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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문화재단▪ 2010. 2. 20. 03:54

ㆍ4대강 국민소송 앞장선 보수담론가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한 시간여 인터뷰하면서 그는 '말이 안된다'는 말을 스무 번도 넘게 했다. 정말 말이 안됐다. 인터뷰하기 전까지 정작 말이 안되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는 그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그랬다.

↑ “새만금 사업을 비롯한 지금까지의 환경소송 사건을 보면 공사를 진행한 과정은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어요. 다만 그 내용에 있어서 수질 개선이 계획대로 되느냐, 사업이 경제성은 있느냐는 등의 문제였거든요. 이번 사건은 그런 건 나중 문제고 일단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죠.”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환경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환경운동가를 비판했다. 3년 전에 낸 저서 < 비판적 환경주의자 > (브레인북스)를 보았을 때 그가 환경주의자인지 반환경주의자인지조차 아리송했다. 지금은 과거 '슬픔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비꼬던 환경운동권과 동지가 돼 있다. 그는 4대강사업위헌·위법심판을위한국민소송단(이하 국민소송단) 공동집행위원장, 4대강사업전면재검토국민서명운동본부(이하 국민서명운동본부) 고문이다.

또 하나 난해한 점은 그의 이념적 스펙트럼이다. '정통 보수 논객'이라는 별명 그대로 그는 진보 진영에 맞섰던 대표적인 '보수 담론가'(그는 '보수 논객'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였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비난하던 그가 이제는 보수 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사사건건 날을 세우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이 글은 '말이 안된다'는 말이 '말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 꼴이 됐다. 그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말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 교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1월 20일 서울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그를 만났다.

오늘 광우병을 보도한 < PD수첩 > 의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됐네요. 이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말이 안된다'고 주장한 사람으로서 소감이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판사가 소신껏 판결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내가 대학 2학년 때 미국에서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 났잖아요. 참 감명 깊었어요. 언론인이 자신이 쓴 기사나 보도 때문에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되거나 감옥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제 소신이기도 하지요. 보도가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안됩니다. 더욱이 명예훼손을 형사사건으로 다뤄서는 안되지요."

외국에서는 명예훼손이 형사사건의 대상이 아닙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는 아예 폐지했거나 있더라도 사문화됐어요. 다 민사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고의나 악의, 중대한 과실에 의한 오보가 아니면 민사재판 대상도 안되거든요."

이번 정부에서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들이 속속 무죄 판결이 나는데, 이 교수께서 적극 참여하고 있는 4대강 국민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재판은 서울에서 한 번, 부산에서 한 번 했어요."

4대강 국민소송의 내용은 두 가지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가재정법·하천법·환경영향평가법·문화재보호법 등을 위반했기 때문에 사업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앞에 말한 행정소송의 판결 때까지 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다. 국민소송단은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의 관할 법원인 서울행정법원과 부산·대전·전주지방법원에 이 두 가지 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법정 싸움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행정소송은 피해자가 분명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누구냐는 게 첫 번째 관건입니다. 예를 들면 한강 같으면 팔당 유기농단지나 여주의 침수 예상 지역 주민, 낙동강은 함안보 주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분들이 원고인 거죠. 두 번째는 이 소송이 굉장히 복잡하지 않습니까. 성격상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재판입니다. 1년 반이나 2년 뒤에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때는 이미 공사가 끝날 게 아닙니까. 우리가 소송을 제기한 다음에 국토해양부 장관이 1년 안에 70% 끝내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가처분신청을 냈는데 상반기 안에 판결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 필요한 게 있어요. 단순한 위법성뿐만 아니라 공사를 중지시키지 않으면 원고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보는 것을 입증해야 하거든요. 1심 재판에서 가장 크면서 어려운 문제예요."

재판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지만 분위기나 느낌은 어땠습니까.

"합법성 문제는… 정부 측이 주장하는 게 누가 봐도 우스운 거죠. 예비타당성 조사니 하천법상 계획 절차는 권고적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환경영향평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권고적 의무라는 말입니까. 국회가 만든 법률은 정부가 지킬 의무가 없다는 말 아닙니까. 국회가 통과시킨 법은 국민만 지키라는 거죠. 말이 안되는 얘기 아닙니까."

국민소송은 4대강 사업의 위법성만 지적하고 있고, 경제적 효과라든가 환경적 피해는 다루고 있지 않잖습니까. 사실은 그게 더 중요한 문제일 텐데요.

"새만금 사업을 비롯한 지금까지의 환경소송 사건을 보면 공사를 진행한 과정은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어요. 다만 그 내용에 있어 수질 개선이 계획대로 되느냐, 사업이 경제성은 있느냐는 등의 문제였거든요. 이번 사건은 그런 건 나중 문제고 일단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죠. 그 부분까지 지금 다루려면 굉장히 어려워요."

이 교수는 2008년 3월에 발족한 '한반도대운하를반대하는전국교수모임'(이하 운하반대교수모임)에 지난해 봄부터 참여하면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운하를 반대하는 이유를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리 호와 허드슨 강을 이어 시카고와 뉴욕을 뱃길로 연결한 미국 이리 운하의 경우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폐쇄됐다. 이는 운하에서 철도, 철도에서 도로, 나아가 고속도로로 발전해 온 내륙 운송의 역사를 반영한다. 또 하나는 만드는 데 1000여 년이 걸려 1992년 개통한 RMD 운하(Rhine-Main-Danube Canal)다. 이 운하는 관광 목적 외에 아무 쓸모가 없어 '20세기 바벨탑'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 이명박 정부를 불신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군요.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때 이명박 후보가 운하 때문에 진다고 생각했거든요. '운하는 시대착오'라는 말도 내가 만들어 낸 말이에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일에 가서 뱃길과 철도 다 건너뛰고 고속도로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때 외국에 두 번 갔습니다. 독일과 두바이잖아요. 가서 본 게 다 '바벨탑' 아닙니까. 내가 농담으로 그랬어요. '쌍바벨탑 정권'이 탄생했다고…."

운하반대교수모임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을 문제 삼는 것이 결국 운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진짜 운하를 안 한다면 4대강 정비는 필요하다고 봅니까.

"본류는 제가 볼 때 필요 없는 거죠. 정부에서도 본류 정비는 97% 끝났다고 과거 건설교통부가 얘기했습니다. 1990년에 여주가 잠기는 대홍수가 있었잖아요. 1990대 중반부터 2008년까지 정부가 환경부와 하려고 했던 하천 관리의 중요한 테마가 하천의 자연 복원이거든요. 보면 다 있어요. 시멘트를 바르고 한 것은 문제가 많으니 헐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정책이었죠. 4대강 마스터플랜을 만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자연회복형 하천 관리를 위해 연구비를 얼마나 썼습니까."

< 비판적 환경주의자 > 라는 저서를 보니 환경운동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4대강 국민소송을 하면서 그런 분들과 함께 일을 해 보니 어떻습니까.

"지금 환경단체 사람들이 다 바뀌었잖아요. 전성기 때 사람들은 다 빠졌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닙니다. 미국의 시민운동 하면 랠프 네이더 아닙니까. 네이더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나간 뒤에 남은 사람들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시민단체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환경운동과 관련해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것,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등의 문제죠."

이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앞세워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 문제에서 '얼리무버(Early Mover)를 자처하지 않습니까.


"나는 도대체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명진 스님 말마따나 세 푼 값어치가 없는 거죠. 전혀 점수를 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 교수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과 같은 학번인 서울대 법대 70학번이다. 대학 재학 시절 전태일 분신, 교련반대시위, 위수령, 유신쿠데타, 10·2데모 사태 등을 겪은 세대다. 그의 보수와 환경에 대한 가치관의 토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절부터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을 듯했다.

매우 혼란한 시절에 대학에 다녔습니다. 그때 공부만 했습니까.

"학생들의 생각은 다 같았잖아요. 다만 요즘 말하는 것과 같은 운동권은 없었어요. 김문수 지사 같은 분이 위장취업한 건 나중에 안 것이고…. 그 시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식은 가지고 있었죠."

법학을 공부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입니까.

"나는 판검사는 안 맞겠더라고요. AFKN 같은 영어 방송과 < 타임 > 지 등을 많이 보았는데,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나 워터게이트 사건 등이 저의 세계관에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도 1970년대가 미국에서 환경이 크게 이슈가 될 때가 아닙니까. 만날 (환경에 관한) 기사가 나오고 '지구의 날' 행사가 열리고 하니까 '아.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런 영향이 있는 데다 헌법이나 행정법 같은 건 이미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는 새로운 걸 찾다가 환경법을 택한 거죠. 지금은 많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사회과학 쪽에서 환경을 공부한 사람이 나 말고는 거의 없더라고요."

보수적 세계관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입니까.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으로 안보 문제가 크게 대두할 때 군 복무를 했어요. 해군본부에서 2년 근무하면서 국가 안보라는 게 장기독재를 위해 꾸며낸 얘기는 아니라는 걸 현장에서 많이 느꼈죠. 그 당시 미국은 카터 정부 때잖아요. 군대 내에 반미감정이 하늘을 뚫었어요. 나도 마찬가지였고요. 1970년대 미국 민주당에서 대통령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진 정치인이 에드먼드 머스키와 헨리 잭슨이에요. 두 사람 다 국내 이슈인 환경과 여성 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만 국가 안보에 대해서는 강경파였어요. 아주 뛰어난 분들이었죠. 그런데 카터는 그들을 제치고 집권하지만 결국 실패하잖습니까. 보수 성향의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로널드 레이건 때 공화당으로 가잖아요. 나도 그때 전향을 했죠, 하하하."

이 교수는 자신의 이념적 지향에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레이건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미국 보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버클리, 예일대 교수를 지낸 알렉산더 비켈을 꼽았다. 대학 시절에 배운 케인스 경제학과 뉴딜 정책에 빠져 있던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정반대 정책으로 보수혁명을 일으키고 공산권 붕괴를 앞당기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고국 폴란드와 동유럽을 공산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레이건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버클리는 세계 지성계가 진보 일색이던 1950년대에 지식운동으로서 보수를 탐구한 사람이다. 비켈은 사법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동시에 추구한 법학자다.

그러나 지금은 보수 진영을 비판하는 입장에 선 것처럼 보입니다. 맞습니까.


"요즘 우리나라에서 진보·보수라고 하는데 그 대상이 뭡니까. 언론 자유? 사법? 이런 기준으로 논쟁한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진보·보수 담론이 나온 게 노무현 정권 때예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담론을 자꾸 만들었잖아요. 거기에 대항해 나온 게 보수 담론 아닙니까.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보수 담론이) 다 죽었잖아요. 나는 비겁하다고 봐요. 예를 들면 혁신도시를 갖고 많이 얘기한 게 재정 낭비였어요. 지금 얘기해야 되는데 조용하잖아요. 정부가 작은 정부여야 한다는데 지금 정부가 하는 게 어디 작은 정부입니까. 어떻게 언론인을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분하려고 합니까. 여기에 보수가 어디 있고 진보가 어디 있느냐 말이죠. 말이 안되는 거죠."

논객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기고, 방송 출연,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활발하게 자기 주장과 비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논객은 남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고…, 선우휘·천관우 같은 분쯤 돼야 논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영어로 펀딧(pundit)이나 폴레미스트(polemist)라고 얘기를 하죠. 어떤 어젠더에 대해 관점이 분명한 사람을 말하죠. 중립적인 사람은 논객이라고 부를 수 없어요. 중도 논객이란 게 있을 수 없어요. 폴레미스트라면 담론 아닙니까. 유럽의 가장 큰 이슬람 문제라든가 동성애 같은 것에 대해 터부 영역이 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터부가 너무 많아요. 다들 마이크를 대면 제 말을 안 하잖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궁금증이 하나씩 풀리는 듯했다. 문제는 이 교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관점에 있는 게 아닐까. 진보와 보수에 대해 그의 말처럼 '말이 안되는 기준'을 갖고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누구'를 비판하는 것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라면 그것은 분명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할 일이다.

다시 4대강 문제로 돌아와서 재판이 어떻게 가야 된다거나 어떻게 갈 것으로 봅니까.

"본안 판결은 100% 승소한다고 봅니다. 위법성이 너무 많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걸 무시할 판사는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 없을 겁니다. 문제는 가처분신청인데, 판례를 보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위법성이 심각할 것 같으면 (판결에) 영향을 줘야 된다는 거죠. 이제까지 이런 소송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세기의 재판이 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 글·신동호 기획위원, 사진·김석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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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茗田의 차사랑
글쓴이 : 茗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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