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연구소/安哲(안철)

생명과 구원(2)

▪살림문화재단▪ 2013. 6. 2. 01:57



생명과 구원(2) 


2. 생명과 죽임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물질의 가치가 최우선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질문명의 사회에서는 생명과 신의 자리에  물질을 신과 생명의  자리에 대신 갖다 앉혔다.

물질이 신이 된 자본주의 논리는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며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이것이 아니다”의 사유체제이다.

요즈음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자리는 물질의 부품에 불과하다. 생명의 소중함이나 존엄함이 물질보다 더 못함을 우리는 안다.

인간의 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생명은 죽임이며 신은 존재 하지 않는다. 니체라는 미치광이가 그랬던가? “신은 죽었다”고. 물질이 신과 생명을 대신하는 사회에서는 신은 죽어야 한다.

생명과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생명이 절대 진리의 자리에 있을 때만이 신은 존재하고 신은 생명을 주관한다. 그러기에 신은 생명이며 생명은 신이다. 

 

 


  도올 김용옥은 21세기의 3대 과제를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화해,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지식과 삶의 화해”를 말한다. 김지하는 “생명과 평화의 길”을 새 문명으로 이야기 한다. 장일조는 “세계는 본래 신과 인간과 자연의 통전합일로 되어 있는 전일적 체제”라고 규정한다.

 안 철은 “종교와 의학의 통전”을 말한다. 즉 종교와 의학의 통전은 정신(영혼)과 몸이 하나이고 영혼의 구원과 몸의 구원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풀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 철학사는 인류 사상사를   정신(이성)과 육체(몸), 선과 악, 현실과 내세를 갈라놓았다.

 

어떻게 정신 따로 몸 따로 존재 할 수 있단 말인가. 몸의 구원 없이는 영혼의 구원은 없다. 몸의 병 고침 없이는 “마음의 평화”는 없다. 행복한 삶은 정신(영혼)만으로 이룩될 수 없고 몸이 건강할 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 의학을 대표하는 히포크라테스도 절제와 건전한 품행이 질병의 가장 좋은 예방이라고 말했다.

절제하는 생활과 건전한 품행은 인간을 건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건강해 지는 길은 절재(몸의 행동)와 조화(건전한 정신) 그리고, “건강한 신체 속에 깃든 건정한 정신”에 있다고 밝혔다.

나는 분명히 정신이 먼저고 몸이 다음이라는 서구철학을 부정한다. 또한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성자 같은 이야기도 배격한다. 

 

 


  나는“몸이 먼저”라는 말을 받아들인다. 신의 창조 행위도 몸을 먼저 만드셨다. 몸의 중요성은 성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요 메시지이다. 히브리인들의 정신과 신앙 전통이 잘 정리된 “ 태초의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신앙 고백적 선포와 창조설화(P문서와 J문서)에서도 하느님이 생명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신으로 고백하고 있다. 사람은 “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창 3장19절)” 하느님도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죽임의 시대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옷을 입어야 한다. 죽임을 넘어 살림으로 생명의 부활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생명”이라는 페러다임과 가치관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또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화두는 분명히 =생명=이 될 것이다.

 


  안 철은 
=“ 세상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창조주 하느님의 동산이다. 모든 생명체가 병고 없이 다툼 없이 사랑과 정으로 살아가는 낙원이다. 자연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 동물, 식물, 어류, 조류 )들은 병 없이 살다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자연의 수명이고 하느님의 축복이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더불어 함께 사는 존재다. 나와 너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 갈 때 그 곳이 하느님 나라요. 에덴동산이다. 


건강한 삶을 살아 가기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동산인 이 곳에서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 갈 때 가능하다. 병 없이 산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느냐에 있다. 왜 동물들은 자연수명을 누리며 병고 없이 살고 있는가? 그것은 태어나서부터 모든 음식을 가려먹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무엇이 좋은 음식이고 나쁜 음식인지 본능적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체험으로 가려낸다. 어린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본능적으로 좋아 하듯이. 초식동물은 아무풀이나 먹지 않는다.

동물이 고사리와 갓, 그리고 쑥을 먹는 것을 보았는가? 동물들은 고사리와 갓과 쑥을 먹지 않는다.

왜! 동물들은 그것들이 본능적으로 좋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수명을 누릴 수 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인간들은 병으로 고생을 한다. 그리고 자연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 왜일까? 그것은 음식에 있다. 인간들만이 아무 음식이나 먹고 마시기 때문이다. 식욕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 나에게 맞는 음식이 분명히 있는데 가려서 먹지 않고 아무거나 먹기 때문이다. 초

식동물은 아무풀이나 먹지 않는다. 육식동물도 육류를 먹지 않고 가려 먹는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먹는 것을 먹이사슬이니 약육강식이니 생각해 왔다. 


인간은 건강한 삶을 원한다. 자연수명을 누리다 흙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음식을 가려 먹어야한다. 아무 음식이나 먹는 것은 나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 행위이다.

그것은 죽임이다. 악이 무엇인가? 생명을 죽이는 행위가 악이 이닌가?.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닌가.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내가 예수임을 깨달아야 한다. 건강한 생명 외에 아무것도 더 얻을 것도 없다.

생명 외에 아무것도 더 알 것도 없다.
건강을 위해서는
생명의 신성함을 알기 위해서는
나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성전”이다.
우리들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귀한 존재”이다. 
우리의 몸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아주 작은 생명체 속에서 나와의 연관성을 볼 수 없다면 나의 생명의 존엄함을 알 수 없다. 
생명의 신으로 고백하지 않는 하느님은 나의 하느님이 될 수 업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하늘과 바람, 낮과 밤, 비와 해빛,구름과 새,그리고 땅과 사람의 연관성과 통전을 볼 수 없다면 생명의 소중함을 알 수 없다. 
우리의 나이는 약 46억년의 지구의 나이와 같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나의 생명은 나의 생명일수 없다.
건강하여 행복한 삶을 위해서 지금 당장에 아무거나 먹는 욕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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