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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책읽는 시민, 통섭의 기반 닦는다

▪살림문화재단▪ 2010. 2. 20. 03:29

책읽는 시민, 통섭의 기반 닦는다
<굿모닝세미나>, 통섭학자 최재천과의 대화


청명한 3월의 아침, 너른 창으로 도톰한 햇살 쏟아지고 책상 위의 찻잔과 책들이 꿈틀꿈틀 깨어난다. 잿빛 재킷을 걸친 중년 남성은 예의 그 온화한 미소를 짓고, 그를 에워싼 눈길은 설렘이 가득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두런두런 정겨운 인사가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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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커피 광고처럼 그윽한 장면이 펼쳐지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회의실. '굿모닝세미나- 저자와의 대화'가 열린 26일 오전 10시 풍경이다. 이날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와 함께 '지식의 통섭'을 공부하기 위해 십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

"이번 달에는 <지식의 통섭><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세 권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지식의 통섭>을 중심으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겠습니다."

원래 '굿모닝세미나'는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선정해 회원들끼리 3주간 읽은 후 마지막 주에 저자와 함께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 달은 특별히 "욕심을 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홍성희 참여연대 시민교육팀 간사는 말했다.


저녁이면 '집으로'... 육아와 공부·저술에 전념   

최재천 교수는 "어쩌다 보니 책을 많이 쓰게 됐다"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결혼 전에는 완강한 보수주의자였으나 부부가 같이 일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가정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저술, 강연, 학회 등 왕성한 사회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최재천 교수는 '저녁 시간에 약속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면서 밤에 안 나가려니 애로점이 많습니다. 저녁에 잡힌 대부분의 회의나 모임을 낮으로 옮기는 등 어려움이 컸지요. 거창한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어찌하다 보니 생활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는데 제가 그 덕을 많이 봅니다. 9시면 아이를 재우고 그 이후는 온전히 제 시간으로 썼습니다. 매일 꾸준히 공부하면서 글을 쓸 수 있었지요."

그 보배로운 시간들이 수년 간 쌓여 책으로 탄생했다. 최재천 교수는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도 만났고 삶이 계획보다 잘 풀려서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직접 추천사를 쓴 것까지 포함하면 그가 저술한 책은 모두 40여 권.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외유내강'한 그의 저서는 대부분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된 책은 <지식의 통섭>(주일우 공저/ 이음)이다.


21세기는 통섭 시대,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통섭'이란 말은 2005년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를 번역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의 대통합'을 의미하는 통섭은 최근 학계를 넘어 정계, 재계 등 전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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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ilience'를 번역하려는데 정합, 융합, 통합, 합일 등 여러 뜻을 고려했지만 적합치가 않았지요. 두툼한 국어사전을 1년 반 동안 끼고 살면서 '통섭(統攝)'이란 말을 만들어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원효대사님이 늘 쓰던 말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최고에 이르는 경지가 '화엄'인데 그 방법론이 '통섭'이라고 합니다. 통섭이 우리 동양의 학문적 방법이었던 거죠."

하버드대에서는 이미 1933년 '명예교우회(Society of Fellows)'가 세워졌다. 지식의 통합은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 간의 격식 없는 토론, 즉 '잡담'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실천에 옮긴 단체다. 최재천 교수는 1990년대 초반 미시간대학 명예교우회에서 '주니어 펠로우'로 꿈 같은 3년을 보냈다며 "그 3년이 내 학문의 주춧돌을 놓아주었다"고 고백했다.

"각 영역의 장벽이 무너지는 요즘 시대의 사회현상들은 거의 대부분 복잡계 수준의 문제들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홀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이죠. 요즘 대운하로 난리도 아닌데 그러한 문제는 절대 혼자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생태학자, 시민, 건설전문가, 경제학자 등 다 같이 모여서 결정해야 합니다. 여럿이 함께 넓게 파기 시작해야 더 나은 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굿모닝 세미나 회원들은 그가 펼치는 '통섭론'에 조용히 몰입했다. 끄덕끄덕 동의하다가 물끄러미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최재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통섭이 가능하겠냐고 사람들이 자꾸 묻는데 "가슴이 아프지만 불가능하다"고 답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에는 통섭이 가능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문과·이과를 나누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학문적 편식을 고착시키고 다양한 기회를 박탈하는 등 시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의 서류를 심사하면서 겪은 경험을 소개하며 "미술사를 전공할 경우라고 하더라도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 과학에서 적어도 두 과목은 대학생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 입학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경쟁력은 '외곬' 전문성이 아니라 전문인들 간의 유기적인 통섭에서 나옵니다. 대한민국 교육이 발전하려면 전공에 상관없이 기초학문 분야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2의 백남준이 나옵니다. 제가 요새 작정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립니다. 교육부가 문과 이과 없애는 교육안을 정해놓고 발표 시기를 보고 있다고요. 저를 팔아서 소문내고 다니세요.(웃음)"


책 읽는 시민, 통섭의 기반 닦는다

좌중에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통섭의 필요성과 비전을 설파하는 최재천 교수에게 공감과 존중의 눈빛이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는 굿모닝 세미나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처럼 다양한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통섭의 기반'을 닦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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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간사는 "굿모닝 세미나는 작년 10월에 시작해 현재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며 "통섭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부,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회원들은 그간 <페미니즘의 도전>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희망의 밥상> 등의 책을 읽고 저자와 대화를 갖기도 했다. 특히 <희망의 밥상>을 읽고 나서 일부 회원들은 채식을 시도하는 등 일상에 긍정적인 변화가 많다.

굿모닝 세미나 창단 멤버인 장정아(41)씨는 '책 읽는 엄마'로서 세미나에 대한 짧은 소회를 밝혔다.

"통섭에 대해 들으니 교수님이 직접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시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대부분 교육제도를 탓하는데 부모가 먼저 바뀌면 제도도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자기 성찰을 하다보면 무엇이 옳은 길인가가 보이거든요."

이 밖에 회원들은 최재천 교수에게 "학벌주의가 통섭에 걸림돌이 되지 않느냐" "유전자결정론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페미니스트로도 이름이 높은데 계기가 궁금하다" 등 다양한 질문과 의견을 내놓았다.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와 탄탄한 논리로 성심껏 답변을 들려준 최재천 교수는 "다름은 이음이 될 수 있다"는 멋진 결론으로 '통섭론'을 마무리했다.

굿모닝 세미나의 강연료를 받은 그는 "기부하겠다"며 조용히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군자는 세 가지 변함이 있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그 앞에 나가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어보면 정확하다."



* 본 글과 사진은 오마이뉴스 김지영 기자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출처 : 茗田의 차사랑
글쓴이 : 茗田 원글보기
메모 : 최재천을 사랑하는 모임이 필요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