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연구소/安哲(안철)

안철선생의 동지이자 제자인 김정관시인의 추모글

▪살림문화재단▪ 2013. 6. 2. 01:45


안철선생의 동지이자 제자인 김정관시인의 추모글


금동리 벌판에서

=안 철 장로님 영전에 바칩니다.=

장로님이 계시지 않는

금동리 벌판에서

저 미치도록 푸른 산천을

저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베짜타 수도원 마당가에

장로님의 울음처럼 생명의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수도원 뜰에 피어있는 장미처럼

무엇이 한스러워 장로님은

그처럼, 붉게 붉게 피어나며 울고 있습니까.

장로님의 사랑이었던 가족들이

장로님의 육신이었던 베짜타 수도원이

장로님의 정신이었던 민주주의가

그처럼, 장로님이 좋아했던 장미꽃이

우리들의 마음을 붉게 붉게 물 드리고 있습니까.

금동 베짜타 수도원 마당가에

붉게 피어나는 장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장로님 몸은 우리들의 몸이었고

장로님 민주주의 정신은 우리 모두에 민주주의 정신이었고

장로님 생명사상은 우리 모두의 생명 살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장로님

장로님은 무엇이 한스러워

자꾸만 자꾸만 서럽게 피어나며

우리를 우리들을 부르고 있습니까.

금동 벌판에

저 미치도록 푸른 하늘에

장로님의 영혼처럼, 지금

생명사상이 비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안타까워 장로님은

그처럼 푸르게 푸르게 우리를

손짓하고 있습니까.

장로님의 학문이던 생명의 언어가

장로님의 삶이었던 감옥과 고문, 배신의 생애가

장로님의 길이었던 조국의 민주주의가

그처럼 당신을 묶어두고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까.

장로님

청년시절

군부독재와 싸우시다

긴급조치 9호로 투옥되시고

80년 광주 목포 민주화항쟁 그 역사적 현장에서는

목포 시민들에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그것이 죄라고

내란중요임무 종사 죄목으로 감옥 안에 투옥되었습니다.

왜?

왜! 장로님은

체포와, 구금, 구타, 고문, 동지로부터 배신으로

고난의 십자가를 스스로 지셨습니까.

장로님

장로님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좌우명으로

평생을 예수가 걸어 갔던 그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장로님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한 생애를 이 조국에 산제사로

드렸건만

장로님에게 돌아온 것은

고문 후유증이 골병이 되어 당뇨와 내경색과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기독교의 교회주의 신앙을 버리시고 자유의 신앙인이 되셨습니다.

교리주의의 노예 신앙을 털어버리시고

종교와 의학의 통전을 위하여

마지막 남은 생애를 바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온전한 생명이라 고백하시며

병 고침이 없이 생명의 구원은 없다.

치병이 구원의 시작이다 고 선포하셨습니다.

장로님,

장로님은 우리들에게 음식에서 선악과를 가르쳐주셨고

생명의 귀함을 몸으로 가르쳐주신 생명의 스승이셨습니다.

장로님

약사 선생님,

기독교 장로회청년연합회 전국회장님,

5,18목포시민투쟁위원장님

지구당 위원장님

베짜타 수도원 원장님

그토록 치열하게 온몸으로 조국에 민주주의와 싸우며

사랑하며 가족을 그리워하며 사신장로님

장로님. 이제는 자유의 몸으로 하늘나라에서

편히 안식 하십시오

장로님, 고마우신 장로님

길이길이 우리와 함께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금동벌판에 저녁노을이 목포를 붉게 붉게 물 드리며

해는 저물어 갑니다.

2003년 6월 22일 발인예배



=죽림리 반달=


어쨌든 해는 꺾어졌다.

물 땜에

쌈박질 해대던

김 서방도 월이 아부지도

동네 문방구 막걸리로

한낮의 더위와

두 사람의 욕지거리를

털어내고 있을 게다.

고개 숙여가는

막걸리 집 유리창 틈으로

피어나는 두 사람의

설운 울음 뒤로

반달이 구름 사이를 달린다.

쌀 수입개방인지

이라크전쟁 파병인지

태풍이 어디로 지나고

있다는데

농약 냄새를 안은 벼들의

울음 삭이는 소리가

발끝에 달려와 축축하다.

막걸리 잔 속

반달이

시커먼 구름 이는

탑리 쪽으로 달려가면

60년 묵은 시간덩이를

등짝에 진 십자가를

두 사람의 저벅거리는

울음이 고무신에

질질

끌려갈 게다.

한겨레신문2004년 8월 5일

김정관/전남 목포시 연산동

=태선이=

어둑한 이슬이 내리는

새벽 허리쯤에서

거름내 가득한

아픈 조국의 한가운데에서

녀석의 고무신은

쓰라림이다.

비내리는

가을 새벽날

덜 깬 숙취의 터널에서

서울에서 토해진

오물을 뒤집어쓰고

경운기로 근육통을 쓸어내며

벼가 익어가는 논으로

덜컹거리는

녀석의 기인 길은

아림이었다

트랙타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마르게 뱉어내는 이 땅에서

희망도

기쁨도

너에겐

허리짤린 조국의

구멍뚫린 무역전쟁 속에

묻혀진 벼씨앗이다.

어둑한 이슬이 걷혀진

내년 봄

이 철새들의 조국엔

건장한 볍씨 하나 불쑥 쏫아나

너의

88 오토바이 자욱 속에 서린

희미한 푸르름

하나하나 안고서

어느 새벽날

담배연기 쿨걱이며

가슴쓰려 할 게다.


한겨레신문2004년10월 13일 발표

김정관/전남 목포시 연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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