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우덕기 사제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드리며

▪살림문화재단▪ 2016. 4. 21. 11:15


  

[수필가 이우송, 살림문화재단 이사장, 사제]

"성공회 사제의 은퇴"
-우덕기 사제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드리며-

천주교 개신교의 성직자의 평균 정년이 70세인데 한국 천주교의 대주교와 주교, 각 본당의 사제를 비롯해 가톨릭의 여러 직분은 75세 안팎에서 물러나는 것이 전통이다. 이에 반해 성공회의 주교와 사제는 만 65세 정년제를 1889년 한국선교 이후로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타 종단 대비 정년이 짧다는 아쉬운 논란은 있지만 성공회 사제들 또한 만족스러워하는 편이다.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변천해 가는 우리사회에 성직자 은퇴 이후에 맞게 되는 삶과 아쉽지 않을 후기 2모작 인생을 준비하고 연결 연장선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얼마전 성공회대전교구장이신 유낙준 주교님으로부터 우덕기 신부님의 은퇴 소식을 듣고 은퇴미사 축사를 부탁 받았을 때, 죄송한 마음으로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축사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평소에 존경해오던 우덕기 신부님이 계시는 천안 원성동성당으로 급히 가서 우 신부님을 뵈옵고 그간의 정담을 나누고 돌아오면서 산문을 한 편 써 올리기로 했다.

최근 10여년을 뵙지 못했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저를 찾았다는 말씀을 듣고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콧등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선배 신부님의 은퇴미사를 앞두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후배 사제로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무거운 고민을 했다.

사제서품 때 '하느님과 사람 앞에 흠 없이 살아가기 바란다.'는 주교님과 신자들 앞에서 겁먹은 사슴처럼 대성당 바닥에 엎드려 자신을 봉헌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모습이 연상되는데 어느덧 인생의 석양을 맞아 낙조의 그늘 아래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나는 우덕기 신부님의 이력 및 경력서를 보면서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참 모범생으로 살아오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입학해서부터 전북대학교, 성공회신학원, 일반대학원, 성직생활 시작 이후 봉직해온 교회들, 오늘 퇴직하는 이날까지 단 하루도 쉼 없이 살아오신 것을 보면서, 어쩌면 저와는 이리도 대조적인 외길 인생을 살아 오셨을까. 경력 속에서 드러난 희생적인 봉사의 흔적을 보면서 무흠한 삶에 숙연히 놀랐다.

내가 기억하는 우덕기 마가 사제는 저항의 아이콘이기보다는 화해와 치유의 아이콘으로 신자들의 기쁘고 슬픈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공감해주는 사제이셨다. 스스로가 상처받은 치유자였기에 젖은 속내를 감추려하지도 않으셨다.

우리의 '주군'이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보편적 인간성을 '영성'이라고 볼 때, 우덕기 신부님은 인간적으로 근접한 영성이 깊은 사제였고, 그리고 후배 사제들의 등도 어루만져주는 형이셨다.

성공회에서 사제는 '교회의 심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자신의 심장에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사제의 품성과 사목적인 태도가 교회의 향방을 가늠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의 사목을 '일'로 취급하지 않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우덕기 신부님을 뵐 때마다 가슴이 아려서 눈길을 피하거나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제가 볼 때는 꽃사슴 같이 아름다운 사제였다.

신자들은 사제에게서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낄 때 사실상 사제를 보살피게 되고, 사목을 '일'로 취급하지 않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저는 지난 과거사를 신자들께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오래 전에 고위 성직자에게서 '거룩함'의 요소보다는 안정된 생활과 임기가 보장된 '교회공무원'을 발견하고 어린 여식과 함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뒷걸음을 친 적이 있다.

누구보다 일찍 제도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석양에 서서 찬바람을 시린 이로 맞고 살아온 사제로서 녹녹치 않은 사제생활을 예감해 왔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한 발짝 떨어져 교회를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제게 이런 말을 시키는 것 같다.

완전한 사람이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갈망하는 사람이 성직을 지망하고 사제로 살기 때문이다. 실수를 부끄러워 하기보다 실수와 결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사제로서의 흠 있는 선배였기에 우리는 빈틈이 있는 우덕기 신부님을 더욱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천재 시인으로 불리운 천상병은 '귀천'이라는 시를 통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 했지만. 인생은 소풍이 아니라 숙제가 있는 방학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제에게 은퇴란, 방학이 다 끝나 가는데 노느라 정신 팔려 숙제가 밀린 상태로 등교하는 길이다. 그간 가족과 친지에게 혹은 자신에게 소흘 했다면 그 숙제를 통해 삶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성스러움이 예견된다.

오늘의 은퇴미사는 사목 활동만 하지 않는 것이지 '사제의 은퇴'라는 것은 없다고 보며, 사제로의 은퇴는 참으로 아름다운 명예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에 '끄트머리'라는 말이 있다. 끝이자 머리라는 순 우리말로, 끝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의 새로운 시작점이며, 보편적 삶의 새 걸음으로 받아들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역에서 사제를 은퇴하여 공적인 삶이 아닌 개인적 삶의 자리로 옮겨질 때에는 공간적, 정서적인 공허감이 예상되지만, 버리고 떠남으로서 좀 더 자기답게 되고 그동안 우리가 고백해온 하느님과의 관계성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또 다른 아픔을 승화시켜 가면서 인생의 백미를 맛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우덕기 마가 사제의 은퇴미사에 마음모아 축하드리며, 다음 차수로 넘어가는 밀린 삶에 완성도를 더해 가실 선배사제에 경의를 표한다.

2016. 04. 24 주일 은퇴미사에

살림문화재단 다석채플 이우송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