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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추, 뗏목타고 떠난 ‘남몰래 흐르는 눈물’

▪살림문화재단▪ 2015. 3. 22. 22:10

 정추, 뗏목타고 떠난 ‘남몰래 흐르는 눈물’

양림의 소리를 듣다’
태풍 속에서도 끄떡없는 정추 1주기 추모공연

 

▲ 정추 선생의 곡 일부를 샘플링하여 편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피터에발트와 연주자들의 열정적인 공연은 관객의 눈과 귀를 빼앗아갔다.

태풍 ‘나크리(NAKRI)’가 몰고 온 폭우와 강풍이 휘몰아쳤다. 어찌나 큰 비바람이 몰아치는지 우산을 쓰는 게 더 힘들었다. 오늘 저녁 공연이 걱정되어 정헌기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추모 공연 야외행사가 어려울 텐데 빨리 실내공연으로 바꿔 준비해야겠네요?”
“지금 급하게 대책 마련 중이네요. 일단 우월순 사택 옆 카페가 있으니 좁지만 그곳 협조를 얻는 수밖에 없네요.”
“카페가 행사장 바로 옆에 있어 다행이네요.”“어떻게든 준비는 하겠는데 비바람 때문에 오실 분들이 걱정되네요.”
“좋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오실꺼에요. 걱정 마세요.”
지난 2일 아침나절의 대화였다. 이날 저녁 7시 30분 공연을 앞두고 아침부터 큰비와 강풍이 온다는 소식에 정 대표는 무척 걱정스러워했다. 고흥과 보성 쪽은 물폭탄을 맞았다는 소식이 들리니 더욱 그렇다.
이날 하루 종일 강풍이 불었다. 시내에서는 찢어진 현수막이 곳곳에 보였고, 강풍이 불 때는 전봇대를 붙잡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였다.

 

   
▲ 태풍 나크리가 올라온 가운데 내린 강풍과 빗속에서 이날 공연장인 카페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이런 난리법석 속에 양림동 호남신학대 안의 다이닝카페에서는 공연준비가 한창이었다. 7시가 못되어 대학 내에 차를 주차하고 카페까지 가는 불과 20여m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우산을 쓸 수 없는 채 비를 맞고 가야만 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벌써 와 있었다. 무대 앞쪽에 마련된 40여석의 좌석은 금세 빈자리가 없었고 뒤쪽으로 탁자와 함께 있는 자리들도 북적거렸다.
   
▲ 정헌기 공연 순수 대표
시간이 되자 사회자가 나와 행사 안내를 한 뒤 “모두가 다 내빈이니 별도로 내빈 소개는 하지 않겠다”면서 정추1주기 추모공연의 취지와 정추 선생의 약력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어 호남신학대 김백호 교수(테너)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한 대목인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힘차게 불렀다. 마치 노래가사처럼 단 한순간이라도 조국 생각을 떨쳐본 적이 없다던 정추 선생의 마음을 담아내는 듯 했다.
이어 20여명의 CBS어린이합창단의 ‘뗏목의 노래’와 우리 민요인 ‘도라지’ 합창이 이어졌다. ‘뗏목의 노래’는 세계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선인 러시아의 보스토크 1호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연주된 정추가 작곡한 곡이었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독일 재즈 뮤지션인 피터 에발트(Peter Ehward)의 색소폰과 더블베이스(박하성), 피아노(강윤숙), 드럼(원익중) 등의 협연이었다. 우선 피터 에발트는 정추의 곡 가운데 일부를 샘플링해서 편곡

   
▲ 피터 에발트
한 2곳을 초연했다. 이어 봄, 묵상, 스케르초(scherzo) 등의 공연은 이날 관객들의 시선과 귀를 완전히 빼앗아갔다.
피터 에발트는 바이마르음악아카데미, 퀼른음악아카데미, 런던로열음악아카데미를 거쳐 미국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작곡과 색소폰을 전공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티칼리지에서 재즈콤보와 빅밴드를 가르쳤다. 그가 작곡한 ‘알라니스(Alanis)'는 2007년 카네기홀에서 연주되었다.
한바탕 실내를 압도하더니 김정희 시인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김소월의 ‘가는 길’이었다. 정추 선생이 생전에 이 시를 너무 좋아하여 곡을 붙였다고 한다.
시낭송에 이어 호남신학대 임해철 김백호 신은정 김진희 교수 등 4명이 정추 선생이 작곡한 ‘내 조국’을 불렀는데 마치 일제하 강점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가사였다. 이어 부른 ‘아리랑’도 이러한 느낌을 연이어갔다.
마지막 공연은 이수은 연출로 피터 에발트와 강민형, 송주원, 손지희, 이수은 등이 출연한 퍼포먼스 공연이 있었다.

 

 

   
▲ 김정희 시인의 시낭송으로 정추 선생이 평소 좋아했고 곡을 붙였다는 김소월 선생의 '가는 길'이 있었다.

 

 

   
▲ 피터 에발트와 손지희의 퍼포먼스는 빗속을 뚫고 무대 밖으로 이어져 나갔다.
먼저 우월순 사택 내부에서 사전에 찍은 영상이 화면을 통해 보인다음 다이닝카페 쪽으로 카메라가 돌면서 러시아유인우주선 발사과정과 정추 선생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접목시켜 스토리를 풀어갔다.
이어 다이닝카페의 우월순 사택방면 유리문 전체가 개방되고 피터 에발트와 손지희가 오렌지색 보호복을 입고 색소폰 연주와 춤공연이 이어졌다. 그것은 하나의 행위예술로서 온몸으로 표현해냈다.
두 사람은 무대 앞에서 공연을 하다가 비가 내리는 밖으로 뛰쳐나갔고 열정적인 춤사위를 선보이면서 점차 우월순 사택으로 사라지면서 유리문이 닫혔다. 그렇지만 빗속에서 밖의 두 사람은 계속 공연을 이어나갔다. 카페 안의 관객들은 그 공연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은 “비가 오는 악천후가 오히려 정취 있는 공연이 됐고 특히 유리문을 열고 비오는 가운데 진행한 퍼포먼스는 재미를 더했다”면서 “다만 아쉬운 것은 정추 선생의 음악세계를 더 알 수 있는 음악이 부족한 점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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