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연구소/安哲(안철)

생명과 구원(4)

▪살림문화재단▪ 2013. 6. 2. 02:00

생명과 구원(4)


먹을거리와 생명

= 인류 역사는 
  물질문명의 세계는
  날로 발전해 
  오늘날 편리하고
  인간만이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지.
  그리고 이것이
  과학의 힘이라고
  창조의 힘이라고
  의학의 힘이라고
  이 힘으로 
  생명의 문제를 풀려고 
  우리네 인간은
  어리석움을 범하고 
  인간 그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되고
  그것이, 게놈프로젝트, 생명공학, 바이오산업
  요란 요란 
  이것이 바로
  죽임이 아닌가.
  현대인들의 우상. 
  바벨탑이 아닌가.=

  농촌은 희망이 없는 저주받은 땅인가. 
  시애틀 추장은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라고. 인디언들은 아이들에게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가르친다. 인디언 그들은 안다. “대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인간이 대지의 소유물”이라는 진리를, 인디안 그들은 안다. 그러나 우리는 대지를 인간의 탐욕의 대상이요, 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이처럼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교육을 시키면서 아이를 사랑한다고 애기한다. 자기 모유를 먹이지도 못하면서 “내 딸 내 아들”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돼지가 하품할 일이다.  생명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어떤 이는 신으로부터라고 말하는 망상가도 있지만 분명히 생명은 자연으로부터 출발한다. 카오스!, 혼돈이다. 더 구체적으로 흙(대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신은 신일뿐. 모든 생명은 모든 인간들의 어머니인 땅-대지-자연에서 생명의 그 근원을 찾는 것이 옳다.  

  우리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촌의 땅, 농민들은 농업해체의 위기 앞에 생명을 생산하는 거룩한 천직을 버리고 있다. “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동굴의 우상 같은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 이제는 신 앞에, 자연 앞에 솔질해지자.  “버림을 당”하고 있다. 땅의 오염은, 농업해체는 농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세계화라는 속임수와 신자유주의라는 악령 앞에 텅 빈 들녘을 지키는 허수아비 신세로 변하고 우리들의 생명인 밥(먹을거리)은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맡겨지고 우리의 몸은 성전일진데 우리의 성전을 허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과다하게 살포한 음식물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밥상문화는 생명문화가 아닌 죽임의 문화이다. 생명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다. “죽임”이 생명의 반대말이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 그것은 신의 축복이고 생명이며. 자연의 법칙이고, 신의 섭리이다. 그러나 죽임은 시탄이요.

죄악이고 탐욕의 극치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농업정책에 밥상문화를 맡길 수 없다. 그건 우리의 생명을 죽이는 죽임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 수없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살포한 밥(음식물)을 먹을 수 없다. 그건 죽임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이 먹고 마신다. 죽

임을 당하기 위해서 음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살림을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음식물 대부분이 화학비료와 농약과 방부제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음식물을 생산하는데 편리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이 어머니인 대지를 산성화시켜 땅을 박토로 만들고 우리의 생명을 죽임으로 몰고 간다.

이미 우리들의 금수강산이 강산성을 띨 정도로 황폐화되어 이러한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도 산성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몸은 저항력이 약해지고 잔병치레가 많아져서 우리의 몸은 의사들의 봉으로, 약의 노예로 변해가고 죽임의 이르는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나는 농부인 친구에게 이렇게 묻는다. “친구여, 과다한 농약살포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먹이사술이 파괴 된지 오래전 일이고, 너의 이웃들도 농약중독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여기서 나는 농산물이 과연 친구인 내가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친구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물들은 제초제. 살균제. 살충제. 방부제. 등의 농약은 대지오염, 물 오염, 음식물 오염, 나아가 몸속에 남게 되어 심지어는 사랑하는 딸, 아들에게 유전까지 되는 것이다.

각종 암, 기형아 출산, 원인모를 신경질환, 각종 현대 성인병 등의 중요한 원인이 먹는 것 마시는 것에 있다. 게다가 싸다는 이유로 먹기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로 도시 양반들이  찾는 수입농산물은 수송과정에서 농약. 화학약품. 방부제로 절여질 정도니 우리의 몸도 농약과 화학약품과 방부제와 달러로 절여져 있다.

이게 생명일까. 이것을 먹고 생명이 온존할 수 있을까?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도 이건 생명일수 없다.  우리 딸이 아빠의 말은 너무 논리 비약이라고 말한다. 나는 논리를 모른다. 생명은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명일 뿐, 그 아무것도 아니다.

또 딸은 아빠인 나를 씹어 댄다. 너무 막말한다고. 아-- 그래! 나의 사랑스런 한솔아. 막 먹어라. 먹고 의사들 봉이나 되 거라. 아무거나 막 처먹고 약의 노예가 되 거라.

오! 불쌍한 딸. 학교에서 과학적으로 무얼 조금 배웠다고. 생명이 과학이더냐, 구원이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더냐. 생명공학이, 게놈프로젝트가 바이오산업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냐?  인간들의 그 오만함, 이성과 지식으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영원한 카인의 자식들,---------,   

  얼마나 무서운가. 무엇이 범죄고 무엇이 합법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무서운 죄는 생명을 죽임으로 몰아가는 것이고 가장 합법적인 법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살림의 행동뿐이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귀한 존재이다.

우리와 함께 사는 자연세계는 한 톨의 쌀에도 한 잎의 푸성귀에도 맑은 하늘, 따스한 바람, 어미의 자궁 같은 흙 그리고 인간이 어울러 지는 조화로운 생명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 조화로운 생명의 신비 속에 구원이 싹트고 있다. 인간구원은 그 속에 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먹을거리 문화가 죽임에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가 되기 위한 생명의 운동을 계속하는 행위이다. 구원이 무엇일까. “----을 믿으라. 그러면 너와 내 집이 구원 받는다.” 같은 속임수는 말고, 속임수는 이제 그만,  =우리의 몸을 살림. 인간이 우주와 하나 될 때 . 세계와 하나 될 때, 나와 네가 하나 될 때,  우리의 삶속에서 생명의 운동을 계속할 때 그러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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