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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천주교 성지화는 중지되어야 한다 [이이화/역사학자]

▪살림문화재단▪ 2014. 12. 5. 02:27

 

서소문 천주교 성지화는 중지되어야 한다


이이화/역사학자

 

 

요즈음 전해지는 소식을 들으니 서울 서소문 일대에 천주교 성지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곧 국가와 서울시와 서울 중구청에서 총 51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서소문 역사공원을 조성하면서 지하에 성당을 세우고 천주교 순교성인을 위한 기념전시관을 건립하며 도보 순례길을 만든다고 한다. 이 계획은 천주교 교황 프란치스코 서울 방문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일어나고 황사영이 순교한 곳에 성역화를 시도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역사를 사랑하는 학자로서, 양식을 지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아스럽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돌아보기로 하자. 서울의 서대문 일대는 조선시대 풍수설에 따라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다고 하여 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되었으며 감옥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첫째 충신으로 꼽는 성삼문과 개혁사상을 외친 허균 등이 이 언저리에서 처형되었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梟示)된 곳이었으며 동학 2세 교주 최시형이 처형되어 한때 묻힌 곳이기도 하였다. 황사영의 순교도 그런 사례에 하나일 뿐이다. 또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처형을 당한 서대문 감옥이라 불리는 서울형무소도 이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서소문 일대는 명백한 민족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역사유적을 보존해야 할 의미도 있을 것이다. 또 민주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터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특정 종교의 성지로만 조성해야 한다는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에는 명백하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이는 천주교든 개신교든 불교든 국민 누구나 믿고 전도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특정 종교를 국교로 하거나 편향된 종교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항의도 담고 있다. 한때 기독교를 국교로 하자는 주장이 일었을 때도 말할 나위도 없이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꾸지람이 따랐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유재산을 불법으로 사용하게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사항이다.

천주교 순교자 황사영은 누구인가? 이 땅에서 천주교 탄압이 일어났을 때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위해 프랑스에 백서(帛書)를 써서 함대를 파견해달라는 비밀 편지를 보내려다가 발각되어 처형을 당했다. 그는 천주교 처지에서 보면 분명히 순교자일 것이다. 하지만 천주교 순교자이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순교자들도 이 범주에 들 것이다. 당연히 천주교 교단에서는 이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기릴 수 있지만 모든 국민에게 강요해서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그러니 특정 종교만을 위하거나 강요하는 일은 헌법 위반이요, 민족사를 왜곡하는 것이 된다. 대구 관덕정에 천주교 순교기념관을 건립하였을 때 말썽을 빚은 적이 있었다. 이곳은 천주교도가 순교한 곳이면서 동학의 1대 교조 최제우가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사례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또 교황이 방한하였을 때 행사를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벌인 일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양식 있는 천주교 교도들이 이를 반성하는 목소리도 있어 왔다.

참으로 민주가치의 기본인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서소문 천주교 성역화 계획은 중지되어야 하며 정부 당국과 천주교에서도 반성의 계기를 삼아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면 현대 한국은 특정 종교만을 강요하는 중세 사회가 아니며 민주국가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소중한 민족사를 돌아보고 진실을 찾아야 한다. 이 일로 하여 종교간의 불신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다른 종교와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반대운동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벗님글방에서 가저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