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조형연구소 한뼘미술철학겔러리/살림재단이 주목하는 작가

망명음악가 정추

▪살림문화재단▪ 2015. 3. 22. 23:07

 

 

 

요사이 TV를 보면서 뉴스시간에는 다른방송으로 채널을 돌리고 만다.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드잡이식 말과 행동을 보는 것이 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편에게 상처를 입히고 국민을 선동할까에만 목숨을 건 듯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불쾌하고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다.

우리에게 가장 낙후된 분야인 이 저질 정치의 끝은 어디일까.

 

이 시간대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EBS의 세계 테마기행이 있고 연달아 한국기행, 다큐프라임으로 이어지는 나의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이다.

어제(2010.1/12)의 다큐프라임에는 남북분단의 아픔을 새삼 느끼게 하는 한 지식인 망명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분단된 조국이 낳은 비운의 천재 음악가이자 망명 작곡가 정 추.
우리는 작곡가 윤이상은 알지만 정 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그를 카자흐스탄의 윤이상이라 부르지만 그는 윤이상 보다 더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반세기 넘도록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이역만리 타국에서 인생의 황혼을 맞고 있는 작곡가 정 추,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혁명가이고 현존하는 구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의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일찍이 그는 모스크바 음대를 사상 유례 없는 5점 만점으로 수석졸업 했고, 민족음악파의 거두인 차이코프스키의 직계제자로 발탁될 만큼 천재적인 음악가였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로 남한에서는 월북자로 낙인찍혀 20대에 조국을 떠나 90이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과거를 조명하며 호적도 없는 조국을 방문하고 고향 광주를 찾는 모습이 50분 동안 잔잔히 펼쳐젔다.

어머니 무덤앞에서 오열하는 그를 보면서 조국은 그를 따뜻이 보듬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피맺힌 절규까지를.

 

 

 

쓸쓸히 돌아간 그에게 카자흐스탄은 공훈작곡가인 그의 85회 탄생기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음악회에서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내 조국>이었다.

정 추가 통일된 조국에 바치는 유언으로 만든 이 곡이 우리말로 울려퍼지는 장면은 바로 감동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숨겨진 역사를 들추어주고 울림이 있는 프로를 만들어 준 EBS의 연출의도를 옮겨본다.

 

2010년은 경술국치 100주년, 한국전쟁60주년, 한-러수교 20주년이 되는해이다.
천재작곡가 정 추(85세)는 카레이스키로서 망명자의 이름으로, 서러운 삶을 이국땅에서 살아가며 한민족의 혼을 음악으로 그 땅에 심었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직계 4대 제자이며 ‘61년 가가린 첫 우주선 발사현장에서 정추의 곡이 연주됐으며, 구소련 음악사전에도 올라있는 인물이다. 가장 민족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음악으로 평가 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카자흐스탄 음악교과서에 무려 60여 곡,피아노 교과서에 20여 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동의 자유조차 없었던 망명 기간 동안에도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들의 노래 1000여 편을 발굴해 악보로 옮기는 소중한 작업을 해왔다.
그런 정추의 삶은 망명의 연속이었다. 23년을 일제와 남한 국민으로, 13년을 북한 인민으로, 17년을 무국적자로, 다시 16년을 소련 공민으로, 그리곤 이제 카자흐스탄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조국은 어디인가? 그는 왜 이토록 험난한 길을 택했는가?
이 프로그램은 질곡의 역사 속에서 비극적 생을 걸어온 작곡가 정추의 ‘마지막 증언’의 기록으로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이따금 느끼는 ‘조국’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묻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