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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문화재단의 다석도방(다석채플) 개관행사/무하日誌/ 만수별곡萬壽別曲

▪살림문화재단▪ 2013. 4. 17. 04:57

 

 

살림문화재단의 다석도방(다석채플) 개관행사

 

무하日誌/ 만수별곡萬壽別曲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우송 신부에게서 초청장이 왔었다. 그가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있는 <살림문화재단>이 성남시에 <다석도방(多夕道房)>을 차리고 개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우송 신부는 1990년대에 광주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하고 초대 상임의장을 맡아 활동할 때 그도 환경운동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성공회 신부이다. 그런데 신부나 목사라면 으례 어딘지 무게를 잡을 것도 같은데 도대체 그런 모습이 모이지 않던 목자가 이우송 신부였다. 그렇게 소박하게 알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허물없이 지나게까지 되었다.

그가 교회를 그만두고 조각에 전념한다기에 참 별 재미있는 신부도 다 있다 생각했더니 이제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살가워졌고 몇년전에는 만주여행에 초청을 해주어 같이 다녀왔다.

그가 설립한 살림문화재단이 무엇을 하는가 궁금해 했는데, 경기도 성남시에 다석채플을 열고 기념강좌를 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다닐 때 만들었던 밀알회와 한울이 모임을 통해서 였다. 우리들에게 철학을 강의하고 일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함께 해주시던 김정호 선생님을 통해서다. 김정호 교수님은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종홍 교수님이 아끼는 제자가 되었고, 유영모 선생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이기도 하셨다.

그 김정호 교수는 당시에 전남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였고 독일에서 공부하시고 오셨던 서동익 박사가 계셨는데, 두분이 힘을 모아 무등산 중턱에 토담 움막을 지었는데 나는 무등산을 혼자 오르내리기를 좋아하여 날이 저문날이면 김정호 교수님의 아버님이 흑염소를 기르며 움막에서 거쳐하셨기 때문에 자주 들리는 편이었다.

이 움집에서 1963년으로 기억되는 해에 다석을 모시고 한울이수양회가 열렸다. 그리고 유영모 선생님께 직접 노자 도덕경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었다. 전남대 의대 한울이 모임은 밀알회에 나오던 학생들 가운데 김교수님에게 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배우면서 따로 시내에서 모이던 모임이 점차 의대생만의 모임으로 굳어진 학생동아리이다. 나는 농대생이었고 공대에 김세광군과 김명중이가 있었다. 한울이라는 이름도 내가 제안을 했는데, 실은 김정호 교수님, 함석헌 선생님을 따르면서 배운 이름이었다. 세상을 크게 울려보자는,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큰 포부였었다.

 

한울이 수양회에 오신 유영모 선생님은 겨울에도 널판지 위에서 담요한장으로 주무셨고, 단전호흡을 하시면서 주무셨는데 우리들이 숨을 몇번 씩 내쉴동안 한번 들이마시고 한번 내쉬는 심호흡을 하셨다. 우리들의 눈에는 도인(道人)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한 길이 없었다.

나는 그때 다석 선생님이 광주의 야경을 보시며 "광주는 빛고을이야, 빛이 있어야 돼!"하시던 말씀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틈만나면 "빛의 도시 광주"를 만들자고 역설하는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석채풀은 특별강연으로 '종교다원주의자 다석 유영모의 사상' 이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의가 있었다. 강사는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이었다.

오랫만에 다석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면모를 감명깊게 들었고 좋은 분들과의 교유(交遊)도 가졌다.

강의가 끝나고 약간의 프로그램이 진핸된 뒤 인근에서 모두 저녁을 같이 했는데 마침 한국4-H본부 회장의 임기를 마치고 성남에 살고 있는 김준기와 어린시절의 외가친구 장두원(아시아투데이 부회장)도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오라 해서 자리를 함께 했고 저녁 후에는 장두원 부부의 아파트로 초청을 받아 좋은 차를 대접받았고 기어히 찔러주는 여비까지 챙겨서 나왔다. 장두원 부회장은 KBS 보도부장을 역임할 당시 1980년 5.18의 진실을 최초로 보도했던 사람이다.

이후 그는 목이 잘려 직장을 잃고 8년만에 복직을 했으며, 88올림픽때는 대한민국의 실무책임자로 활동을 했었으며 복직 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5.18의 피해자이면서도 백담사에 유폐되어 있다시피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처음으로 취재해서 그 후 정치사에 상당한 역활을 했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