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의 문화를 깨우는 사람들

바디클렌저를 바꾸었다 / 살림이야기에서

▪살림문화재단▪ 2015. 8. 1. 00:44

[ 세제 바꾸고 줄이고 ]

 

바디클렌저를 바꾸었다

글 \ 사진 이선미 편집부

생각해 봤다. 내 얼굴, 내 머리, 내 몸. 매일 화학성분 충만한 세제로 ‘세탁’해야 할 만큼 더러울까? 깨끗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내 자신을 너무 업신여긴 건 아닐까? 이제 나는 ‘씻는다’는 행위에 대해서는 오히려 좀 무딘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씻으며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매일 폼클렌저로 두 번씩 세안하던 날들

먼저 나를 소개해야겠다. 나는 서울에 사는 30대 중반 여성으로, 주 5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봄, 가을, 겨울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여름에는 매일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다른 사람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상시에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선크림을 바르는 정도.

그런데도 세안은 엄청나게 열심히 했다. 매일 저녁 클렌징오일로 온 얼굴을 꼼꼼하게 문지르고 폼클렌저를 두 번씩 썼으며,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스크럽으로 각질을 없앴다. 아침에도 폼클렌저로 세안했다. 샤워의 경우 여름철에는 산뜻한 느낌을 위해 시중에서 파는 합성비누를, 겨울철에는 보습력이 좋다는 바디클렌저를 때마다 썼다. 샤워퍼프로 거품을 듬뿍내어 씻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이를 닦을 때는 박하향이 나는 치약을 즐겨 썼다. 양치질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입안에 화한 향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을 때는 늘 샴푸와 헤어트리트먼트를 썼다. 삼겹살 등 기름지고 냄새 나는 음식을 먹은 날이면 샴푸를 두 번씩 했고, 일주일에 1~2회 정도는 헤어팩이나 헤어마스크를 써서 부드럽게 한 머릿결에 스스로 도취되기도 했다.

 

물비누로 바꾸자 각질·가려움 사라져

스무 살 때부터 가깝게 지낸 친구들 모임 이름은 ‘샴푸의 요정’이다. 비웃지 마시라. 우리가 진짜 뭐 요정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 모이면 샴푸 이야기만 해서 붙인 이름이다. 우리 모두는 공통의 고민이 있는데 그건 바로 탈모다. 두피가 훤히 드러날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예전에 비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게 우리를 괴롭혔다. 각자 정보망을 가동해서 좋은 샴푸를 알아내고 함께 써 봤다. 백화점에서 파는 아주 비싼 제품부터 외국 사이트에서 파는 유기농 제품까지 유명한 샴푸는 거의 다 써 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어떤 친구는 피부과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으며 처방받은 샴푸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을 써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샴푸를 사고 찾는 데 들이는 돈과 시간이 아까워졌고, 지금까지 써 온 샴푸들에 배신감도 들었다. 샴푸는 탈모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싶었고, 어차피 그게 그거라면 구하기도 쉽고 성분도 좋다는 생협 샴푸를 써 봐야지 했다. 사용후기를 보니 머리카락이 뻣뻣해진다,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 등이 있었지만 기존에 써 본 탈모방지샴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탈모가 획기적으로 사라지지는 않지만 200㎖에 3만 원가량 하는 수입샴푸와 비교했을 때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어느 날, 아무리 바디로션을 발라도 다리에 하얗게 각질이 일어났다. 시판비누로 샤워하는 게 문제인가 싶어 마트에서 보습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바디클렌저를 사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각질은 덜 일어나는데 가려움이 생기는 것 아닌가. 1/3도 안 쓰고 더는 못 쓰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살림 물비누를 쓰기 시작했다. 향이 나쁘다는 의견들이 꽤 있었는데, 어차피 몸에 오래 남지도 않는 거라 나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평소 바디클렌저를 쓰던 양만큼 샤워퍼프에 덜었는데 거품이 엄청 많이 나서 놀랐다. ‘아, 조금만 써도 되는구나’ 싶어 다음부턴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씩만 쓴다. 거품은 물에 금방 씻겨서, 바디클렌저를 쓸 때는 샤워퍼프를 헹궈도 헹궈도 거품이 계속 나왔는데 물비누는 그렇지 않았다. 신기하게 각질과 가려움도 사라졌다.

양치질을 하고 나면 향은 좋지만 입안이 쉽게 마르고 텁텁해지는 걸 느끼면서 치약도 생협 것으로 바꾸었다. 처음엔 익숙하던 거품이 나지 않고 화한 느낌이 없어서 ‘이제 뭐지?’ 했다. 하지만 계속 쓰다보니 자극 없이 개운한 느낌이란 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거품이 없으니 입안을 헹굴 때도 신경이 덜 쓰인다.

 

 

<현재 쓰고 있는 세제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오는 나는 샴푸로, 머리카락이 짧은 남편은 창포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긴 머리는 비누로 감기가 좀 불편했다.>

 

생수병·빗·거품망이 효자

세제를 바꾸기도 했지만, 쓰는 횟수도 줄였다. 지금은 한 번 샴푸를 썼으면 다음 한 번은 물로만 머리를 감는다. 샤워도 물로만 하다가 일주일에 1~2번 정도만 물비누를 쓰고, 이때 샤워퍼프에 남아 있는 거품으로 세안하면 폼클렌저를 따로 쓸 필요가 없다. 또 아침 세안은 물로만 가볍게 한다.

도구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나는 늘 생각보다 샴푸를 많이 쓰곤 했는데, 거품을 잘 못 냈기 때문이다. 샴푸를 쓰기 전 두피를 충분히 물에 적시고 샴푸 원액이 두피에 직접 닿지 않게끔 거품을 내어 머리를 감으라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샴푸를 손에 덜어 비비는 것으로는 부족했고, 세숫대야에 샴푸를 넣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 거품을 만드는 것은 번거로웠다. 고민 끝에 내가 생각해 낸 것은 빈 생수병. 350 또는 500㎖ 생수병에 샴푸를 넣고 물을 반 정도 채운 다음 흔들면 거품물이 생긴다. 이걸 정수리에서부터 조금씩 부으면서 머리를 감으면 두피도 잘 적셔지고 거품도 잘 난다. 무엇보다 샴푸를 조금만 써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빗도 필수품이다. 머리를 감기 전에 빗질을 하면 머리카락이 엉키는 것을 막아 주어 린스류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엉킴을 억지로 풀어내며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도 했는데, 빗질을 하면서 소중한 머리카락을 많이 지킬 수 있었다. 또 거품망을 쓰면 적은 양의 비누나 폼클렌저로도 거품을 풍부하게 낼 수 있어, 특히 거품이 잘 안 나는 천연세제를 쓸 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샤워퍼프도 거품망과 마찬가지다. 단, 샤워퍼프를 바로 몸에 문지르기보다는 거품만 덜어서 몸을 씻는 게 피부 자극을 막을 수 있다.

 

<내가 씻을 때마다 쓰는 빗, 생수병, 거품망. 거품망 안에 비누를 넣어 두면 찬물로 손을 씻을 때도 거품을 쉽게 낼 수 있고, 비누를 끝까지 다 쓸 수 있다.>

 

먹는 것 고르듯 세제 선택하자

먹는 걸 유기농이나 천연 재료로 바꾸는 것은 쉬웠지만, 세제를 바꾸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세정력이 떨어질 거라는 이유였다. 내 입에 들어오는 거나 내 몸에 들어오는 거나 다르지 않다는 걸, 세제 역시 음식처럼 건강과 환경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는 걸 예전엔 잘 생각하지 못했다.

좀 웃기는 말이지만 나는 ‘원래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씻는 데 집착했던 것 같다. 화장을 하거나 뭔가를 바르지 않아도 원래부터 피부가 좋고 머릿결이 윤기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세안도 자주 꼼꼼히 하고 샴푸와 린스도 많이 써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세제를 바꾸고 덜 쓰게 된 데에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뀐 것도 한몫한다. 나는 이제 여러 가지 세제로 씻어야 피부가 더 깨끗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헤어트리트먼트와 린스를 많이 발라야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뻔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화가 잘 되고 속이 편안해야, 고민이 없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얼굴도 머릿결도 빛난다. 미백 기능이 있는 폼클렌저 등으로는 안 되는 거였다.

물로만 씻거나 천연세제를 직접 만들어쓰는 ‘고수’들에 비하면 나는 한참 모자랄 것이다. 아직은 찝찝한 느낌이 들어도 아주 엄격하게 참고 견디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며칠은 물로만 샤워해도 괜찮지만, 가끔은 물비누를 써야 상쾌함을 느낀다. 아침에는 물로만 세안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전에는 낮 동안 발랐던 선크림을 지우며 비누 세안을 한다. 어쩌다가 불량식품을 먹는 것처럼, 가끔은 시판 치약을 쓰며 화한 느낌을 다시 느껴 보기도 한다. 다만 할 수 있는 만큼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 그래서 점점 더 나아지는 것이 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