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조형연구소 한뼘미술철학겔러리/살림재단이 주목하는 작가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 구해우·송흥근 (시대정신·1만원)

▪살림문화재단▪ 2015. 3. 23. 01:26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 구해우·송흥근 (시대정신·1만원)
 
세계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러시아 차이콥스키 음악대학 최초로 졸업 작품 만점을 받은 작곡가. 세계 최초 우주비행 성공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소련 당국의 요청으로 자신의 곡을 연주했던 음악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나 사회주의자였던 형을 따라 북으로 떠난 음악가 정추(89)는 러시아 유학 중 김일성 반대 시위를 주도한 이후 남북한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정추는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과 인연이 많다. 그의 형은 북한 영화의 시금석을 놓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초대 서기장 출신의 정준채이고,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그의 동생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등을 지은 동요작곡가 정근이다. 러시아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이자 라이벌은 북한 애국가를 지은 음악가 김원균이다.

형 준채가 당대 최고의 무용수 최승희 공연에 감동받아 훗날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한 사연, 흐루쇼프와 김일성 면담의 일화를 증언하는 당시 촬영기사 이야기, 월북 소설가 이태준이 북한에서 발표한 ‘먼지’라는 소설로 인해 숙청당한 이유 등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비화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_ 구해우·송홍근 지음, 시대정신, 207쪽, 1만 원

식민지 시대, 분단의 시대를 지나온 적지 않은 사람이 남과 북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의 이야기는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추(89)의 삶에는 파란이 가득하다. 식민지 조선의 소년으로 살다 사회주의자가 됐다. 혁명국가 건설에 일조하겠다면서 38선을 넘었다.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하다 고난의 삶을 끌어안았다. 그가 작곡한 음악은 그를 닮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고통과 시련, 통일조국 건설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1930년대에 베를린음대를 졸업한 외삼촌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광주의 집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치던 정추는 1945년 광복이 되자 함께 독립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했으며,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인동맹 초대 서기장을 지낸 형 정준채를 따라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6·25전쟁의 와중에 사회주의권 음악대학 중 최고 명문인 러시아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스쿨에 들어가 차이코프스키 4대 제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57년 반(反)김일성 시위에 참여하면서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버림받은 채 반세기 가까이 카자흐스탄 톈산산맥 아래 알마티에서 모진 시련의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이 같은 인생역정에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북한 애국가 등의 작곡가인 음악 친구 김원균을 비롯해 무용가 최승희, 소설가 이태준, 김일성과 박헌영, 박갑동, 그리고 박정희까지 수많은 인물의 삶이 얽혀 있다. 그중에서도 정추와 함께 음악을 공부했음에도 그와 완전히 대조적인 삶을 산, 북한 최고의 음악인으로 꼽히고 현재 북한 국립 김원균평양음악대학의 주인공인 김원균의 인생사는 우리에게 인생과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이 책에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연구도 부족했던 북한에서의 남로당계 숙청과정이 생생히 소개돼 있다. 1970년대에 박정희가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비밀리에 추진했던 사실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다.

정추는 뛰어난 음악인일 뿐 아니라 평생 조국의 독립과 북한의 개혁개방, 통일을 위해 산 인물이다. 남로당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박갑동을 1990년대에 다시 만나 북한의 민주화를 목표로 구국전선을 결성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백발의 노 망명객은 통일조국의 애국가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내 조국’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조국은 그에게 고통과 질곡의 삶을 안겼지만,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을 한평생 불태워왔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정추처럼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극적인 인생, 그것도 매순간 역사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조국을 사랑하고자 했던 삶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구해우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