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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1세기가 죽여야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이념"

▪살림문화재단▪ 2017. 5. 21. 10:24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1세기가 죽여야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이념"

 

[중앙일보] 입력 2017.05.20 00:02

      

신준봉 기자 사진

신준봉 기자 ....

   


 

 

한국을 찾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한국을 찾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지난해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9)가 있었다. '노벨상 이변' 말이다. 2015년 스웨덴 한림원은, '목소리 소설' 혹은 '소설-코러스'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2차 세계대전,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 인간이 자초한 비극의 참상을 고발해온 알렉시예비치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백 명의 인터뷰 증언(목소리)을 빼곡하게 배치하는 그의 작품들은 사실상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더욱, 실제 같은 환상을 꾸며내고자 잔재주를 피우는 문학예술이 도달하지 못하는 묵직하고 구체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벨라루스 국적이다. 러시아어로 작업한다. 이념과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희생된 사람들의 아픔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민중의 고통을 그리는데 천착했던 19세기 위대한 러시아 문학의 계승자처럼도 보인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방한

23~25일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전쟁 참상 고발한 문학세계 소개

"원전 사고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 후쿠시마 방사능에 한국도 노출"

그가 한국을 찾았다. 23~25일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실체를 드러냈다. 진중한 태도, 낮은 목소리. '대가다운' 풍모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설명했다. "중국과 일본은 가본 적이 있다. 한국은 처음이다. 오고 싶었다. 어제 도착해 서울 거리를 걸었는데 굉장히 발전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증오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21세기에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념이나 인간의 헛된 이상을 죽여야 한다"며 평화를 강조했다. 그의 회견 전문을 정리했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40년간 과거 소련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 썼다. 소련 시절은 '레드 유토피아'의 시대였다. 소련만큼 공산주의 이념을 테스트하고 실험한 국가는 없었다. 막시즘, 레니니즘의 실험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아직 죽지 않았다. (소련이 해체된)90년대 이후에도 계속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나는 일반인,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공산주의 시절이 실제로 어땠는지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발했다. 영웅이나 알려진 인물이 있음에도,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작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작은 사람들이 국가의 이용 대상이었고, 국가가 그들을 죽였고, (그들로 하여금 타인들을)죽이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 부모 역시 서민이었다. 그래서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라며 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어머니가 책을 좋아하셔서 서재에 장서가 있었지만 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게 더 흥미로왔다. 내 책에서 다룬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놀라운데, 그게 사라지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은 사람들은 결코 쉽지 않은 인생 역경에 처해 어려운 삶을 산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사는 간과되기 쉽다. 나는 작은 사람들을 큰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큰 고난을 겪은 큰 인물들이다. 전쟁을 이야기할 때 나는 탱크가 몇 대고, 병력이 몇 명인지 하는 공식 기록에는 관심이 없다. 철저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영혼, 정신성에 대해 쓰려고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책에 활용하는 증언은 어떻게 선택하나.

"한 작품을 쓰는 데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200명에서 500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얘기가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억의 한계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최대한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진실을 추출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가령 참전 여성 가운데, 탱크를 몰았거나 비행기를 조종한 여성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자 다르다.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여성은 게릴라의 시각에서 전쟁을 볼 수밖에 없다. 또 소련 시절 사회주의는 전쟁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사람들은 프로퍼간다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발언에서 이념에 물든 내용을 걸러내고, 인생의 진실만을 추려야 했다. 모두가 각자의 퍼즐 조각을 갖고 있다 보니 같은 사람을 5, 7번씩 인터뷰했다. 5~10년은 책 한 권을 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확보한 증언들에서 어떤 식으로든 줄거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오면 그에 맞는 인터뷰 내용을 찾아서 배열한다. 증언 내용 중 진실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 기준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직관적인 작업이고, 인생과 현실을 바라보는 내 주관적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작업하면서 항상 최우선으로 삼는 한 가지 원칙은 바로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거다."

 

 

.-인터뷰 할 때 상대방의 내면을 끌어내는 노하우가 있나.

"특별한 방법이나 비법은 없다. 사실 내 작업은 인터뷰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 반드시 전쟁이나, 체르노빌 얘기만 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에 대해 대화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보만 필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이 사람을 죽여야 했던 드라마, 그 내용 자체에 더 주목한다. 노벨문학상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문학상들을 받았는데, 대단한 문인 자격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동시대인들의 증인으로서 참석했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동등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흥미를 느낀 내용을 책으로 쓰게 된다."

-기억에 남는 어려웠던 인터뷰는.

"2차 대전 때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독일군에게 붙잡혔던 여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독일군이 소련 여성 빨치산을 죽이는 건 너무나 밋밋하고 손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포로들을 죽였다고 한다. 멧돼지 죽이듯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놀라자 그 여성은 그건 놀랄 일도 아니다,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해 엄마와 아이들을 불태워 죽이는 걸 보지 않았다면 말도 말아라, 라고 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누구도 전쟁에서 아름다울 수 없다. 기관총을 손에 들고 있다면 나 같은 작가도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소련 시절 선동·선전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어,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에도 무기든 사람이 아름답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전쟁은 살인행위다."

-이 같은 작업을 수 십년 간 해온 동력은.

"글쓰는 작업이 다른 직업과 비교해 쉬운 직업은 아니지만 이것보다 어려운 일도 많다. 가령 소아암 전문의는 작가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길을 포기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내가 아연 소년들을 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가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하지만 나는 러시아 문학 종사자로서 진실을 쓰기 위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갈 수 있다면 당연히 가서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사랑에 대해 쓰겠다고 했는데.

"사랑이 꼭 좋아서라기보다 소련 공산주의에 대해 쓸 만큼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0년간 내 작품의 주제는 '거대한 이념 속의 작은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체첸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가지 않을 것이다. 기존 작품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겠기 때문이다. 끔찍한 작가의 인생, 작가의 이 미친 인생은 과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 사랑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벨상을 받을 때 그 얘기를 하자 누군가 '이제 아픔 없는 글을 쓰는 것인가' 라고 묻더라. 그래서 '사랑은 아픔이 없는 것인가' 하고 되물었다. 사랑이라는 주제도 진지하게 바라보면 고통스러운 주제가 될 수 있다."

-여러 소설에서 전쟁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남자들의 나라인 것 같다. 제복을 입은 직종의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다.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여성이면 전쟁이 덜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여성 국방장관이 흔하다. 그 나라들이 전쟁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스웨덴에서는 군사 퍼레이드할 때 임신한 여성 군인도 나온다. 그런 모습은 한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아직 상상하기 이른 것 같다."

-한국은 3년 전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 아직 그에 대한 본격적인 문학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작가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쓴다. 주관적으로, 본인의 시각대로. 세월호 비극을 다룬 작품이 안 나온다니 안타깝다.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건 쉽지 않다. 저널리즘적 접근 방식 말고도 사회학적, 혹은 성직자와도 같은 신성한 접근방식을 동원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세월호에 대해 써야 한다면 작가 스스로 철학자 같은 포지셔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뻔한 비극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이다. 대학 졸업 후 7년 간 언론사에서 일할 때 지나친 업무 로드가 걸리지 않도록 했다. 어떤 사안을 피상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심층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장이 시적이다.

 

 

아연 소년들표지

 

아연 소년들표지

."내 책에서 비극만이 아니라 시적인 부분을 봐줘서 감사하다. 끔찍한 상황만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문학적 아름다움도 표현하고 싶었다. 끔찍한 일은 세상에 넘쳐난다. 내 저술 목적은 사람들의 정신, 마음을 좀 더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공포스러운 얘기만 했다면 사람들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쓸 때 미학적 요소를 많이 담으려 한다."

-1989년 출간한 아연 소년들에서 소련 소년병들을 부정적으로 그려 그 부모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는데, 법정에서 '우리 아들은 전쟁터에 나가 죽었는데, 당신은 그 애기를 써서 책 팔아먹냐'는 비난까지 들었다. 그 재판기록을 책의 부록으로 수록했는데, 껄끄러운 얘기를 굳이 공개한 이유는.

 

 

"아프간 전쟁과 관련해 소련이 사람들을 속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10년이 넘는 아프간 전쟁 기간 동안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 사람 100만 명을 죽였다. 하지만 당시 신문이나 라디오는 그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 소년병들이 영웅이라고만 했다. 내가 아프간 가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소련 병사들은 살인자들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많은 참전 병사들이 살인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 내용을 썼더니 관료나 군인들이 반감을 품게 됐고, 참전병 어머니들을 부추겨 내게 소송을 걸라고 한 것이다. 그 법정소송 기록을 부록으로 추가한 이유는 당시 소련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참전했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아이가 살인자가 아니라 영웅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소련 시절 학교에서도 참전병은 영웅이라고 가르쳤다. 그 재판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1980년대 중반 개혁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

-당신의 소설로 사람들의 고통이 줄어들었나.

"줄어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 소설은 무용한 건가.

"예술이나 문학이 일순간에 인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건 나이브한 생각이다. 90년대 러시아 사람들은 페레스트로이카 같은 개혁 정책으로 인해 곧 자유로운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 소련 시절을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자유 사상을 가질 수는 없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다. 가령 러시아에서 푸틴이 물러나고 민주 인사가 들어서는 프로세스에만 몇십 년이 걸릴 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21세기가 죽여야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이념"


한국을 찾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