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69.대통령의 종교가 선택의 잣대가 되서는 안돼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55

 

대통령의 종교가 선택의 잣대가 되서는 안돼

 

우리 한국인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한 가지 이상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각 종교단체가 주장하는 신자의 숫자를 합하면 대한민국 인구수를 상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자기 교단의 교세를 과대히 선전하려는 세속적인 통계의 탓도 있겠으나 대권을 향 한 대통령 후보들의 야심에 찬 눈길이 종교인들에게 쏠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특정 종교의 장로 후보는 자기 교파의 신자들을 주머니속의 고정표 정도로 생각하고 타 종교의 집안잔치에 까지 눈독을 들이며 정치 행사장으로 만들고 다닙니다.

또한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선거 전략에 휘말린 종교 단체나 종단이 망국적인 지역감정만큼이나 사분오열되면서 신자들의 신앙에 까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후보들의 종교색에 따른 표몰이 현상에 대해 최근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등 5개의 종교 단체가 성명을 내고 각 후보에게 종교를 정치에 악용하지 말라는 경고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87년 대통령 선거 때 겪었던 아픔을 기억하며 이번에는 특정 종교를 향해 공약을 하거나 암묵적으로라도 특정 종교를 지원하는 낮은 수준의 정치판이 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일찌기 자유당 시절 기독교의 장로대통령을 뽑아서 정치를 맡겨본 경험도 있고 당시 경무대애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부끄러운 대통령이었습니다.

또 불교 신자가 대통령이 된 경험도 있었고 영부인이 별세했을 때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의 지도자들이 장례식에 참여해 각자 종교의 전례대로 장례식을 거행한 일도 경험했습니다.

물론 어느 구름에 비가 오려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 분의 영혼이 천당을 갔는지, 극락왕생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20세기를 맞이하여 우리들이 다원화 된 종교사회를 살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불제자인 대통령은 보국안민이 아닌 개인의 안위를 위해 십원권동전 뒷면의 다보탑 안에 부처님 조각을 새겨 넣어 항의하는 기막힌 경험도 해 보았습니다.

가치관에 있어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종교라고 한다면 정치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 곧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국회 안에는 정당을 달리 하면서도 자기 종교가 지향하는 대상을 향해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당파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국회의원이 얼마든지 있으며, 또한 종교는 다르면서도 당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의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가 대통령을 선택한다면 그가 어떤 종교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가 자기 종교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태국에서 방콕시장을 역임했던 잠롱시장을 기억할 것입니다. 자기 대중 앞에서 정직했고, 청빈했고, 정의로왔으며, 신앙이 돈독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종교의식도 성숙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속한 교파의 신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아집을 버리고 어느 후보가 자기 종교에 충실하고 백성의 편에 설 사람인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CBS 92.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