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賞)을 상(喪)으로 만든 미술대전 [미술신문 ]
-미술대전의 주검에 받치는 조사-
사면초가 된 부패고리
우리 화단사회에서 작금에 저질러진 작가등용의 길이던 미술대전의 총체적인 고시부정이 지상을 수놓고 있다. 새 집행부의 시작부터 부정으로 얼룩진 이 사실을 놓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좋을지 어안이 벙벙하여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화단에 고질적 부패 고리가 되어 몇 번 붉어졌던 사건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검은 거래의 비리 온상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대한 붕괴가 어디까지 왔는가 하는 것을 입증하는 사건이 결국 다시 터지고 말았다. 물론 전 집행부의 연장이기는 하지만 새 집행부의 문화권력이 휘두른 또 다른 먹이사슬이란 점이다.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각본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와 같은 현실을 예견하는 일임을 짐작하게 했던 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미협 이사장 선거를 둘러싼 미협내부의 당선자에 대한 가처분 직무정지의 법정 내분이 있었던 그 뒤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가처분 정지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된 것이기 때문에 승소의 즐거움으로 인한 새 집행부의 그 시작은 가장 깨끗했어야 했다. 그래야 그 다음부터 각본대로 될 당연한 일에 대하여 위장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쯤은 삼척 동자도 간과 할 수 없는 일인데 가처분기각의 즐거운 흥분은 이를 망각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설마 하고 역이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짜고 치는 놀음판이 방불하게 드러난 것이다.
마치 끼니를 해결하는 밥처럼 먹는 관행을 한사코 깨끗한 척 하는 쇼를 할 필요가 따로 없다는 듯이 일사불란한 행동이었다. 당선자와 한배를 타고 미협을 요리 할 잡배들이 핵심이 된 의기투합은 또 한번의 축배의 노래와 함께 춤추는 즐거움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번 특수부 조사에서 25명이 입건된 사건 중 가장 큰 공로자는 17대부터 공훈을 새워 18, 19대까지 삼대를 연이어 온 사람의 행적이 단연코 덧 보였다.
마치 핵폭탄 같은 그 사람을 삼대에 걸쳐 집행부 수장들이 모두가 그를 큰 힘으로 믿고 모시던 가운데서 겨우 빙산의 일각이 터졌는데도 미술인 전체가 고개를 들 수 없는 파장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것이 비록 빙산의 일각일지라도 고사에서의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처럼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된 지금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길만이 대안이다.
상(賞)을 상(喪)으로 만든 무지
더욱 가슴아픈 점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적에 대한 예술인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조차도 헤아리는 바가 없었다. 한마디로 작가 의식도 죄의식도 없는 이번 사태를 몰고 온 화가 후보 군들의 무지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화업의 절대 가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공모전에서 상(賞)으로 연결하는 일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들은 과연 어느 시대 사람들인지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한심하고 무지했다.
이런 잘못된 의식군을 조직 기반으로 구축한 현실은 이미 작가라는 허울을 둘러쓴 화단잡배들의 기생관계는 그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붓을 든 작가 행각을 위장한 이들의 가치관 전도는 그런 협잡이 직업화되어 한갓 일말의 양심도 도덕률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주고받는 먹이사슬로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그 추적을 피하는 선수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들통나는 수표 추적이나 통장거래는 일찍이 취급하지 않고 오직 현금만을 원칙으로 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야까지 거래 내용으로 떠오른 현실은 개탄하기에 앞서 죽음을 부르는 자신의 말로를 묻을 장지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래서 함께 연루된 이들은 상(賞)을 상(喪)으로 받고 스스로 주검행렬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출이 안된 무리들에 대해서는 다행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주검으로 휩쓸어 버린 상이 그 가치 효용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 대한민국미술대전은 무용한 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상받은 자체가 더러운 불신으로 남아 기억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어느 선진국에서도 다 살아져 버린 공모전이 어쩌다 한두 곳에서 향수로 남아 아마추어들을 격려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거늘, 우리는 아직도 이것이 작가 등용문으로 남아서 비리 온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다. 이제 미술대전의 부정에 연루된 자들은 어차피 상갓집 개에 지나지 않음으로 개 같은 것은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상가지구(喪家之狗)라는 고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들을 속이다니
또한 선비의 그림 양식이기도 한 문인화에서의 충격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이것 역시 스스로 무덤을 파고 생매장을 재촉한 것으로서 거론하는 입이 더러우리만큼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어떤 장르보다도 가장 신선하고 깨끗해야 할 선비정신의 탈을 쓰고 가장 더러운 행동으로 화단을 어지럽힌 분과 독립은 태어나자 마자 사망한 것이니 모두 붓을 꺽고 작가의 탈을 벗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명색이 대다수의 지도자들 까지도 문인화 양식을 도용한 방작의 수준을 넘지못한 어설픈 자들이였다. 마치 남의 시를 배껴쓰는 것과 같은 입장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시인인척 행동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양심을 속이거나 그 정신을 사기하지 말고 스스로 그 영전에서 참회의 곡을 읍(泣)하고 화단을 조용히 떠나야 한다.
이제 미술대전은 죽어서 장례식의 곡소리만 메아리로 남아 있을 뿐 무용이 아니라 해체하여 역사의 무덤으로 그 기념비를 삼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무순 잠꼬대로 명망인사, 평론가, 언론인으로 구성하여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거듭난다는 헛소리를 뇌까리고 있는가? 이렇게 까지 철저하게 자신들을 모르고 있다니 정말로 측은하고 불상하다.
도시 근로자 평균소득 70%도 안 되는 열악한 미술인들의 창작의지에 따뜻한 시선을 호소하는 성명문이 더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어찌 그 열악한 동료들을 대상으로 등을 처서 뱃속을 채울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엄청난 사태를 빚어낸 미협 전, 현직 집행부의 관계자들은 미술대전의 검은 거래를 지금은 돌이킬 수도 없거니와 대응할 입장은 더 더욱 못될 뿐만 아니라 그 무슨 방법으로도 회복할 길이 없다. 다만 일말의 양심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이 불행한 사태에 대하여 잘 못을 진정으로 참회하는 길만이 최선임을 일러 두고자 함이다.
더욱이 그 대표권 자는 이 사회의 최고 지도자적인 지식인 집단의 교수로서 이들과 함께 저지른 도덕적인 책임이야말로 어떤 방법으로도 면할 길이 없다. 이러한 부끄러운 일에 대한 정중한 사죄를 온 국민과 더불어 일만 사천의 모든 회원들에게 용서의 뜻을 전하고 조용히 물러서는 진정한 반성만이 면죄부를 받고 미술 인으로서 다시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미술대전의 이러한 주검에 삼가 명복을 빌며 이만 조사를 마감한다.
강 행 원 (화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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