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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인생과 예술

▪살림문화재단▪ 2013. 4. 1. 05:19

 

톨스토이의 인생과 예술



그의 인생이란 선에 대한 희구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인생의 의의는 선에 대한 노력 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선이 인생의 목적이며, 사람은 모두 이 목적을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이 각자가 자기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성 ― 신의 활동인 사랑을 통하여 선이라는 목적을 향하는 노력, 이것을 톨스토이는 인생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문제에서 출발하여 그는 이 목적에서 벗어난 그 어떠한 훌륭한 사상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단정하고, 인생의 의의를 그릇되게 해석시키는 허위의 과학과 사이비 종교를 비난하면서, 개인적인 행복과 참된 행복과의 차이를 논한다, 또 동물적인 생존과 합리적인 생활과의 차이를 밝히고, 결국 인간은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톨스토이는 루소 이후 그의 도덕적 저술로써 인간 양심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우리들의 개인적 생활(이기적 생활), 동물적 생활 속에서도 이성에 의해서 살아나가는 것이 올바른 인간생활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강조하는 그의 사상의 특색은 그 목표를 현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상이 바로 실행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의 활동이므로, 현재의 활동에 있어서 사랑을 표시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의 생활을 무시하고 미래의 행복을 약속하는 그러한 불합리를 그는 싫어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행복론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되며, 남을 위해서, 인류 전체의 행복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자기 행복만 생각하고 살면 그 희망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 즉 이성의 활동인 사랑을 가지고 일반 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며 그 가운데 올바른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부활》에서는 자비로 나타난다. 네흘류도프가 시베리아 여행 중에 느끼게 된 사랑은 오직 자비심의 발로였다. 그것은 만인에 대한 자비인 것이다. 온갖 생활의 체험을 지닌 네흘류도프가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악과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네흘류도프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태오의 복음서》 제5장과 제18장에서 발견하려고 하고 있다(제3부 28장).

"사람은 누구든지 죄가 없는 사람이 없으며 따라서 사람을 처벌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항상 모든 사람을 몇 번이고 끝없이 용서해야만 한다." 는 이 한 가지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흘류도프는 이 생각의 확증을 얻기 위하여 산상의 설교를 읽는다. 이 설교는 지극히 간단하고 실행하기 쉬운 것이며 만일 이대로 실행만 한다면 폭학도 없어지고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즉 지상천국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볼 때, 톨스토이의 사실적이면서도 생명이 약동하는 듯한 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까츄샤의 나이브한 첫사랑의 장면, 네흘류도프가 꺄츄샤를 유혹하는 안개 낀 부활제의 밤, 캬츄샤가 네흘류도프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비바람 치던 심야의 정거장, 변기에 앉아 있는 여죄수들의 모습, 감옥 안에서 진행되는 허식적인 종교의식, 죄인면회소의 광경, 영지에서 목격한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 시베리아 감옥에서의 정치범들과 일반죄인들의 심리조사 등에 능란했던 톨스토이는 그의 주인공은 물론 한번 등장했다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는 사소한 인물들, 예를 들어 재판관, 배심원, 시골의 촌장, 전옥의 딸 등과 같은 사소한 인물에까지도 각자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부조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간 육체의 모든 비밀을 꿰뚫고 있어서 심리적인 뉘앙스를 그에 대응하는 육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활》에서 까츄샤의 육체적인 외견이 그녀의 도덕적인 정신 상태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여러 번 묘사되고 있다. 즉 매력적인 까만 사팔눈이 반짝이는 귀엽고 순진한 둥근 얼굴은, 한때 살이 찌고 들떠서 매춘부의 음탕한 추파를 던지지만, 이윽고 시베리아 유형 길에서 도덕적인 갱생의 힘이 작용하게 되자. 또다시 그녀의 얼굴에서 예전의 활기가 넘쳐흐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가장 뛰어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에게서 볼 수 있었던 일체의 형이하적인 특질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또 달리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보는 모든 것이 그의 감각에 호소하고 매혹시켰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 톨스토이만큼 철저한 사실주의자는 없었고 또 그만큼 구체성과 이 세상의 생존의 색조에 애착을 가진 작가도 드물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소설에 그토록 발랄한 생명감을 부여해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톨스토이 예술의 또 하나의 커다란 특징은 그의 작품의 자서전적인 요소에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현실과 공상을 결합시킨 타인들을 주로 묘사하면서 자기의 사상과 불안을 표현했지만, 철저한 사실주의자였던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과 그의 생활에 있었던 실제의 사건을 주로 묘사했다. 그의 초기 3부작 《유년시대》(1852년) 《12월의 세바스또뽈리》(1855년)에서 톨스토이는 자기를 니콜렌까라는 이름으로 묘사했고, 《까자흐 사람들》에서는 올레닌으로, 《전쟁과 평화》에서는 삐에르로, 그리고 마지막 작품 《부활》에서는 네흘류도프로 자신을 그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화상의 묘사는 흔히 객관적인 실재성을 결여할 우려가 많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완숙한 이 작품도 몇 가지 결함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 결함은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객관적인 실재성을 구비하지 못한 점이다, 이런 결함은 톨스토이 자신의 이상이 구현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전쟁과 평화》의 삐에르, 《안나까레니나》의 레빈보다 네흘류도프는 특히 모순이 많다. 그 까닭은 앞의 두 작품의 주인공의 나이는 집필한 당시의 톨스토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데 비하여 70세의 노인이 35세의 네흘류도프를 쓰자니 부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또 하나의 결함은, 로망 롤랑이 지적했듯이 엄밀한 사실적 관찰이 주가 된 제3부에 쓸데없는 복음서적인 결론이 너절하게 나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발표 당시에도 독자들의 그 같은 불만이 컸던 것으로, 이에 대해서 톨스토이는 "나 같은 노인이 그처럼 긴 세월을 보내고 작품을 쓸 때는 사람들이 잊고 있던 복음서 구절을 한번 회상케 하려는 생각이 어찌 안 들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활》에서는 작가의 서정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부활》은 인간에 대한 고민의 가장 아름다운 시이다. 그래서 로망 롤랑은 "모든 작품 중 나는 이 작품 속에서 톨스토이의 가장 맑고, 바로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날카롭고 엷은 회색의 눈동자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영혼 속에 신을 보는 눈길을 느낀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사랑을 기조로 한 예술에서 출발하여 종교에 몰입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대문호임과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이며 종교가였던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세계문학사상 불굴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항시 인생에 대하여 절박한 고민을 체험하고 그 사상을 실현하느라고 애쓴 작가이다. 그리하여 그는 문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교육·난민구제의 방면에도 힘을 기울였다. 러시아의 부조리, 러시아의 크나큰 죄악에 대해서 행동으로써 속죄하려고 했던 것이다

출처 : voscjaskdlxm님의답변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