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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가 쓴 성공회이야기[가져온글]

▪살림문화재단▪ 2013. 8. 14. 05:45

권복규 교수가 쓴 성공회이야기[가져온글]

저는 원래 천주교 신자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성공회로 나가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종교개혁 시절 분화된 개신교의 한 일파로 분류되지만, 말씀(성서)과 전례(성찬례)를 모두 중시하며 그래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닌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이 성공회에 대한 오해가 많아 제가 아는 대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1.성공회는 헨리8세가 이혼하려고 만든 종교다?
... 헨리8세의 이혼이 교회 분열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는 하였지만, 그 전부터 소위 영국교회는 라틴 교회와 신학과 성향이 여러 모로 크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섬나라였기 때문에 독자적인 신학과 수도회가 발전하였죠. 스페인과 이탈리아인이 지배했던 바티칸의 교황청과 달리 종교개혁 전 영국의 가톨릭교회는 영국과 북유럽 식의 사고가 팽배했습니다. 라틴 교회의 공식 신학자가 이탈리아 출신의 토마스 아퀴나스였다면, 영국 교회에는 윌리엄 옥캄과 던스 스코투스라는 위대한 신학자들이 있었지요. 이 두 그룹의 철학적/신학적 차이는 큽니다. 단지 왕이 이혼하자고 교회를 새로 만들자 했으면 신하들과 백성들이 가만 있지 않았을 겁니다. 영국 왕의 권한은 늘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마그나 카르타와 같은 문헌도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르네상스 시대 로마가톨릭의 타락과 더불어 그런 모습에 염증을 느낀 영국 성직자와 신학자들이 왕에게 동조한 것 뿐입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가톨릭은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인의 특성에 맞는 교회이고, 장로교 등 개신교는 독일과 북유럽인의 특성에 맞는 교회이고 성공회는 영국인의 성정에 맞는 교회일 뿐입니다. 저는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모두 다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분파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불교에도 조계종, 천태종 등 온갖 종파가 있듯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요. 다만 각자에게 맞는 스타일이 있을 뿐입니다.

2. 성공회는 좌빨이다?
성공회대학교에 우연히 진보적인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그렇게 보일 뿐 <보수우파>가 더 많아 보입니다. 성공회가 다른 교파에 비해서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각종 복지시설과 단체들을 위탁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노숙자 진료사업, 급식사업, 국밥 식당, 인문학 강좌 등을 하고 있어 진보적인 분들의 활동 여지가 좀 넓기는 하죠. 무엇보다 "관용"이 이 교회의 특징이기 때문에 진보든 보수든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하는 교회가 이곳이며 사실 성공회대의 이름난 진보 교수들 대부분은 성공회 신자가 아닙니다.

3. 성공회는 짝퉁이다?
어떻게 보면 예배 예식이 천주교와 매우 흡사하여 "원조", "정통"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저기 "원조"가 있는데 이건 뭐임? 할 수도 있습니다. 성공회의 한 모습이 Anglican Catholic 이라 하는데 이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로 내려오는 전승을 지키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천주교와 흡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전통을 지키는 성공회를 <고교회(High Church)>라 하고, 지금 많은 개신교와 흡사한 방식의 예배를 드리는 곳은 <저교회(Low Church)>라 하여 구분합니다. 이런 다양함 역시 성공회의 특징입니다. 지금의 감리교는 성공회 저교회의 사제였던 존 웨슬리가 분리해 나간 교회입니다. 짝퉁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전승을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성공회는 여자가 성직자도 되고, 동성애자도 용인한다?
우리나라 성공회 안에는 여성 사제도 있고, 외국에는 동성애자 사제도 있습니다. 이게 다른 교회가 제일 비난하는 바이기도 한데, 저는 그래서 성공회가 자랑스럽습니다. 성공회의 근본 정신이 <관용>과 <중용>이고 성서와 성스러운 전승과 함께 <이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사람이, 여성이 사제가 되면 왜 안 되나요? 그런 차별(구별)이 중요하다고 믿는 분은 뭐 그것도 좋지만, 하여튼 저에게는 이런 모습이 더욱 좋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성공회 교회를 다녔는데 그곳 주교님도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이 성직자로 더 적합한 경우도 많습니다.

5. 성공회는 영국의 하수인이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말을 들어야 한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과 달리 각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최대한 중시합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나 우리 주교나 똑 같은 <형제>일 뿐입니다.(천주교 주교는 교황이 임명하는데, 성공회 주교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함께 투표로 선출합니다) 이런 평등한 관계를 초대 교회들 간의 <collegiality>라 하는데, 로마 교황직이 정치적 함의를 띠면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영국성공회와는 친교와 일치 외에 아무런 상하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이 교회로 옮긴 이유는 성공회식의 그리스도교 신앙 실천이 민주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관용적이며, 성직자와 평신도간에, 남녀간에 차별이 없고, 사회적 실천에 민감하며, 청빈/청렴하며, 과학기술에 친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기질과 인연에 따라 본인 신앙에 충실한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든 천주교든 현재 자신의 교회에서 어떤 문제를 겪고 계시다면, 혹은 기독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성공회를 살펴보실 것을 권합니다. 투투 주교(성공회 주교입니다), 존 스토트, C.S.루이스 모두 성공회 신자였지요. 더 관심이 있는 분은 대한성공회 커뮤니티 홀리넷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