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종교에세이/그리스도교회의 귀향

▪살림문화재단▪ 2017. 2. 3. 14:09




종교에세이/그리스도교회의 귀향


고속열차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광주까지 백분이면 이동하는 시대가 왔다. 매 순간 순간이 압축되어가는 우주를 체감한다. 늘 왕래하지만 오랜 시간을 비워둔 귀향이기에 느끼는 감회가 낯설다. 대도시 사람의 정서라기보다 나 자신이 많이 낡고 삭아서 고향에 기대 이모작을 준비하러 온 중년처럼 지쳐있어서일 것이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병원에서 링거를 꽂고 명절을 앞둔 며칠을 쉬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고향을 떠날 때 세계는 종말론을 암시하는 암울한 예언과 함께 새로운 밀레니엄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모두가 동해로 아비규환의 정동진 길로 내 달릴 때, 나는 일찍이 고 안철 선생이 계시는 서해바다 금동리에서 새시대를 맞이했다.

새천년을 향해 서해로 벌겋게 떨어지는 밀레니엄의 돔을 안았던 기억과 안철 선생과 나누던 대화가 새삼 새롭다.

그때 우리는 서녘에서 세기말 밀레니엄의 낙조를 지켜보며 지난세기를 관조했을까.

묻고 답하기를 거듭했다. 그리고 얻은 답은 동서양이 가지고 있는 시간에 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필명으로 사용하는 西夕이라는 이름을 그때 얻었는데 둘이 평소 존경해오던 다석 유영모 선생과도 무관치 않았다

서녁 하늘 아래서 나눈 안철 선생님과의 대화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진지하고 발칙했다.

종교예술에 관심이 집중된 사제가 보기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회는 아시아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지정학을 중심으로 음악 미술 철학 종교적 전례에 비춰볼 때 충분히 동양종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동양에서 태어나 서양으로 건너가 장성한 기독교가 다시 아시아로 귀향해 왔으나 여전히 동양에 뿌리를 둔 동양종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미국과 유럽이 전해주었다고 기독교를 서양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종교관일 뿐이다.

동양인에 의한 동양에서 생성된 종교가 서양에서 발전하고 성숙해서 변천과 변질의 과정을 거쳐 되돌아 온 것은 아닌지, 본질종교의 순수성에 손상은 없었는지를 의심하고 연구해 볼 일이다

낮과 밤이 반복되고 삶과 죽음이 이어지듯 시간에 관한 이해는 다분히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은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

유대인의 하루는 창조이야기 1장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니 하루가 지났다'에 근거하여 저녁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한다. 위도에 따라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분명하지 않아 그들에게 하루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상의 시간을 정함에서도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에 근거해 저녁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삼아 밤에 궁리하고 결정해 낮에는 실행하는 것을 시간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성서속의 히브리 사람들이나 유대인들, 근동의 이슬람 전통의 사람들을 보면 해가 지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의 명절인 설과 추석 전날 음식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작은설 속칭 까치설이 명절이 시작점인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조상을 섬기는 제의예식에서 망자를 보낸 날이 아닌 망자가 떠나기 전날 밤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 이러한 전례를 보면 좀 더 확실해진다.

소아시아의 이스라엘과 중동의 종교적 전례나 결혼예식이 그렇듯 해가 지면서 잔치가 시작 된다

기독교의 신앙과 전례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기념할 때 당일 낮 미사보다 성탄 자정미사와 부활 자정미사에 더 비중을 두는 이유 또한 시간의 이해가 우리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회의 사제로서 바라본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는 아시아로의 귀향을 통한 세계화인데 다시금 동양의 종교철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여과되고 성숙된 그리스도교로 거듭날 수 있을 때 완성도가 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회가 되어 진일보한 주제로 더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남일보 2017.02.02  

(이우송/성공회신부, 살림문화재단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