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연구소/이우송의 섭리식이야기

예수님도 예견치 못한 섭리식의 비밀, 왜 당신은 병들었다고 생각합니까.

▪살림문화재단▪ 2010. 2. 6. 14:24

 

장님거미...

 

 

왜 당신은 병들었다고 생각합니까.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신 예수(요한 9:1-3)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 )

  

오늘의 이야기는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조심스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종교적 관점에 이견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예요. 논란은 할 수 있으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보지요.

위에 게재한 요한복음 9장 본문의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신 예수’에서 제자들이 예수에게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어요.

연민을 가지고 만난 소경 앞에서 당혹스런 질문이 아니었을까요? 난처하지요.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이 사람의 죄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이죠.

 

전생을 예기하는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면 부모님의 죄일까요. 세상에서는 부모님의 죄가 연좌제에 묶여 세습되는지 몰라도 자식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부모의 죄라고 잔인하게 말 할 수 없었겠지요.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해요.

 

제가 보기에는 이 세 가지가 다 틀린 말이지요.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 생명을 소경으로 만들었다는 말이요?  그 소경은 다행히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떴다고 합시다. 태어나면서 눈이 멀었던 다른 소경들은요?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내용 이라면 온 우주만물을 창조주시고 생명의 주인께서 어찌 그런 사랑에 반하는 일을 하시겠어요?

예수님도 영적인 영 생명에 대해서는 구원의 좌표를 제시했고 그 능력으로 치유는 하셨지만 육 생명의 비밀까지는 모르셨던것 같아요.

 

육 생명의 비밀이 섭리식에 있는데 아마도 소경을 낳은 어머니의 체질과 태아의 체질이 다를 수 있어요. 태중에 아이를 가졌을 때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만을 많이 드셨다면 태중의 아이는 온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지요.

우리가 임신한 아내를 보면 ‘입덧’이라는 걸 하잫아요. 평소에 먹지도 않고 싫어하던 음식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요. 그래서 철에 없는 음식을 구해다 주면 몆 입 먹고는 말아요. 아 어렵게 구해왔는데 말이지요.

이런 경우는 엄마 입맛이 아니라 태중의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입덧을 심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틀림없이 엄마와 아이의 체질이 다른 경우에요.

반대로 임신중에 한번도 입덧을 안하고 낳은 아이의 경우는 엄마와 아이가 체질이 같은 경우라고 보면 돼요.


오늘 읽은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는 태어난 이야기고 다자란 성인의 경우 혹시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합니까.

유전적으로 타고난 부모의 탓도 아니요.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의 탓도 아니요. 음식문화의 변천에서 오는 인스탄트식품이나 외식문화의 탓도 아니요, 오직 당신 자신의 탓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몸을 망친다. 그것은 지금까지 생명의 비밀을 몰랐던 것인데 음식을  가려서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섭리식의 비밀입니다.

 

육의 생명이 온전한 상태는 오장육부의 바란스가 온전한 상태인데 목화토금수  오행에서 생명의 철학이 나온 것인데 우주의 생성의 원리와 운행의 법칙을 인체에 적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는 음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약을 쓰는 데에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음식이 약이고 약이 음식이라고 하셨습니다만 환자가 쓰는 약도 체질에 맞게 써야 합니다..

 

약이 초 근 목 피 동물성 광물질이라면 음식 역시 똑같은 초근목피동물성인데 음식을 말할 때는 다 먹어도 되고 약초일 때는 골라먹어야 한다는 것은 원초적인 모순입니다. 그것이 곧 의학이예요. 생명 따로, 병 따로 보는 세계에서는 나눌 수 있지만 생명을 하나로 보는 세계에서는 약과 음식이 하나입니다.

 

노약자는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면역법은 없습니다. 생명의 힘이 온전할 때 생명의 힘이 강한 것이지 약으로는 면역을 높힐 수 없지요. 특히 봄인의 경우는 링겔주사로 삐콤 맞다가도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 환자에게 항암제를 쓰고 암 세포를 죽이면 환자가 살아날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남아있는 생명에까지 죽이는 경우가 됩니다.

 

문제는 본인의 체질을 어떻게 알아내느냐의 문제지요. 사실 어렵지 않아요. 여기서 일일이 설명 드리기는 어렵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면 자신이 자신의 체질을 알 수 있어요.

아무래도 혼자 보다는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며칠이라도 여럿이서 함께 식사도 하고 생활도 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장부의 허와 실이 있음을 알고 사상의학을 창시하신 동무이제마선생도 결국 이 방법을 쓰시고는 했어요.

물론 섭리식이라는 표현은 대자연의 섭리, 하느님의 섭리라는 뜻으로 제가 처음으로 한 표현입니다만.. 이또한 누구의 전유물 일 수 없어요.

다음에 계속하지요.[이우송.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