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단상(한국타임즈)

[조사] 고 만암 이황 친구를 보내며...

▪살림문화재단▪ 2019. 10. 6. 17:04



- 조 사 -

 

고 만암 이황 친구를 보내며

벗이여 편히 가시게


오늘 우리는 만암 이황 친구가 떠나시는 길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합니다

민족사의 잘린 허리의 상체기가 상흔으로 굳어가는 19541217

남도 해남 마산의 시골마을 산막리에서 원주본관 이훈 최영순의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18세가 되던 1972년 유신체제를 비판한 전국 최초의 반유신 선언문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6개월여 옥고를 치루며 어두운 미 증류의 세계에 몸을 담그게 됩니다.

 

눈알이 말똥말똥한 어린 학생이 대학생과 성인이 함께 선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시작하면서 법정의 방청석은 부끄러움에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후일담은 47년이 지난 지금도 항간에 회자되어 아픈 민족사로 남습니다.

 

출옥과 함께 화려한 흑암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고자 73년 전남 최초로 자연건강치유법을 배우며 고 장두석선생과 민간건강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76년 함평 고구마사건을 기점으로 자연요법 지도, 들불야학 교재작업 등을 하며 여러 공장을 나돌면서 노동운동의 조직화와 문화운동과 다양한 민주화운동 환경운동을 해왔습니다 운동으로 점철된 삶은 늘 곤궁 하였습니다

 

곤궁한 삶을 벗어나고자 생계를 위한 사업에 몰두해 가장으로의 담담히 그 몫을 해냈지만 오래가지 못한 기억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아내인 신지윤여사가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한정식당 화랑궁회관은 광주에서 중요한 논의를 해온 공론장이었고 시민사회운동가들 가운데 밥 한 끼니 신세안진 사람 없을 만큼 손길도 넉넉했지요, 문재인 대표, 문재인대통령이 두 번이나 다녀갈 만큼 명소가 되기도 했지요.

 

80년대를 기점으로 한반도 변혁운동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인은 그림자처럼 드러나지 않는 이론과 글 작업을 통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세속의 학문적 자격을 갖추고 유불도 서교를 섭렵하고 그 정점에 선 주역을 강단에서 가르치고자 '만암주역학연구소'를 개설하고 '원광대 대학원' 등지에서 세상의 비밀 한 자락을 가르치는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문과 영성으로 한 지경을 넘어서는가 싶더니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몸의 한계에 끄달려 다음 생으로 건너서게 되었습니다.

 

성공회의 신부로서 벗에게 늘 빛 진자로 살아온, 오랜 지기로 정든 친구이자 동지인 친구를 먼저 보내야하는 애통한 마음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3년 전 대장암을 발견하고 잘 된 수술 자국을 만지며 잘 극복해내리라 믿고 격려를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고인으로 보내야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참담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생전의 호방한 가운데도 환희 웃어주던 모습과 잔잔한 애정이 충만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아련합니다.

 

고인의 가족은 광주지역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운동에 기록적인 8남매 중 5남매가 연루되었던 동생 이연(59)이 형에 달포가량을 앞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가족사에 이런 운명도 있는지 아직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듯이 벗님은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사리에 밝은 생각을 말하고 그렇게 살아온...

잘생긴 친구를 우리 모두는 사랑하고 존경해 왔는데

우리를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나시는구려..

 

우리는 사랑하는 벗 만암 이황친구는 아직 풀지 못한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갑니다.

사랑하는 아들 동호와 딸 반야.. 며느리와 사위도 보고 고마운 아내와 함께 손자손녀의 재롱도 봤어야 하는데...

못 다한 숙제는 내려놓고 사인교를 타고 가실 새 하늘에서 지켜보고 돌봐 주시게...

 

아픔을 견디며 미국에서 연수받고 있는 과년한 딸아이를 보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어 눈을 감지 못하다가도 딸아이가 비행기를 탔으니 곧 온다는 한 마디에 파아~ 한 웃음을 전하는 저 딸 바보를 어찌 할꼬...

이토록 허무하게 가족과 동지들을 놓고 홀연히 떠나가시는구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네, 가족과 친지 동지들은 이황 벗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가시더라도 여기에 함께한 우리들은 그대를 영원히 기억하고 하염없이 그리워 할 것이라고..

잠시 아쉽고, 벅찬 슬픔이 우리를 짓눌러도 오래 오래토록 기억하고 그리워 할 것입니다.

한번 왔다가는 삶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이 축복이지요.

 

아쉬움이 남는다면 우리보다 조금 먼저 병고로 자유로운 영이 낡은 육에 끄달리기 보다 떠나가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 또한 축복이려니.. 우리는 받아들이며 떠나는 길을 축복합니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았던 그 미소는 함께 보낸 시간만큼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기에 더욱 아픈 상상으로 우리를 진동케 합니다.

 

당신이 떠난 우리 마음의 빈자리는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사랑하고 존경했던 당신, 이황벗님, 영면에 드시고 아쉽지만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축복으로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천지대자연의 이치와 법도를 받들어 이승에서 못 다한 아쉬움 이제 새 세상 새날에 마저 이루시고 그 크신 하느님의 성총을 입으소서...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저승에서 새로운 축복받는 생일을 맞이하소서.

 

2019. 10. 6

당신님의 벗 이우송 사제


기사원본보기 : http://www.hktimes.kr/read.php3?aid=157038120012056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