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태학(divine saminary)/인문학 세미나

3월 세째주 강의 리뷰

▪살림문화재단▪ 2015. 3. 29. 01:12

 

 

3월 세째주 강의 리뷰

 

 

내가 세상에 던져진 자리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고

내 맘대로 되지도 않지만

곰곰히 살펴보면

 

내가 보입니다

 

강원도 산기슭이 고향인 나는

어쩔 수 없는 촌놈입니다

 

바람이 전하는 뜻을

산이 드리우는 마음을

물이 두두리는 간절함을

 

말을 배우기도 전에

저도 모르게 알아버렸습니다

 

지치고 외로울 때면 산으로 갑니다

바다가 하염없이 보고플 때는

눈이 허기져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도시 불빛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들이 있습니다

사람숲을 벗어나야 보이는 여지가 있습니다

 

삶이 버거워지면 

보이는 곳 너머로 무조건 달려나갑니다

본능적으로

가슴 한자리는 늘 비워두고 살아가는 이방인입니다

 

산기슭을 떠나

40년을 살아온 홍대앞

 

그곳의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됩니다

 

땡땡거리에서 석탄 실은 기차를 만나고

기차오줌인지 기름똥인지 모르는 것들이 질펀한 선로가에

쪽파도 심고 호박도 심어두면

누구건지 묻지도 않고 가져다 먹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점집 닥지닥지 붙어 있는 골목길과

와우산 반공호 밑으로 귀신을 쫓아 떠났던 특공대원들은

자라서도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고

큰가방을 끌고 유학길에 올랐다가

빈가방으로 돌아온 지하 아지트에서

어른이 되기를 거부 한 채

게으르고 비겁하게 버텨보다가

세상과 타협해가며 살아내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는 그 곳에서 자라난

그들은 터주가 되었습니다

 

꿈 밖에 없는 변방의 아웃사이더들은

볕들때 꿈을 꿈니다 그리고

꿈꾸듯 어스름이 지면 꿈같은 일들을 펼쳐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실현 된다고 믿으면

현실도 꿈을 꿈니다 그래서

길 아닌 길도 갈 수 있고

돈 안되는 딴짓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고 노는일이 다 일 것 같은 세상에서도

그들은 또다른 세상을 꿈꾸게 합니다

 

철없이 꿈 먹고

터무니없는 일을 서슴치 않고 하다보니

딴판인 거리가 돈이 되고 돈보다 귀한 문화가 되고

그렇게 비싼 동네가 되다가

모르는 말 쓰는 사람들이 섞이면서

딴나라가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식빵 만드는 아저씨는 식빵만 만들다가 장인이 되고

거리에서 노래하던 허기진 청년은 어느날 갑자기 스타가 되고

스턴트맨 옥이 누나는 인생을 과속하다 할머니가 되고

악보 그릴줄을 모르는 작곡가 선생님은 방세가 밀려서 택배 아저씨가 되고

발전소, 명월관, 흙과 두남자, 친친을 기억하는 오렌지 오빠들은 뭐가 되었을지

알 수 없는 곳입니다

 

도시의 불빛이 그리움이 되고

사람숲에서 쉬고 싶을 때가 되면

나도 모르게 한강을 가로질러 홍대로 향하게 됩니다

지금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딴 세상이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산 속에 들어 앉아도 꿈꾸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바닷가에 쳐밖혀 있어도 춤추던 시절을 잊지 못해서

본능처럼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홍대를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고

내 맘데로 되지도 않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내가 세상에 던져진 자리가

내가 설 곳이었습니다

 

꿈도 사랑도 철들지 않고

날것으로 펄덕거리는 그곳이

내가 살아내야 하는 세상입니다

 

(디바인세미너리 교수:오미아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