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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공공의료다 / [살림이야기]

▪살림문화재단▪ 2015. 8. 1. 00:29

[ 살림의 현장-의사 우석균 씨에게 메르스 유행에 대해 묻다 ]

 

결국은 공공의료다

글 \ 사진 이선미 편집부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감염증, 메르스가 한국을 공포에 빠트렸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발생 수가 두 번째로 높다. 이역만리의 낯선 병이 어떻게 이토록 우리 생명을 위협하게 된 건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석균 씨는 "메르스가 발생하자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뚜렷이 부각됐다."며, "수익성을 기준으로 병원을 평가하는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병원이 공공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돈보다 생명'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도뇌이게 한다.

 

 

지난 6월 16일 의사이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인 우석균 씨를 만났다. “제가 요즘 굉장히 말이 빨라요.”라는 말에서 메르스 때문에 얼마나 바쁜지 어느 정도 느껴졌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메르스 확진자를 ‘몇 번 환자’로 부르는 것을 미안해했다. 아픈 사람을 ‘감염원’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글에서는 편의상 몇 번 환자로 썼지만, 그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국가의 부재, 질병의 창궐

지난 5월 20일 국내에서 첫 번째로 메르스 환자가 확인됐다. 다음날 정부는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대화해야 전염될 수 있다.”며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다. 6월 3일 메르스가 발생한 지 13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메르스 관련 회의를 열었다.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35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한 다음 날, 정부는 1번 환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을 공개했고 6월 7일 추가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24개 병원 이름을 공개했다. 6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라는 게 중동식 독감이라 할 수 있다.”면서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6월 22일 오전 9시 기준 격리자 수는 3천833명(자가격리 3천 48명, 기관격리 785명), 확진자 수는 172명, 사망자 수는 27명이다.

우석균 씨는 “제일 큰 문제는 정부가 어느 병원이 위험한지 정보를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던 점”이라고 말한다. 5월 27일 일명 ‘슈퍼전파자’라고 불리는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거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왔을 때, 그가 메르스 의심환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정부가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6월 5일이 되어서야 1번 환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을 공개했고, 평택성모병원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병원 이름을 일찍 알려만 줬어도 유행을 크게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또한 그는 발병 초기에 역학조사를 해서 감염을 차단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첫 번째 환자가 확진됐을 때 격리를 통해 다음 감염자를 차단했어야 했는데, 확진자가 있던 8층을 비우기만 했을 뿐 나머지 병동 환자들을 방치한 결과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등으로 메르스가 더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시작된 1차 유행과 삼성서울병원의 2차 유행 때 역학조사를 해서 감염자들을 관리, 차단했다면 그 단계에서 끝났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정부가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전 국민이 역학조사를 하고 있는 셈이죠.”

 

 

지역에 공공병원이 없다

경기 평택에서 처음 발생한 메르스 확진자가 동네에서 갈 수 있는 공공병원은 하나도 없었다. “평택에 있는 여섯 개 병원 중 공공병원은 하나도 없어요. 평택뿐 아니라 화성에도 없어요.” 지역거점공공병원이 있었다면 그곳에 마련된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역에서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지역의료체계가 미비한 까닭에 1번 환자는 서울의 소위 ‘큰 병원’으로 왔고, 이것이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원인이 됐다.

우석균 씨는 “메르스가 한국 의료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원래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 약간의 실마리를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가에는 공중보건 의료체계와 공중방역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메르스가 유행하면서 이를 부랴부랴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지역거점공공병원이 있고 이들이 감염병지정병원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야 ‘메르스 중점치료병원’을 지정하는 형편이다.

“2003년 한국에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발생했을 때 질병관리본부가 만들어졌을 뿐 공공병원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2009년 신종플루(신종 인플루엔자) 때 지금의 국가지정격리병상 백 몇 개가 생겼습니다. 현재 지역거점공공병원이 38개입니다. 지자체는 240개가 넘는데, 턱없이 부족한 거죠.” 한국 공공병원의 병상 비율은 전체 병상의 11% 수준으로 유럽 국가들의 90%에 비하면 8~9분의 1 수준, 미국, 일본 등의 34~36%에 비해서도 3분의 1 수준이다. 그는 “학교 대부분이 공립인 것처럼 병원도 그래야 정상”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평택성모병원을 평택시가 구입하여 시립병원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의 수가 부족한 것뿐만 아니라 공공병원을 홀대하는 것도 문제다. “평소엔 공립병원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제야 찾는 거죠. 국가지정격리병상은 주로 국립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 같은 공공병원, 국립대병원에 있어요. 사립대병원엔 거의 없고요.”

 

 

생명보다 돈, 환자보다 이윤이라니

메르스 2차 유행지였던 삼성서울병원이 부분 폐쇄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비정규직이던 이송요원(137번 환자)이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이송요원이 외부용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관리 명단에서 빠트린 것으로 밝혀졌다. “평균적으로 전체 병원 노동자 중 약 20%가 비정규직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노조가 없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다른 데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요.” 그 결과 3차 유행, 4차 감염을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오고 있다.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청소노동자나 이송요원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죠. 특히 이송요원은 환자를 병실에까지 누이고 병동을 다 지나다니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익성 확대를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하면서 이들을 차별한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낳는지 보여 줍니다.”

게다가 공공병원을 포함해 병원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 또한 수익성인 까닭에, 매달 전기요금만 수천만 원이 든다는 음압격리병상 등 비용이 많이 드는 필수 시설을 갖추기 어렵다. 이렇게 병원이 수익성에 연연하게 되면 안전성은 보장하기 어려운데도, 정부는 지난해 의료법인 부대사업 확대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과 6차 투자 활성화 대책 발표 등으로 의료기관이 온천업, 호텔숙박업, 여행업, 체육시설, 건물임대업 등을 할 수 있게끔 허용했다. 환자를 대상으로 돈벌이 영리행위를 추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시장판으로 만드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만약 메르스가 발생했다면 병원 내 시설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모두 다 병에 노출됐을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여당은 메르스에 대한 대책으로 의료 산업화의 하나인 원격의료 도입을 언급하고, 정부는 삼성의료병원에 한시적으로 원격진료(전화진료)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병원이 공공성을 회복해야

“메르스로 한국 의료의 민낯이 완전히 드러난 거죠. 공공병원 부족, 병원 수익성 극대화, 의료전달체계 미비 등 기본 구조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는 “누구나 만날 하던대로 병원에 다니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병이 퍼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우리 일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병원이 본연의 성격, 공공성을 회복하는게 메르스를 극복하고 앞으로를 대비하는데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확충하는 한편, 공공병원은 물론 민간병원도 공공성을 훨씬 더 강화하도록 제도적·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의료 민영화도 막아야 하고요.”

특히 그는 ‘지역’을 강조했다. 지역의료전달체계가 허술하니 환자들은 지역 병원을 믿지 못하고 소위 ‘빅5병원’이라고 불리는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서울 소재 대형 병원에 몰린다. 그러다 보니 이들 병원 응급실에는 경증환자, 응급환자, 보호자, 퇴원하는 사람 등이 다 모여 ‘돗떼기 시장’이 되고 지역의료·공공의료는 나날이 무너진다. “또 병만 걸리면 다 서울로 올라가는데 지역을 지키고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의료 인프라 없이는 지역사회도, 공동체도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이를 위해서라도 지역사회에 뿌리박은 운동들이 중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국가가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이 없었다.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했다... 이와 같은 말을 우리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때에도 하고, 듣고, 기억했다. 예상치 못한 재난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까지 변함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어리석다 하는데,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참고
《대한민국 의료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엮음, 살림터 펴냄,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