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단상(한국타임즈)

나도 교양인으로 살고 싶다

▪살림문화재단▪ 2013. 12. 25. 01:36

 

 김예명 살림단상칼럼니스트

 

      나도 교양인으로 살고 싶다

 

                                                               김   예   명( 관찰과 상상력 대표 )

 

 고백하건데 나는 지적 허영이 좀 있는 사람이다. 전공 공부 이외에 다방면의 지식과 상식과 문화적 소양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누굴 만나도 그 어떤 자리에서도 무리 없이 어울릴 줄 알면서도 나만의 개성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면 인생이 근사할 것 같았다. 내가 갈망하는 이것을 ‘교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럽에서 교양은 곧 문화를 일컫는 말이니 나의 갈망은 ‘교양 있는 문화인으로 살고 싶다’는 뜻이 된다.

 

 다행히도 나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순 서울 토박이로서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말투 또한 조근조근 또박또박해서 사투리 심한 지방 사람들이 부러워했을 정도다. 언어 표현은 또 어떤가하면 욕설이나 비속어, 가벼워 보이는 유행어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기본 독서량이나 문화적 취향이란 것도 있어서 사교 모임에서 멋스러움을 내비칠 정도의 깜냥도 웬만큼은 된다. 외모나 스타일? 함께하는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을 수준은 된다고 자부한다. 나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는 대체로 이러하다. 이성적이다, 쿨하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졌다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지금 자기 자랑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맞다, 나는 지금‘자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변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뀐 지 일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운전 중이나 식당에서 뉴스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욕설을 내뱉게 된다. 학생들과 언어를 다루는 한 사람으로서 욕설은 내가 경계해 마지않는 감정의 마지노선인데 내가, 내가 내뱉는 것이다, 욕설을.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는‘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뉴스를 들으면서 내가 내뱉는 욕설은 이성적으로는 무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기가 막혀 나오는 울분의 탄식 같은 것이다.

 

 나는 왜 변했는가? 잠깐만 뉴스를 들춰보자. 작년 대선 기간 있었던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 직원이 불법적으로 개입된 것이 드러났음에도 개인행동으로 축소하기 바쁘고, 합법 정당인데도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려 하고, 임기도 안 채운 검찰총장은 해임시켰고, 대통령 후보 시절 경제 공약은 거의 폐기 수준인데다 민주노총의 합법 파업은 수색 영장도 없이 진압하고..

 정치권이 이러고 있는 와중에 사회 각 분야의 문제들도 아수라장이다. 종교인 과세 법안은 처리가 무산되어 내년 2월에나 재논의가 있을 예정이고, 밀양 원전이 밀어부치기 식으로 강행되는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 간부는 승인 안 된 원전 부품을 납품받았다 하고, 국가 공공 서비스 시설인 의료와 철도를 민영화하겠다고 환자들과 근로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정권 바뀐 지 일 년 만에 벌어지는 일들이 숨 가쁘기만 하다.

 

 21세기가 감성과 창의력의 시대라고 대통령은 경제마저도 창조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들은 창조는커녕 정치 분야는 5,60년대 이데올로기 시대로, 경제는 70년대 경제제일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을 복고 정서로 뽑았으니 이러한 과거 회귀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속도 빠른 경쟁 체제 속에서 깊은 피로감에 찌들어 사는 국민들이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저 80년대 정치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비난받아 마땅한 소시민적 속물근성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다시 한 번 고백해본다. 나는 교양인으로 살고 싶다. 출중한 학식의 소유자들이 너무나도 많은 학력 인플레 세상 속에서 나도 좀 다방면에 일가견을 가진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자면 이성이 늘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고 생계에는 별 도움 되지 않는 잡다한 것들에 관심 가질 만큼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움베르토 에코 식으로 말하자면 권력이 ‘남용의 수사학(그의 책 <가재걸음-세계는 왜 뒷걸음질 치는가>)’을 펼치는 시대. 에코는 말한다. “남용하는 자는 가장 먼저 자기 정당화를 한다. 만약 그 정당화가 반박된다면 힘이라는 비논리로 수사학에 맞선다.”마침 1223일 현재 대통령은 철도 노조의 파업 사태와 관련하여 “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힘의 논리인지 교양이 없는 나로선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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