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단상(한국타임즈)

글을 쓴다는 것, 내면을 읽는다는 것

▪살림문화재단▪ 2013. 12. 6. 10:00

 

김예명 살림단상칼럼니스트

글을 쓴다는 것, 내면을 읽는다는 것

                                                                                                           김 예 명 ( 관찰과 상상력 대표 )

 

 

마흔 살의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고 싶다고 했다. 그 시작은 자서전이어야 한단다. 살아온 인생이 하도 기가 막히고 안 해본 경험이 없어서 쓸 내용이 많다고 했다.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알린 다음 전공과 관련한 책을 내는 것이 저자로서의 도리라는 생각까지도 하였다.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한 후 디자인과 사진으로 다시 전공을 바꾸어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그것만으로도 다소 튀는 이력을 가진 사람이긴 했다.

 

지금은 자비 출판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내 책 한 권쯤 세상에 내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자서전을 먼저 내야 한다는 생각은 낯설었다. 자서전은 나 이런 사람이다, 이런 경험을 했다, 나를 통해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배우시라, 하는 의미일 텐데 단지 경험이 다양하다는 이유로 세상에 대고 한 말씀하기엔 마흔의 인생은 연륜이 부족하다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자서전을 꼭 쓰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잠시의 심사숙고 끝에 그냥 나를 한 번쯤 정리해보고 싶은 게 진정한 이유인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혼자 글쓰기를 해보라고 제안하였다. “나는 긴 글은 못 쓰겠어요. 그래서 자서전도 대필해 줄 사람을 찾는답니다.”하는 게 아닌가.

 

주위를 돌아보면 작가 혹은 저자의 꿈이나 계획이 없으면서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치고 일상에서 혼자 묵묵히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또 거의 보지 못 했다. 대신 SNS가 유행인 시대답게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에 글을 남긴다. 홈페이지나 블로그는 스스로 주제의 범주를 정하고 내용물을 채우는 것이라 모아놓으면 자기 계발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실시간 단발성 내용물이라는 점에서 글쓰기의 효용과 기록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이들은 쌍방향 소통이 주목적인 만큼 글을 쓰는 사람의 내부 검열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는 감지하면서도 넘치는 글들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내면의 글쓰기는 정작 하지도 못 한 채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혼자만의 글쓰기를 유도하는 책이나 강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대체로 자기 치유와 자아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권유한다. 그러므로 능력껏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글을 못 써서 혼자만의 글쓰기를 못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안 해 본 경험이기 때문에 겁을 내는 것일 뿐이다. 갓난아이가 어느 날 기고 걷게 되듯이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능숙한 걸음을 걷게 되기까지는 부모의 도움도 있지만 결국은 스스로 반복 연습을 한 결과이듯 글쓰기 또한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능숙해지고 습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예전에 ‘코칭 강좌’를 수강했을 때 마지막 수업이 <나의 인생 사명서>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에 대해 생각하면서 바람직한 미래의 내 모습을 계획하고 조망하는 활동이다. 사명서를 글로 씀으로써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시나브로 행동 교정 효과를 기대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강사는 사명서를 집안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날마다 그것을 보면서 새기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였다. 가훈이 없어진 풍습을 사명서로 대신한다 할까. 그러나 가훈이 가부장 제도의 내리물림 지침이라면 사명서는 스스로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훈 보다 의미 있는 지침일 수 있다. 나는 사명서가 눈에 잘 띄라고 색깔이 들어간 종이에 타이핑을 한 후 액자에 끼워서 책상 한 쪽에 놓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밝아지고 행동도 의미 있고 올바른 쪽으로 가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문자의 구체성이 주는 자기 암시 효과였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무엇을 쓰든 어떻게 쓰든 문자화된 것은 각인이 된다. 문자화하기 위해 궁리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보람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를 읽는 시간과 노력은 내가 속한 모든 사회와의 관계와 활동을 폭 넓고 깊이 있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내 마음과 생각의 기록물들이 쌓일수록 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으로 서서히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SNS에 접속하려는 마음이 욕망이라면 혼자만의 글쓰기는 욕구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지만 욕구는 채울수록 안정감을 준다. 삶이 이기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글쓰기는 나를 이루어가는 내면의 건강한 욕구다. 혼자만의 글쓰기, 외면도 말고 도망도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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