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태학(divine saminary)/오미아 단상

사랑으로 담는 김치

▪살림문화재단▪ 2013. 4. 21. 00:32

 

 

사랑으로 담는 김치 / 오미아

 

                                                                                            

아침 곤한 잠 눈 뜨기도 전에 전화기가 울려 댄다
핸드폰 벨소리가 아닌걸로 보아 엄마가 틀림 없다
엄마 밖에 모르는, 엄마만 사용하는 유일한 번호
잠을 깨우는 벨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섞인다

"여보세요 엄마야....무슨일이야 아침부터"

언제 집에 들릴거냐, 넌 왜 전화도 없냐,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부모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이나 쓰느냐는 등 오랜 레파토리를 늘어 놓으시는 어머니.
항상 듣는 말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른 잠 깨서 듣는 엄마의 투정 아닌 투정은 설익은 감처럼 떫기만 하다

"아랐어 이따 갈께..... 안그래도 오늘 들릴려구 했단 말야
김치도 떨어졌고 옷도 좀 챙겨오고 그럴려구 해"

엄마는 김치가 조금 밖에 없다고 걱정을 하시고, 옷 좀 제대로 챙겨 입고 다녀라,미장원은 언제 갈꺼냐,하고 다니는 꼴이 그게 뭐냐, 맨날 선머스마처럼 하고 다닌 다는 둥,편한 옷만 입으니까 배가 나온 다는 둥,못마땅한 딸에 대한 불만을 잔뜩 늘어 놓으시고 말미에 아빠 수술하시기 전에 한번 들르라고 하신다

"무슨 수술? 아빠가 아파?"

잠결에 잘못 들은건 아닌지,엄마가 잘못 말씀하신것은 아닌지 다시 반문을 하게된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잘 못 들었을꺼야 지난주에 뵐 때도 괜찮으셨는데 무슨소리야 수술이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가 아프신데?....병원 다녀 오셨어?"

이번주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이 양성 종양이라고, 장에 혹이 있어서 수술을 받으신다고,이번주 말에 수술하시니까 그렇게 알라고 하시고는 내 말도 끝내기전에 전화를 끊으신다.

멍한 아침에 머릿 속이 멍멍해지는 느낌....
그동안 바쁘다는 핑게로 건성으로 안부 전화나 하고 말았던 내자신이 마구 미워진다
약속이 오후에 잔뜩 있는데 어쩌나 ,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아빠가 편찮으시다는데 약속 핑게를 대는 내가 한심스러워진다

부리나케 챙겨서 집으로 향한다
내 눈으로 확인 전엔 아빠가 편찮으시다는 사실을 인정 할 수 없다
아니 인정하기 싫다. 아빠는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이셨는데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아빠.....
나의 가장 든든한 우방.....
내가 만난 최고의 남자.....

아빠는 항상 그렇게 강하고 멋진 모습으로만 계실거라는 나의 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래서 더욱 아빠의 아픔을 살피지 못했을지도,그저 내가 보고싶은데로만 보고말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송함이 밀려온다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내가 금방 간다고 연락했는데 어디에 가신걸까
편찮으시다는 아빠는 아픈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가신걸까
전화를 걸어본다
연결이 안 된다
혹시 갑자기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신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가실데가 없는데
조금전까지만 해도 기다리신다고 빨리 오라고 하셨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점점 불안해져 올때쯤
전화가 왔다

"미아야 집에 왔니?"

엄마는 아빠와 함께 장을 보러 가셨단다
김치거리를 사러 장보러 나왔는데 이제 들오오시는 길이 시라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엄마 내가 금방 온다고 했잖아. 그런데 장보러 가면 어떻게...
난 또 지금 약속 있어서 나가 봐야 된단 말이야"

엄마는 10분안에 도착하니까 얼굴이라도 보고 가라신다
그동안의 불안함을 떨쳐내는 반가운 소리에 나긋이 네 빨리 오세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난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잠시후 문이 열리고 아빠가 힘들게 배추를 들고 오신다
엄마는 밖에서 누군가와 말씀을 나누신다
아빠는 다시 밖으로 나가셔서 하염없이 짐을 안으로 나르신다
자세히 보니 다리를 절고 계셨다
거동이 많이 불편해 보이신다

배추가 도대체 몇포기야 김장도 아닌데
눈대중으로 보아도 대충 20포기는 넘는것 같다
그 많은 배추를 나르는 동안에도 엄마는 누구와의 대화가 그치지 않았다
물론 짐을 나르는건 아빠와 나였고
그 짐이 거의다 안으로 옮겨질때쯤 엄마는 웃으며 대화를 마치셨다

숨을 헐떡이시며 지치신 아빠에게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빨리 김치를 담자고 다그치신다
미아는 바쁘면 빨리 일보러 가라시며 분주히 움직이신다

순간 아빠의 지친 얼굴이 내 눈앞에 들어오고 이를 살피시지 못하시는 엄마의 무심함에 화가 치솟는다

"엄마는 어떻게 아빠가 내일 모래 수술하신다는데 이럴 수가 있어
김치를 오늘 꼭 담아야 돼?아픈 아빠를 이렇게 꼭 힘들게 해야되냐고"

엄마는 지금껏 아빠 없이 김치를 담으신 적이 없다
배추 씻고 나르고 힘든 허드렛일을 아빠가 해주시면, 엄마는 조제사 마냥 김치를 버무리고 간을 보시고는 뒷정리를 부탁하시고 쉬신다
물론 나머지 허드렛이도 아빠와 나의 몫이다

아빠가 입원하시면 엄마 혼자 김치를 담으셔야 될텐데
수술 후에도 얼마간은 기동하시기가 힘드실테니 걱정도 되셨을거다
게다가 내가 김치가 떨어졌다고 하니 어떻게든 움직이셨겠지만
불편한 몸으로 김치를 담는다는건 너무 무리한 일이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읽고나니 더욱 마음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는 정말 잔인한 사람이야
아픈사람 괴롭히는건 나하나로 되잖아
이젠 아빠까지 괴롭히려고 해
제발 좀 그만해
엄마는 아파본 적이 없으니까 아픈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알 턱이 없지
엄만 엄마 생각 밖에 안하지
그러니까 옆 사람이 골병이 드는거야"

그렇게 심하게 말하는게 아니었는데
괜한 죄책감에 변명처럼 한 말이었는데
엄마한테 한 말은 내게 한 말이었는데
나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죄스러워서
그냥 화를 내고 만건데

엄마의 울음 소리를 뒤로 한체
집을 뛰쳐 나와 버렸다

무거운 발걸음
무거운 마음

비가 내리는 무게만큼
버거운 시간이 흐르고

견디다 못한 나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힘없는 아빠의 목소리 많이 힘드신것 같다

"밥은 먹었니?
이왕 온거 밥이라도 먹고 가지
너 좋아하는 우엉조림에 된장국도 끓여 놨는데
아빠가 특별히 신경 써서 자작하게 해놨는데"

"미안해 아빠
아까는 정말 미안해
엄마는 괜찮아?"

"그래 괜찮아
아빠랑 하루 종일 김치 담고 있다
엄마가 아주 아빠 잡을라고 작정을 했다
봄에 김장 담느라고 힘들어 죽겠다 하하하"

"이럴 땐 김치 좀 사먹으면 되자나
김치 안 먹으면 죽나
힘들게 담느라고 사람만 고생하고"

"너 줄려고 담는거다
너 김치 없으면 그나마 라면도 안먹을거 아냐
그래서 아빠가 병원 가기전에 담아 주자고 그랬다
왜 엄마한테 그렇게 모질게 하냐
엄마도 힘든데"

"미안해 아빠
근데 이젠 내가 김치 담아줄께
나 이젠 김치도 잘 담고 밥도 잘해
아빠가 나 다 낳게 해줘서 이제는 뭐든지 할 수있단 말야
그러니까 내 걱정 말구 이젠 나한테 기대
아빠 먹고싶은거 내가 다 해줄테니까 말씀만 하세요
수술하고 나면 먹기 힘드니까 내일 가서 해드릴께요
빨리 주문하세요"

"너 걱정이나 해라
더이상 속 썩이지 말고
밥 좀 챙겨 먹구 다니고.
아빤 너 일이고 뭐고 하는거 다 싫다
그냥 건강하게 지내고 자식이나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아비 속을 알지
꼭 너같은 딸 하나 낳아라
이건 아빠의 복수다
그동안 나 속 썩인 죄
고스란히 받으라고"

"히히
내가 그럴까봐 알아서 안낳는거야
나 같은 딸 낳으면 끔찍 하자나
맨날 성깔만 부리고"

"아빤 너가 내 곁에 있어서 참 좋다
너가 맛난거 먹고 싶다면 해주고 싶고
예쁜 얼굴 보면 행복하고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널 보내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다고
그런데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씩씩한 우리딸
아프지 말고, 너가 하고픈거 다 하고
마니마니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빠는 수술 받으면 금방 나을꺼야
그러면 너가 맛난거 마니 해줘야돼 아랐지?"

"아빠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아빠 아픈거 정말로 싫다"

"아빠도 그랬어
할 수만 있으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었어
그치만 그냥 맥없이 지켜보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더구나
너가 잘 견뎌주니까 기특하고 안스럽고
이겨주니까 이젠 자랑스러워
아빠도 그럴꺼니까
너무 걱정말고, 더이상 속 좀 썩이지 마라"

"고마와 아빠
이젠 속 안 썩일께"

"이제 또 속 썩이면 그땐 내다 버릴거다
지긋지긋한 병 수발 이제는 사절이다
알았지"

"아랐쪄요
이젠 제가 아빠 병수발을 해야 되네
이번이 마지막이야 나도 담 번엔 도망 갈꺼야"

"걱정마 작은 수술이니까
너처럼 거창한 병 안 앓는다"

"아픈건 다 똑 같지뭐
아파야 쉬지 그치 아빠?
쉴려구 아픈거구나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그래 나도 좀 쉬자
너가 와서 김치 담아라"

"안돼 아빠
1시간후에 중요한 미팅이야"

"너가 담는 김치 맛 없어서 안먹을란다
차라리 내가 힘들어도 담는게 낫지"

"미안해 아빠"

"아니 난 너한테 해줄게 있어서 참 좋다
앞으로도 계속해줄거다
그러니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

"난 아빠한테 해준게 없네
속 썩이는 일말고는"

"살아있어주면 돼
행복하면 더 좋고"

"아빠 약속할께
절대 아빠 앞에 가는일 없을거야
아빠가 자랑스러워 하도록 열심히 살거구
행복한 모습 보여드릴께요
근데 알아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난 아빠 딸이라서 정말 행복해"

"징그럽다
얼릉 시집이나 가라"

"아빠 같은 남자 있느면 갈꺼야"

"시집 가긴 다 틀렸군
나같은 사람이 또 있을 줄 알아?"

"그럼 아빠랑 살지 뭐"

"난 엄마랑 살꺼다
너는 너가 알아서 구해라
배추 뒤집어야 된다 전화 끊어라"

"사랑해요 아빠
엄마한테 말 좀 잘 해줘요
미아가 많이 미안해 한다고"

"넌 혼나야돼
엄마 괴롭히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엄만데 내일 김치 가지러 와라
밑반찬도 해놨다
냉장고 청소도 좀 하고 빨래는 제때 하냐
집안을 돼지 우리처럼 해놨겠지
안 봐도 뻔하다 여자가 게을러서 어따 써먹냐
청소도 제때하고 쓰레기 집안에 오래두지마라"

"넵 걱정마십시요
빡빡 닦겠습니다
싸랑하는 어머니"

"넌 딸이 아니라 왠수야
밥 챙겨 먹어라"

너무 사랑 하기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너무 친해서 쉽게 상처를 주는걸
알면서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너무 잘 알면서 말입니다


*오미아박사(종교예술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