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단상(한국타임즈)

“10년내 언어장벽 사라진다”는 지난기사를 접하며

▪살림문화재단▪ 2016. 5. 14. 10:25


이우송 살림문화재단 다석채플사제 칼럼니스트


[단상] “10년내 언어장벽 사라진다”는 지난기사를 접하며...

   
언어는 사람의 감정이고 생각인데 통 번역기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완벽하게 읽어 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생각에 선뜻 동의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미래는 알 수가 없어서 지레 안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언어라는 것은 미세한 차이 속에도 여러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에 통 번역기로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언어 하나에 능숙할 수 있으면 완성도가 좀 낮더라도 이해의 폭은 높아질 수 있다.
 
어떤 언어에 능숙하다는 것은 그 언어에 기반한 상대 언어국의 문화와 사고방식 사고체계를 이해하면 통 번역이 아무리 어렵다하나 각기 다른 언어의 구조기능을 분석해 완성도를 높여가면서 국제회의나 기술회의 등의 전문 통역범주를 넘지 못할 것도 없다.
 
외국어에 문외한인 나의 입장에서 그간의 구글 번역기나 통역기를 사용해보면 기존의 번역기는 그냥 간편한 소통 및 관광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만한 소통도 감읍할 따름이다.
 
만약에 실시간 통 번역이 원하는 만큼 실현될 수만 있다면 외국어 습득에 청춘을 몰입하고 있는 이시대 젊은이들에게 황금 같은 시간을 돌려주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이 될 것이다.
 
외국어를 별로 사용할 필요 없는 곳에서도 토익 토플과 어학연수 스펙들이 기업 채용기준이 되고 있는 실정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어 공부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만약 그 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인생의 황금기인 10대~20대는 자신의 전문영역은 물론 인문 사회과학적 사고의 힘을 키우고 사이언스 예술 여행 등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완성도가 높은 통 번역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회의나 민감한 외교 또는 사업교역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보고 그 뜻을 읽고 상황 속에서 순발력을 발휘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여전히 외국어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전 국민이 목숨 걸고 영어 교육에 매달려야 하는 사대주의적인 언어관은 벗어나야 한다.
 
해외영업을 하는 분들 중에 수백만원짜리 번역기 구입한 사람들로부터 낭패의 경험담을 들을 때가 많다. 나를 비롯해 외국어 때문에 좌절하고 위축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는데 좁아져가는 지구촌의 세계화에 있어서 언어는 최후의 장벽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희망인데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고도의 심리전이 요구되는 바둑에까지 진출해 우리를 당황케 한 슈퍼컴퓨터를 생각하면 사실 어려울 것이 없다. 수요가 공급을 낳는 법이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충분한 대비가 되어있더라도 출시를 해야 하는 시점은 공급자가 결정하는 자본주의사회임을 감안하면 어련할까만.
 


이런 와중에 지난2월 초에 경향비즈에 기사화된 “10년 내 언어장벽 사라진다.”라는 실시간 통역이어폰 등장 예고‘ 라는 주영재기자의 글에서 “영어와 일어, 중국어만 통역이 가능하지만 프랑스어와 태국어, 한국어도 곧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역기의 크기나 실시간성에서는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어폰 크기의 실시간 통역기가 나오는 시기가 10년보다 더 짧아질 가능성”도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다시금 글로벌한 세계의 소통이 나에게도 희망이 될 것인지 심히 설레게 된다.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수하고 완벽한 한글은 세계적인 언어학자와 인터넷 환경에서 이미 검증을 받았다고 본다. 동국대 문창과 장영우 교수의 말을 빌리면 한글을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9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그것은 남북한 인구와 재외동포, 그리고 한글을 배우는 소수의 외국인을 합산한 숫자이다.
이 숫자는 전체 인구의 약 1/70에 불과하고, 영어나 중국어 사용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숫자만도 아니라고 한다. 한글에 대해 우리는 우리말의 세계화에 어떤 주도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날로 좁아져만 가는 지구촌에 언어의 소통과 개방 노력이 이토록 늦어져가는 데에 무슨 상관관계는 없을까하는 어이없고 망측한 염려도 해본다. 언어 또한 자본이고 권력인데 2세계 3세계인들의 보편적 글로벌화가 모두에게 마냥 좋은 것만이 아닐 것이다.
정보의 독점을 가로막거나, 자본과 권력의 수평적 요구를 하게한다든가,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혹세무민을 저어하거나 하는 염려는 없었는지 말이다.
 
찌라시와 혼재된 우리나라의 신문과 시각매체를 접하듯이 세계의 외신을 우리말처럼 읽고 들을 수 있는 시대를 기대하면서, 잠시의 흥분과 함께 사라져 갈 찌라시 언론들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층부의 권력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진화를 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정보의 독점과 단절이 가져다주는 부의 편중이 해소되면서 그동안 피해 받아온 계층들이 어떻게 수평사회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지구촌이 국경을 넘어 일부의 정보와 소식이라도 헨드폰과 인터넷환경을 통해 횡적으로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그날을 생각하며 다가올 앞 세상의 밑그림을 그려본다.


이우송/살림문화재단 다석채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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