史)는 3,000년이라는 구설(舊說)에서 연유하여 지금으로부터 6,000년까지라고 추정이 되

고 있다는 것에 이르게 되었는데, 혼강유역도 중화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과

거에는 고고 발견이 한계가 있어서 국내 사학계에서 장백산지역의 고문명사(古文明史)를 지금으로부터 겨우 3,000년

이라고 인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 사학계에 하나의 학설로서 지배를 한 것이 장장 40년이었다. “신별”에는 또한 일정

수량의 원시 문자(文字)와 부호(符號)가 새겨진 도자기 파편이 출토가 되어 한자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과학적 의의

가 되고 있다. “약진문화”의 고고발견은 혼강 압록강 유역이 “문헌의 근거가 없어 고찰할 수 없다는 무문가고(無文可

考)”의 역사를 끝내버렸다.

———首次发现高句丽建国前的早期历史文化遗存,事实证明中国自古以来就是一个统一的多民族国家。关于高句丽民

族的起源和族属关系,根据中国古代部分史书文献和《高句丽好太王碑》考古发现,人们只知道这个古老而神秘的古代

民族发祥于浑江中游地区,但由于记载得过于简略,致使中外考古学界对高句丽建国前的考古学文化特征认识几近空

白。“跃进文化”的发现结束了高句丽民族与文化起源的神话传说,打开了这座神秘王宫的大门……

고구려 건국 이전의 초기 역사 문화 유적이 처음으로 발견이 되어 중국은 자고이래로 하나의 통일된 다민족국가라는

사실이 증명이 되었다. 고구려 민족의 기원과 그 민족이 속한 관계에 관하여 중국 고대 부분의 사서(史書)와 <고구려

호태왕비>의 고고발견에 근거하여 사람들은 다만 이러한 고풍의 신비한 혼강 중류지역의 고대민족 발상지만을 알 뿐

이며, 단지 (사서에) 간략하게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중국과 해외의 고고학계로 하여금 고구려 건국 이전의 고고

학 문화의 특징에 대하여 공백에 가까우리만큼 알 수 없도록 하였다. “약진문화”의 발견은 고구려 민족과 문화의 기원

이 신화와 전설에 있다는 것을 종식시켰으며, 이러한 신비한 왕궁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神鳖”经过几代专业考古工作者和业余考古研究者的共同努力,终于向世人展示了它那悠悠古韵和独特风采。2000年6

月,在国家文物局、新华社等单位主办的九九年度全国十大考古发现评比活动中,“神鳖”理所当然地名列全国十大考古

发现第三!2001年,国务院公布的全国第三批重点文物保护单位名单中,“神鳖”再次榜上有名!

“신별”은 몇 대(代)를 거치면서 고고 발굴 전문가와 고고연구가의 공동 노력으로 마침내 세상 사람들에게 그 여유로운

옛 운율(韻律)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0년 6월 국가문물국과 신화사 등의 기구에서는 1999년도 전국 10대

고고 발견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신별”은 당연히 전국 10대 고고 발견 중의 3번째라고 하였다. 2001년, 국무원에서 전

국 제3 중점 문물 보호 단위의 명단 중에서 “신별”은 재차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目前,国家正在“神鳖”附近筹建一座大型的遗址博物馆和文物陈列馆,不久的将来,她将以特有的魅力展现在中外观众

的面前。
현재 국가에서 “신별”부근에 하나의 대형 유적박물관과 문물진열관을 짓고 있으며, 머지않은 장래에 특유의 매력을

갖춘 전시관이 중국과 해외의 관람객들의 면전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심제 편집 번역

출처 : ─┼★불가사의에 답이있다★┼─
글쓴이 : 도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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