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연구소/섭리식전문가회원의 글

식생활문화와 건강

▪살림문화재단▪ 2010. 2. 6. 14:54

 

 

식생활문화와 건강

 

한국의 전통음식은 오랜 농경생활 속에서 정형화된 식생활문화의 소산이다. 장(된장, 간장, 고추장), 장아찌, 김치, 젓갈류와 같은 다양한 발효식품과 여러 음식재료들을 배합하여 맛을 내는 찌개, 탕, 전골 등 조리법에서 독특한 식생활 양식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또 한국인이 자랑할 만한 값진 유산인데 다음 두 가지 직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의 전통음식은 식생활문화의 소산

첫째, 각 식품군의 효용성을 근거로 식품의 합리적인 섭취 비율을 안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곡식, 채소, 생선·육류, 과일의 효용을 각각 양(養), 충(充), 익(益), 조(助)로 구분하여 말한다. 즉 곡식(오곡)을 주식으로 몸의 기력을 기르고(養), 채소로 모자라는 것을 채우며(充), 생선·육류로 기력을 돋우고(益), 과일로 원활한 생리활동을 돕는다(助)는 뜻이다. 養·充·益·助란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균형식의 지표인 셈이다.

둘째, 동양사상의 뿌리인 음양론에 바탕을 둔 체질인식이다. 사람의 몸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한열(寒熱)·건습(乾濕) 반응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름에는 밖이 뜨겁고 안이 차다. 겨울에는 밖이 차고 안이 뜨겁다'라고 흔히 표현한다. 채소나 과일도 찬 것과 뜨거운 것을 가린다. 한국인은 여름엔 삼계탕을 즐겨 먹으며 겨울철엔 메밀국수를 별미로 친다. 음양으로 보면 삼계탕의 재료인 인삼, 찹쌀, 닭고기, 마늘, 녹각 등의 기질은 뜨거운 양(陽)에 속하고, 메밀은 차가운 음(陰)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 삼계탕은 속을 뜨겁게 데워 안에 있는 찬 기운을 밖으로 끌어내려는 것이고, 겨울철 메밀국수는 속을 식혀 안에 있는 열기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다. 인체 생리의 한열 반응을 음식물의 기질과 조화시킴으로써 달라진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삶의 활력을 유지하려는 계절을 나는 슬기이다.

민간요법에도 음양의 이치가 담겨 있다. 설사가 나면 감꼭지나 밤의 속껍질을 달여 먹인다. 감꼭지(陰)는 양체질의 사람에게, 밤(陽)속껍질은 음체질의 사람에게 잘 듣는다. 몸이 차고 습해서 땀을 낼 때 개구리밥(부평초·陽)을 약제로 쓰고 산간에서는 찬비에 젖어 몸이 부을 때 버섯국(陽)을 끓여 먹인다.
한의학의 약물학인 본초학(本草學)은 그 정수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를 바탕으로 모양(形), 빛깔(色), 기운(氣), 맛(味)을 살펴 약물의 본성(藥性)을 규명한다. 특히 氣와 味를 중시하여 기미론(氣味論)이라 한다. 또 다섯 가지 맛(五味)을 오장(五臟)에 배속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흔히 어린 사슴뿔(鹿茸), 인삼, 웅담을 보약제로 쓰는데, 이것들은 양물(陽物)이라서 몸에 열이 많은 양체질(陽 質)의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

음양을 안배하여 자연조화를 모색하는 식생활양식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기후풍토를 지닌 한국은 사람의 체질이나 동식물의 기질이 다양할 뿐 아니라 식생활 전통이 농경·공동체사회의 틀 속에서 싹터 왔다. 다양한 기질을 지닌 음식재료들을 적절하게 배합 조리하여 재료들의 극성을 약화시킴으로써 누가 먹어도 탈이 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이 같은 직관이 싹트지 않았나 싶다. 앞서 소개한 찌개, 탕, 전골 등 전통 조리법도 이와 무관치 않다. 寒·熱과 乾·濕을 음양의 짝으로 안배하여 자연조화를 모색하려 한 한국인들의 직관의식은 이처럼 생활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인의 식생활 전통에 내재된 체질인식은 18세기 초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선생의 사상의학(四象 學)에서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에 와서야 한국사회의 일각에서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기초로 사람의 체형, 생리·심리적 경향, 진동자에 대한 반응, 오링 테스트, 맥(脈)짚기 등을 통해 체질을 분류하고 '체질별 권장·금기식품 목록'을 설정하여 식생활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영양학자들로부터 편식을 조장해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체질개념을 식생활에 도입하려면 사람의 체질과 동식물의 기질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분류개념과 조화의 양식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체질분류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제마 선생은 체질에 따른 사람의 성정(性情)과 병리(病理)를 밝히고 같은 처방이라도 체질마다 약제를 가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체질별 권장·금기식품 목록도 이를 근거로 훗날 한의사들이 정리한 것일 뿐 분류체계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의 체질과 먹거리 사이에는 음양의 교감이 있어야

이것들에 대해 1980년부터 필자는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어떤 음식은 따뜻하다 하고 어떤 음식은 차다고 할까? 같은 음식을 먹는데 왜 어떤 사람은 탈이 나고 어떤 사람은 탈이 나지 않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연구하던 끝에 동식물의 생태는 태양과 물에 대한 유기적 반응에 의해 결정되고, 또 그것은 차고 따뜻한 자체의 기질에 따라 음양의 상대요소를 찾아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체생리의 한열·건습 반응도 이와 같아서 몸이 따뜻한 사람은 찬 기질을 지닌 것을 먹고 몸이 찬 사람은 따뜻한 기질을 지닌 것을 먹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태양과 물에 대한 동식물의 유기적인 반응 양태들을 추적하여 '체질분류요소'로 삼고, 이를 토대로 90년대 초에 '동·식물 체질분류표'를 완성했다. 그러나 태양과 물에 대한 동식물의 생태·생리적 유기반응과 음양의 상대성에 입각한 생명활동의 방향성이라는 자연조화의 이치를 기둥줄거리로 하여 체질별 섭생법을 전개하였다.

음식물은 저마다 특정한 토양과 기후풍토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자기 생명력을 키워온 생명의 산물이다. 몸에 필요한 영양물질을 공급하는 영양원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리균형에 필요하나 음양의 상대요소를 채워주는 기질적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의 체질과 먹을거리가 되는 동식물의 기질 사이에 음양의 교감이 있어야 원활한 영양활동과 생리적 균형이 이루어진다. 섭생에서는 사람이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단순한 영양활동이 아니라 자기 체질과 음양의 상대관계에 있는 자연의 요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체의 생리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생존양식 즉 자연조화의 이치로 보고 있다.

사람의 먹는 행위는 자연과 조화 이루는 생존양식

무엇보다 우리의 먹거리가 되고 있는 동식물의 체질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생태체질론이 참다운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체질에 따른 생태섭생'이라는 본격적인 체질론의 단계에서는 적합하지 못한 요소들이 많다.
체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영양학이 추구해온 '영양의 균형', 즉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 체질은 모든 생명체들이 자기 체질과 상대되는 요소를 찾아가는 생명력의 표현이자 생명활동의 방향성이다. 달리 말해서 사람의 섭취대상이 되는 동식물은 영양물질이기에 앞서 사람의 체질과 상대조화를 이루어야 할 생명의 요소인 것이다. 아무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라도 그것이 몸의 요구, 즉 체질에 맞는 영양물질에서 얻어낸 것이 아니면 생명활동에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체질별 생태섭생 실천으로 이상적 식생활문화 정착

현대 영양학은 '영양과 열량의 균형'을 추구하며, 영양학의 성과는 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개개인 몸의 요구를 읽을 수는 없다. 영양학에서 다 다른 개개인 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상적인 미래의 식생활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무엇보다도 체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관심과 생태체질섭생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 운동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사료된다.

 

  허봉수   한국섭생연구원 원장

* 허봉수 선생은 식품영양학박사로서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리와 출발점 및 견해는 다소 다르지만 섭생에 관한한 이분 만큼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선생님이 없다고 봅니다. [이경제 우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