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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역사와 더블린

▪살림문화재단▪ 2016. 1. 9. 02:31

 

아일랜드의 역사와 더블린

http://lskpmr.egloos.com/709387


BC 7000년경 영국으로부터 건너온 수렵인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최초의 정착지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BC3000년 경에는 동물을 키우며 토지를 경작하는 농부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 신석기 정착지를 이후로, BC 2000년경에는 개척자들과 철기시대인들이 아일랜드로 건너오게 되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약 150개의 소왕국으로 나뉘었는데 이것이 다시 5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공통의 언어와 법체계, 사회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BC 6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온 켈틱(Celtic)침략자들의 물결이 아일랜드로 밀려왔다. 기독교 문물의 유입은 전통적으로 패트릭성인 (St.Patrick)의 크나큰 업적으로 여겨진다. 6세기와 7세기는 아일랜드 수도원들에 중심을 둔 아일랜드의 예술,학문,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 아일랜드의 수도지들은 AD800년 이전에 유럽 여러곳에서 학문과 기독교의 중심을 세웠었다.


9세기와 10세기동안,아일랜드는 북유럽의 바이킹족에게 잦은 침략을 받았다. 바이킹 족은 더블린(Dublin),콜크(Cork)와 워터포드(Walter ford)에 도시생활을 발달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무역상들이었다.바이킹족의 영향력은 1014년 클론탈프(Clontarf)에서 아일랜드의 하이킹(The Highking)에게 패배한 후 쇠퇴되어 갔다. 12세기에는 그 전에 이미 영국과 웨일즈에 정착하고 있었던 노르만족(The Normans)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노르만족은 빠른 속도로 아일랜드 영토의 4/3정도를 장악하였고 아일랜드는 영국왕의 통치하에 놓여지게 된다. 그 후 400년 동안 노르만족은 아일랜드에서 영향력있는 존재였으며 급진적으로 겔릭화되었다.(Gaelicised) 이 시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종교적 변화는 아일랜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종교적차이에서 야기된 아일랜드에서의 일련의 반란들 이후.게일릭(Gaelic)저항은 서서히 무너져 갔고, 1603년에는 최후의 게일릭 본거지인 북쪽(Ulster)지방이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7세기에는 보인(Boyne)전투와 어흐림(Aughrim)전투로 일단락지어진 왕권에 대한 저항을 엿볼수 있다.노르만 정착민들의 후손과 게일릭 아일랜드인들은 패배하였고 그들의 많은 지도자와 추종자들은 아일랜드를 떠났다. 이후 영국교도들이 정치력과 주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18세기에 아일랜드에서는 많은 경제적 발전이 있었다. 이 시기에 아일랜드의회는 천주교인(Catholic)들을 배제하면서도 발전해 갔으며 영국의회에 부속되었다.새로운 세계로의 아일랜드인들의 끊임없는 이민행렬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는데 천주교인들보다는 북쪽지역의 장로교인들 (Ulster Presbyterians)이 주류를 이루었다.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아일랜드인의 연합단체(The Society of the united Irishman)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1798년에 아일랜드 공화국의 자치성립을 목적으로 아일랜드에서 민중봉기(반란)를 도모했다. 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영국과의 완전 의회 통합안이 1800년에 통과되었다. 1840년대 말에는 감자수확의 대대적인 실패로 인하여 아일랜드에 심각한 기근이 발생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백만명이 죽었으며 또 다른 백만명이 나라를 떠났다. 10년만에 아일랜드의 인구가 8백만에서 6백만까지 1/4가량 줄어들게 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16년 부활절에 있었던 아일랜드 공화국의 선포가 유산됨에 따라 5년간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정치적 대립에 의한 반란과 독립을 위한 헌법논쟁이 점차 일어나 1921년 헌법논쟁이 정점을 이르러 영국·아일랜드조약이 체결됐다. 남아일랜드는 연방부내의 자치령이 되었고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됐다. 한편 프로테스탄트계의 북아일랜드는 연합왕국내에 머무르게 됐다.
1926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반대하는 데바레라(De Valera)는 공화당을 결성하여 1932년 총선에서 집권한 후 1937년 국민투표를 통해 북아일랜드 를 영역으로 하는 자유독립 민주국을 선언하는 신헌법을 제정하고 국명을 에이레(Eire)로 변경했다.공화당은 1948년까지 정권을 담당했지만 같은 해 선거에서 코스테로가 이끄는 통일당, 노동당 등의 정당으로 이루어진 연립정권에 양도됐다. 그리하여 1949년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영국연방으로부터 탈퇴했다. 계속되는 북아일랜드 분쟁에 대해 1985년 자문역할이 부여됐다. 1990년 11월 러리 대통령의 임기만료후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당의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이 당선되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1992년 11월 총선거에서 여당 공화당은 9의석이감소하였지만 제 1당을 지켰다. 공화당은 제 3당인 노동당과 정 합의를 하고 1993년 1월 12일 연립정권을 수립했다. 1994년 북아일랜드 문제로 영국과 회담을 가졌으며 북아일랜드 평화공동선언을 했다.

나머지 정보는 아래 참조.
http://www.eyeofeagle.co.kr/Eagle/Area/SubMain2.asp?MLoc=300101&Pid=164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리피강의 하구에 위치하며, 아이리시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 220㎞의 대안(對岸)에 영국의 리버풀이 있다. 인구 49만 5101(2002). 근교를 포함하는 더블린주(州)의 도시부 인구는 105만 7000(1996)로, 아일랜드 총인구의 30% 가까이가 이곳에 집중해 있다. 시가는 리피강을 끼고 남북으로 발달해 있다. 남안(南岸) 지역에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집중해 있고, 더블린에서 제일가는 번화가 그래프턴가(街)가 남북으로 뚫려 있다. 그리고 크라이스트처치대성당과 J. 스위프트가 수석사제(首席司祭)로 있었던 세인트패트릭대성당이 위용을 보이고 있다. 북안(北岸)은 상업지역으로, D. 오코넬·C.E. 파넬 등 독립운동지도자의 동상들이 서 있는 오코넬가(街)를 중심으로 상점가가 이어진다. 한길에 면한 중앙우체국(약칭 GPO)의 옥상에는 <부활절봉기(1916)>를 기념하여 언제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그리고,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던 아베극장을 비롯한 극장·영화관도 집중해 있다. 서부의 피닉스공원에는 대통령관저와 세계에서도 역사가 오랜 동물원(1830년 개설)이 있다. AD 150년경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나타난 에블라나(Eblana)가 현재의 더블린이라는 사실을 볼 때, 시의 기원은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어로는 <블라아 클리어(Baile Atha Cliath)>라 불리었다. 이것은 <울타리 여울의 거리>라는 뜻인데 타라와 위클로를 잇는 고도(古都)가 이 곳에서 리피강을 가로질러 간 데서 유래한다. 이 여울을 중심으로 차츰 거리가 형성되었다. 이 옛 이름은 현재 중앙우체국의 소인(消印)에 사용되고 있다. 더블린이라는 지명은 아일랜드어의 <두블린(dubhlinn;검은 웅덩이)>에서 온 것인데, 이것은 리피강물의 빛깔에서 유래한다.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도시를 세운 것은 북유럽에서 침입해 온 데인인(人)이었다. 9세기 중엽에 건설된 더블린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서, 데인인은 이곳을 상거래의 중심지로 삼아, 아일랜드의 수피(獸皮)와 양모를 영국과 유럽으로 가져가고, 포도주와 노예를 들여왔다. 11세기에 아일랜드의 족장 브라이언 볼루가 데인인을 무찌른 후에도 더블린의 데인인은 세력을 계속 유지했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아일랜드인과 통혼하여 오래도록 도시를 발전시켜 나갔다. 12세기에는 노르만 정복 후의 영국의 침략을 받아, 1171년 헨리 2세가 아일랜드 총독이 된 후에는 페일이라 불리는 영국 세력권의 중심지로 아일랜드 지배의 거점이 되었다. 장미전쟁 때는 요크파의 거점이 되었으며, 청교도혁명 때에는 O. 크롬웰에게 점령되었고, 다시 윌리엄 3세가 진주(進駐)하였다. 이와 같은 정치적 격동 속에서도 산업은 발달하여, 17세기에는 더블린 울로 알려져 있는 양모공업이 융성했으나 18세기 초에 영국 이외로의 수출이 금지되면서 쇠퇴하였다. 대신 리넨·면직물·견직물 등의 산업이 번성했는데, 이것은 위그노의 이주(移住)에 의한 기술의 도입 등이 큰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영국과의 경쟁에 견뎌내지 못해 다시 쇠퇴하였다. 명예혁명 체제하의 18세기에는 프로테스탄트 지배체제의 중심이 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수많은 아름다운 건조물, 넓은 도로, 정비된 시가가 만들어졌는데, 더블린성·아일랜드의사당(현재의 아일랜드은행)·커스텀하우스(세관)·포어코트(법원)와 그랜드운하·로열운하 등이 이 무렵에 건설되었다. 19세기에는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맨의 봉기(1798)에 이은 정치적 격동 속에서, 프로테스탄트 지배층이 많이 살고 있는 더블린에도 민족주의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D. 오코넬이 가톨릭인으로서 처음으로 시장에 선출(1841)된 것은 그 하나의 표출이다. 19세기 말에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도 더블린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20세기 초부터는 독립운동의 거점지로서 <부활절봉기(1916)> 등을 비롯한 영국과의 투쟁을 통해 22년 영국에서 독립하여 아일랜드의 수도가 되었다. 제 2 차세계대전중에 아일랜드는 중립을 지키기는 했으나, 41년 5월에는 독일군의 폭격을 받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300호 가구 이상이 파괴되었다. 68년 이래의 북아일랜드 분쟁의 영향은 더블린에도 나타나, 76년에는 영국대사 폭살사건(爆殺事件)을 계기로 긴장상태가 계속되었지만, 근년에는 완전히 평정을 되찾았다. 오늘날 더블린에서 가장 유명한 산물은 기네스(맥주)이다. 기네스 양조소는 유럽 제 1 급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밖에 제분(製粉)·비스킷류에서부터 섬유산업·화학·전자 등 근대산업도 활발하다. 또한 더블린은 아일랜드 최대의 무역항으로, 각지의 농산물이 이곳에서 수출되고, 석유·석탄·기계류 등이 수입되고 있다. 리피강안벽(岸壁)에는 썰물 때에도 흘수(吃水) 7m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다.

관광제안
트리니트 칼리지(Trinity College)는 1592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통치하에 창립된 대학으로 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죠나단 스위프트와 토마스 모어, 올리버 등이 이 대학의 졸업생으로 유명합니다. 이 곳 도서관은 목조 아치형 천정의 긴 방으로 두권의 8세기'BooksofKells (라틴어 복음서)를 포함하여 장서 80만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킬데어(Kildere) 거리에 있는 국립 박물관에서는 바이킹 거주 진출토품(土品)을 포함한 전시품에 의해 아일랜드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전통 가공품 및 켈트 족의 금세공품, 타라(Tara)의 장식핀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독립전쟁 당시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이랜드에서 정평이나 있는 맥주는 진한 암갈색의 독한 기네스로,기네서 맥주 양조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입니다.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으며 시음해 볼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네스북 출판사는 같은 양조장의 자회사입니다.

신년휴일, 성 패트릭 절(3월 17일), 부활전 전 금요일, 부활절 월요일, 부활절 다음 월요일, '뱅크 홀리데이(Bank Holiday)' 로 6월과 8월의 첫째 월요일과 10월의 마지막 월요일, 크리스마스, 그리고 성 스티븐 절(12월 26일)이 아일랜드의 축제일이다. 성 패트릭 절은 5세기경 아일랜드로 건너 와 크리스트교의 보급에 공헌을 한 성 패트릭을 기념한 것이다. 축제일이 토요일 또는 일요일과 겹칠 경우는 다 날이 휴일이 된다. 북아일랜드 에서는 성 패트릭 절과 부활절 전의 금요일은 휴일이 아니다. *** 더블린 행사계획*** ① 1월 : Rugby International Ireland vs Scotland ② 3월 : Dublin Film Festival (Mar 5 to 14), St Patrick day festival ③ 4월 : Howth Jazz Festival ④ 5월 : Irish Garden Festival (May 30 to Jun 3) ⑤ 6월 : AIB Music Festival ⑥ 7월 : Temple Bar blues Festival ⑦ 8월 : Summer Music Festival ⑧ 10 월 : Golden pages Dublin Marathon ⑨ 11월 : Dublin Grand Opera

여행상식
1. 아일랜드는 가랑비가 일년내내 많은 양이 내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아일랜드의 기후는 온화하며 혹한이나 폭염은 드물다.

2. 겨울이나 여름에 상관없이 스웨터와 우비를 준비하는 것이 좋으며 햇볕을 비췰 때를 대비해 티셔츠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더블린은 도보로 여행하기에 좋은 도시이므로 걷기 편한 신발은 필수이다.

3. 아일랜드에서는 관공서, 회사, 은행이 주휴 2일제를 채용하고 있어 토· 일요일은 휴일이다. 상점 및 레스토랑은 토요일은 개점하지만 일요일은 쉬는 곳이 많다. 관공서의 업무시간은 AM 9:00 ∼ PM 5:00 이며 은행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AM 10:00 ∼ PM 12:30, PM 1:30 ∼ PM 3:00 까지이다. 단 더블린에서는 은행이 화요일에는 오후 5시까지 업무를 한다. 쇼핑 터에서는 오후 9시까지 영업하고 있으며 최근 여성의 기회균등운동으로 플렉스 타임(Flex time)제도가 널리 채용되고 있고 10대들이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다.

4. 아일랜드에서는 관공서, 회사, 은행이 주휴 2일제를 채용하고 있어 토·일요일은 휴일이다. 상점 및 레스토랑은 토요일은 개점하지만 일요일은 쉬는 곳이 많다. 관공서의 업무시간은 AM 9:00 ∼ PM 5:00 이며 은행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AM 10:00 ∼ PM 12:30, PM 1:30 ∼ PM 3:00 까지이다.단 더블린에서는 은행이 화요일에는 오후 5시까지 업무를 한다. 쇼핑센터에서는 오후9시까지 영업하고 있으며 최근 여성의 기회균등 운동으로 플렉스 타임(Flex time)제도가 널리 채용되고 있고 10대들이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다.

5.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할 수 있지만 더블린에는 소매치기와 좀 도둑이 많다.차로 여행한다면 주차할 때 귀중품은 잘 챙겨 두어야한다.더블린에서는 사소한 것이라도 차를 부수고 훔쳐가곤 한다. 벨파스트에선 차도둑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은 큰 도시나 사람이 많은 곳, 특히 관광지를 다닐 때 가방을 조심 할것.

즐길거리
1. 강북에서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길은 쇼핑가인 O'Connell St.이다. 대부분의 호수텔이 여기에 있다connolly 역은 약간 동쪽에 있다. 주요 버스 정류장은 Gaediner 거리의 남쪽 끝에 있는데 이 거리는 북쪽으로 갈수록 황폐하다. 강 바로 남쪽에는 오래된 Temple Bar지역과 Trinity College가 있다. Nassau St.는 대학교 남쪽 끝을 따라 있고 보행자 전용으로 꾸민 Grafton St는 강남의 쇼핑가 이다. 다른 아일랜드 도시처럼 이곳도 몇 블록마다 거리 이름이 바뀐다.

2. 아일랜드에서는 술집들 만이 오락 장소가 아니다. 더불린의 극장은 공연이 제한되어 있으나 붐빈다.강 근처 Abbbeu St Lower의 애비극장이 유명하다.

3. 게이트 극장은 South St.에 있고 올림피아 극장은 South St에 있고 City Art Centre 는 23-25 Moss St에 있다.콘서트는 St Stephan's Green 남쪽의 Earlsfort Terrace에 있는 National Concert Hall에서 즐길 수 있다.

4. 록 콘서트는 세관에서 공쪽으로 1km 덜어진 East Link Bridge에 있는 Point Depot에서 열린다.Temple Bar 지구의 6 Bustace St에 있는 Irish film Centre에서는 아일랜드나 외국의 예술 영화들을 상영하며 괜찮은 카페-레스토랑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