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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사 정체 폭로 새미사의 유효성에 관한 신학적고찰

▪살림문화재단▪ 2018. 12. 19. 02:07


[공지] 새미사 정체 폭로 새미사의 유효성에 관한 신학적고찰


트렌트 공의회는 선언했다.

“만일 누가 미사(즉, 모든 미사)에서 천주께 어떤 참되고 고유한 희생제물이 봉헌되지 않는다거나 이 봉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 제 22회기 지극히 거룩한 미사성제에 관한 법규 1562. 9. 17 –
문 : 참 희생제사란 무슨 뜻인가?
답 : 십자가에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봉헌한 제사와 동일한 제사를 말한다. 이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제사로 모든 미사는 십자가 제사와 같은 하나의 제사이다.
문 : 개신교(성공회, 루터교)는 미사를 무어라고 하는가?
답 : 그들은 미사는 2천년전의 십자가 사건을 역사이야기처럼 다시 말하는 기념이라고 한다.
문 : 성공회는 트렌트 공의회가 선언한 미사에 대해 무어라고 말했는가?
답 : 그에 대해 성공회 신앙고백 제31조는 “신성모독적인 전설이며 위험한 기만” 이라고 하였다.
문 : 성공회는 미사가 속죄제사(제물을 도살하고 불태움으로써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는 제사)임을 긍정하는가?
답 : 아니다. 그들은 미사는 속죄제사가 아니라고 한다.
문 : 트렌트 공의회는 이에 대해 무어라 선언했는가?
답 : 트렌트 공의회는 “미사성제는 참 속죄제사이며 이로써 우리는 천주와 화해하고 천주의 마음을 다시 얻는다.” 고 하여 이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트렌트 공의회는 선언했다. 미사전문은 “주님께서 직접하신 말씀과 사도들의 전통, 그리고 거룩한 교황들의 교령으로 구성되었다.”

새 미사의 문제점

1969년 4월 3일 새미사가 공포되었고 많은 이들이 새미사에 참례하기를 거부했다. 이는 구원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새미사는 1967년 10월 주교회의 전에 바티칸 궁 시스티나 경당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시행되었다. 이것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여론조사가 실시 되었고 71명이 찬성, 62명이 몇몇 조건부로 찬성, 43명이 반대를 표명하였다. 반대의견을 존중하여 두 개의 제헌경 경문을 복구하는 것과 함께 경미한 수정이 가해졌다.
바오로 6세는 1969년 4월 3일, 회칙 Missale Romanum(로마미사)를 통해 Novus Ordo Missae(새 양식의 미사)의 최종판을 공포하였다. 이와 함께 “총지침서” 도 출판되었다. 전통주의 주교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오타비아니 추기경과 바치 추기경은 1967년 9월에 “새미사는 전체적으로도 세부적으로도 트렌트 공의회의 22회기에서 공식화한 가톨릭미사로부터 신학적으로 완전히 벗어났다.” 고 교황 바오로 6세에게 탄원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지금은 유명해진 새 미사의 비판적 고찰 을 로마의 신학자그룹과 함께 작성하여 제출했다. 이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총지침서’의 개정판이 1970년 3월 26일에 발행되었다. 그러나 새 미사 자체는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그 후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 지금까지 사용하는 최종판은 1975년 판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것을 하나씩 살펴보자.

새미사는 가톨릭 미사를 인류에게서 빼앗기 위해 창조된 가톨릭 미사의 대용품이다. 그런데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전통신앙을 간직한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에 유념해야 했다.
1)  새 교리를 너무 드러내지는 않되 새 교리와 모순되는 것은 모두 제거해야 했다. 또한 가톨릭교리 중 무엇 하나라도 직접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단지 그것을 약화시키고 삭제할 수 있었을 뿐이다.
2) 이는 천천히 진행해야 했으며,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참 희생제사의 외적, 비본질적인 부분은 남겨두어야 했다.
3) 악마는 어떻게 하면 인류가 성체성사를 통해 은총을 받는 대신 성사를 모독하는죄를 짓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본질없는 성사 집전, 거기에 참례하는 것, 그리고 본질 없는 미사에서 축성하는 것이다. 이를 아는 악마는 자기에게 이를 실행할 영향력이 주어지자 즉시 실행에 옮겼다. 
※ 성사의 효력은 경문에 달렸다. 그래서 본래 경문의 의미가 바뀌는 개정은 교회(교황)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이 천주의 경고를 무시하고 누가(교황 바오로 6세) 개정을 단행하여 의미가 달라진 경문을 사용하면 성사는 무효일 뿐더러 성사모독의 죄를 짓게 된다.
※ 그런데 눈에띄게 달라진 경문은 보수주의 사제들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보수주의 신자들도 그런 미사에 참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수정하여 경문의 의미가 달라지게 했다. 그래서 1969년 4월 3일 부터는 로마의 인정을 받는 새미사를 드리고 거기에 참례하는 이는 불가항력적 무지에 빠져있지 않다는 전제하에 성사모독의 죄(고위성직자들처럼 그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그렇게 하면 대죄)를 짓게 되었다. 일반신자들은 불가항력적 무지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아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아니며, 은총도 -거짓미사와 거짓성사로부터가 아니라, 그들의 선한 지향에 의해- 내린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이제 불가항력적 무지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4) 교회일치적 목적에서 개신교(성공회, 루터교)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예식을 창조해야 했다. 비록 그들은 끝까지 미사가 피흘림 없는 갈바리의 희생제사이며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사제”가 미사의 집전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5) 이는 가톨릭 저항세력을 유화시켜야 했으며 신자들의 삶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현대주의 사상을 도입해야 했다.
새 미사가 이를 모두 성취하기 위해 해야 했던 유일한 방법은 교묘한 삭제와 오역이었다. 새미사가 모호함으로 가득찼다는 사실은 앞으로 확인할 것이다. 이 모호한 표현이란 “말끝을 흐린다.” 는 뜻이다. 누가 말끝을 흐릴 때 우리는 그가 무언가를 숨긴다는 사실을 바로 간파한다. 새미사는 끊임없이 말끝을 흐린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영향력을 손에 넣은 그들은 이런 얄팍한 속임수로도 10억(49년전 새미사 공포당시에는 약 4억)의 가톨릭신자들을 속여왔다.

문 : 새미사가 희생제사인가?
답 : 바오로 6세는 자신의 회칙 ‘로마미사’(1969)의 ‘미사의 정의’에서 미사가 희생제사임을 명시하지 않았고 개신교와 같이 주님의 만찬, 혹은 신자들의 집회라고 했으며 새미사의 많은 부분에서 미사가 희생제사가 아님을 암시한다.
문 : 희생제사가 아닌 미사에서 성체축성을 할 수 있는가?
답 : 할 수 없다. 교회는 미사 밖에서의 (성체)축성을 금했다. (1917년 교회법 817조)
문 : 새미사를 만든 이들이 주장하듯 새미사가 희생제사가 아니라면 새미사에서의 축성행위는 무엇이 되는가?
답 : 그 행위는 사제가 실체변화를 의도한다면 천주와 천주께서 제정하신 것을 모독하는 죄, 즉,신성모독죄가 된다.
문 : 새교회의 많은 사제들은 실체변화를 믿지 않으므로 실체변화를 의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행위는 무엇이 되는가?
답 : 이는 성체축성을 흉내내는 기만행위로 성사를 모독한 성사모독죄와 실체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빵을 숭배한 우상숭배죄가 된다.

왜 미사를 개정했는가?

교황 바오로 6세는 미사개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교회의 전례를 현대의 사고방식에 맞추기 위하여
2)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명령에 따라
3) 전례연구에 의한 진보를 인정하기 위하여
4) 초대교회의 관행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다른 항목들은 제쳐두고 여기서 1)번과 4)번은 모순된다. 현대감각에 맞추는 동시에 고대감각에도 맞춰야 한다? 현대의 세상이 교회감각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지 교회가 현대감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고대의 전례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것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교황 성 비오 5세께서 1570년에 성문화한 미사이며 영원히 개정하지 못한다고 선포되었기 때문에 고대의 전례로 돌아갈 수 없고, 둘은 본질적으로 같아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개정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또한 고대의 양식은 성문화된 적이 없었고 따라서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이런 핑계로 그들이 새미사에 넣은 것은 고작 그리스도 시대에 유대인들이 식사에서 빵과 포도주를 축복할 때 쓰던 기도문이다. 유대인들의 만찬에 참석해 본 사람은 이 기도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이것은 랍비가 빵을 자를 때 하는 유대인들의 식사전 기도이다.
개신교(성공회,루터교)도 새미사를 받아들였다.
개혁자들에게 정작 중요한 사안은 새미사가 가톨릭신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톨릭적인 면을 보존했는가가 아니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개신교 교단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에큐메니컬한가 이었다. 1973년 12월 8일 루터교회의 대표교단 아욱스부르크 교회는 “가톨릭의 성찬식” 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왜냐하면 새미사의 새 성체기도문들은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이것을 편안하다고 느꼈을까? 왜냐하면 새 성체기도문들은 희생제사의 신학을 기존의 가톨릭신학과 다르게 해석하도록 허용하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교와 성공회 그리고 여러 다른 종파들은 새미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을 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일치하기 위하여 실제로 가톨릭교회의 새미사를 그들의 공식전례로 채택까지했다. (새미사는 루터교와 성공회 신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단들이 자기 교단의 신학자들이 만든 새미사를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한 프랑스의 한 개신교 신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가톨릭교회의 성찬의 전례의 뚜렷한 진화를 눈여겨 보자. 그것은 미사전문에서 다른 성체기도문을 선택할 자유를 주었고, 미사가 희생제사라는 시각을 버렸으며, 양형영성체도 허용하였다. 이로써 개혁교회들은 이제 성도들의 가톨릭교회의 성찬식 참례를 금할 정당한 이유가 없게 되었다”.
새미사가 생김으로써 16세기에 분열되었던 교회가 하나로 합쳐지는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는 좋은 일이 아니라 나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단자들이 이단을 버리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이단을 받아들여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 : 16세기에 왜 루터와 크랜머주교(성공회미사 입안자)가 파문당했나?
답 : 그들이 가톨릭 미사를 거부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미사를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문 : 20세기에 가톨릭교회는 왜 루터와 크랜머의 파문을 철회하였나?
답 : 가톨릭교회도 루터와 크랜머와 같이 가톨릭 미사를 거부하고 그들의 미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 : 루터와 크랜머의 교단들이 참 희생제사인 가톨릭 미사는 거부하면서 새미사는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답 : 새미사는 미사의 본질인 희생제사성을 버렸기 때문이다.

가톨릭 전통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미사의 본질인 미사전문을 침묵으로 암송한다. 루터는 자신의 새미사를 처음으로 대중과 함께 드릴 때 이 미사의 본질인 미사 전문을 암송하지 않았다. (자신이 삭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이 이를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했다. 겉으로 보고(사제의 제의) 듣기엔(그레고리안 성가) 대부분이 가톨릭미사와 같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렇게 가톨릭미사의 겉모양을 바꾸지 않고 미사전문(본질)과 제헌경만 삭제함으로써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고도 자신의 새미사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톨릭의 새미사를 도입할 때도 이와 똑같은 수법을 이용하였다.)
새미사에도 미사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하는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을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많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를 식별하려면 먼저 미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새미사를 만든 개신교 신학자들은 미사의 핵심인 미사전문에서 미사의 본질인 희생제사성이 사라지도록 수정하되 비본질적인 부분은 남겨두어 가톨릭미사인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제헌경(Offertorium) 

신자들의 미사(새 미사에서 성찬의 전례)로 바로 들어가자. 예비미사(새미사에서 말씀의 전례)부분도 많은 대목이 삭제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비미사는 미사의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제헌경부터가 미사의 본질적인 부분이므로 제헌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관건이다. 제헌경이란 제물 봉헌기도를 말한다. 제물을 봉헌하는 것은 미사가 제사이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미사가 제사가 아니라고 하므로 제물을 봉헌하지 않으며 따라서 제헌경을 삭제했다. 새미사도 개신교와 같이 제헌경을 삭제했다. 제헌경이 없는 미사, 즉, 제사 아닌 미사는 가톨릭 미사가 아니다.

전통미사에서는 제사빵을 라틴어로Hostia(제물)라고 하며 첫번째 제헌경에서 사제는 성작보를 벗기고 금으로 도금한 성반에 누룩없는 빵을 놓은 후 자신의 가슴높이만큼 들고 다음과 같이 암송한다.
“오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당신의 부당한 종인 제가(1인칭 단수 나, 즉 미사를 봉헌하는 이는 공동체가 아닌 사제이다) 살아계신 참 천주인 당신께 이 흠없는 제물을 바치오니 받으소서. 이는 저의 수많은 죄와 잘못과 의무를 소홀히 한 죄와 여기 모인 모든 이와 또한 모든 독실한 그리스도인 중 산이와 죽은이들을 위하여 바치오니, 이로 하여금 저와 그들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다음의 네 가지 가톨릭교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1) 이 기도는 미사에서 봉헌되는 것은 “흠없는 제물(천주성자 예수 그리스도 - 새미사가 유대교의 기도문을 가져다 쓰며 암시하듯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2) 미사의 속죄적 성격(미사는 제사이며 제사를 바치는 주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함이다. 개신교는 미사는 찬미, 감사, 흠숭을 하는 것이지 죄사함을 청하는 제사가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하며 새미사도 암묵적으로 그들의 신학을 받아들인다)이 명시된다.
3) 미사는 (생미사와 연미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다.
4) 사람과 천주사이에서 중재자로서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이는 (공동체가 아니라)사제이다. (공동체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라면 미사는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의 제사와 같이 사람의 행위이며 무한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미사는 창조주의 행위이므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사제는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자격을 받아 그리스도가 되어 미사를 봉헌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 안에 계신 천주께서 봉헌하는 모든 미사의 실체는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바쳐진 제사의 실체이다. 즉, 전 세계의 모든 제대와 모든 시대에 바쳐지는 미사의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미사에서 바쳐지는 제물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새미사에서 이 기도는 깨끗이 삭제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미사의 교리적 취지를 더 명확하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했다. 사실 전통미사의 열두 개의 봉헌기도문은 다 삭제되고 새미사에는 두 개만 남았다.
삭제된 열개의 기도문은 루터와 크랜머가 삭제했던 것들이다.*
*전례혁명 - 크랜머의 신성한 양식(마이클 데이비스, Devon, 영국:어거스틴, 1976) 참조
왜 삭제했는지에 대해 루터는 “제사 냄새 때문이다 …제헌경이라고 불리는 혐오스러운 것들은 거의 모두 제물에서 나는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새미사는 사실상 제헌경을 완전히 폐지한 것이나 다름 없다. 제헌경대신 집어넣은 “예물준비기도” 에는 바쳐지는 제물이 천주 성자라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으로 얻은” 빵과 포도주가 바쳐지는 것의 전부이다. 마이클 데이비스는 지적했다. “이 개념은 떼이야르드 샤르뎅의 이론, 즉, 인간의 손으로 얻은 것이 성사의 재료가 된다는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손을 씻는 기도이외에 모든 청원기도는 전통미사에서 사제를 뜻하는 “나” 를 공동체를 뜻하는 “우리”로 바꾸었다. 이는 새미사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거짓 개념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미사는 사제의 특별한 권한에 의하여 사제 개인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혹은 “회중” 이 드리는 것이라는 개신교의 사상이다.

새 성체기도문

전통미사의 핵심은 미사전문(Canon)이다. 그런데 새미사는 전문을 폐지하고 네 가지 양식의 성체기도문으로 대체하였다.

성체기도문 제1양식

성체기도문 제1양식이 전통미사의 전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것은 전통미사의 전문을 모방했을 뿐 사실 큰 차이가 있다. 전통미사의 전문을 보유해야 한다는 소수의 사제들과 신자들의 요구에 의해 이 성체기도문 제1양식이 제정되었다. 이것을 사용하는 사제들은 그들이 사실상 옛 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사전문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전통제헌경을 삭제한 것, 그리고 현대주의자들의 오역으로 인해 성체기도문 제1양식은 완전히 현대주의와 개신교식으로 왜곡해석될 수 있다.
곡해가능성은 다음 구절(변화지례)에 있다.

천주여 비오니 이 예물을 강복하시며 차지하시며 진실하고 가합하며 의합한 예물이 되게 하사, 우리를 위하여(때문에)* 주의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ut nobis를 전통 천주교 공식기도서 ‘성교공과’ 는 ‘우리를 위하여’ 라고 번역했고 영문판 전통 가톨릭 미사경본은 for us 라고 번역한다. 라틴어 전치사 ut과 영어 for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둘 다 ‘위하여’ 뿐만 아니라 ‘때문에’ 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라는 구절은 ‘우리 때문에’ 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크랜머가 이 구절을 왜곡해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Quam oblationem’(축성경 바로앞에 위치한 기도문)의 ‘우리를 위하여(때문에)’ 는 본래 성사의 유효성을 좌우하는 구절이 아니다. 그런데 크랜머가 이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실체변화는 ‘우리의 영혼상태’에 달린 것이지 사제의 권한과 경문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전통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실체변화의 유효성은 우리 영혼의 상태와 무관하다. 즉, 집전사제를 포함한 우리가 대죄 중에 있든 은총상태에 있든 상관없이 세 가지 요건만 갖추면 성사의 효과는 자동적으로 발생한다. 세 가지 요건은 1)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가 집전할 것 2) 적법한 재료와 경문사용 3) 올바른 지향이다. 이 지향은 외적지향과 내적지향으로 나뉜다. 외적지향은 사제가 염하는 경문과 행위에서 드러난다. 내적지향은 사제가 공표하지 않는 한 다른 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전통미사에서는 사제의 외적행위와 그가 사용하는 경문을 통해 - 그가 고의로 외적지향에 반하는 내적지향을 지니지 않는 한 - 옳은 내적지향을 지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새미사에서는 경문자체가 가톨릭 전통경문이 아니므로 우선 외적지향이 틀렸고 - 그가 속으로는 전통 가톨릭 신학의 지향을 갖지 않는 한 - 내적지향도 틀렸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성사의 유효성은 기껏해야 의심스러운 수준이다.(그가 속으로는 전통 가톨릭 신학의 지향을 갖는다 하더라도 새미사는 가톨릭 미사가 아니므로 가톨릭 미사 밖에서 행해진 성사집행은 교회법에 의해 위법이다. 여기서 신성모독의 죄는 이미 성립된다. 이 때 성사의 유효성은 불확실하며 유효일 경우 성체가 추가적으로 모독을 당하시게 되고 무효라면 빵을 숭배한 우상숭배의 죄가 추가된다.)
변화지례 앞에 있던 전통제헌경을 삭제한 새미사에서 “우리를 위하여(때문에)” 는 (그들이 의도한 대로)크랜머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크래머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빵과 포도주는 그것들 자체가 실체변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들을 받아 모실때 우리를 위하여(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것이다. 크랜머는 자신의 공통기도서 초판에 다음과 같이 성체성사제정 기도문을 썼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간구하오니, 당신의 성신과 말씀과 함께 당신의 예물과 빵과 포도주의 창조를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를 위하여(때문에) 당신의 지극히 사랑하올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그의 동료중에는 이 기도문은 실체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공격하는 이가 있었다. 크랜머는 이에 대해 분개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거룩한 신비에서 그것들은 우리를 위하여(때문에)그렇게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합당하게 그것들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그리고 참으로 먹고 마실 수 있고 그리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길러진다는 뜻이다.” 크랜머는 우리에 위하여(때문에)라는 말은, 실체변화가 실제로(객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참석한 개인의 영혼상태에 따라 (영혼이 죄중에 있지 않고 은총상태에 있으면)영적으로 길러진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크랜머는 트렌트공의회 22회기에서 장엄하게 정의한 가톨릭교의를 부정한 것이다.

성체기도문 제2양식

성체기도문 제2양식은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서 가져온 것이다. 우리는 히폴리투스가 분파주의자이자 대립교황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개혁자들은 이 문제의 문헌에 조차 손을 댔다. 예를들어 ut mortem solveret et vincula diaboli dirumperet, et infernum calceret et iustos illuminet (그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정복하시고 사탄의 속박을 끊으시고 지옥을 밟아뭉개시고 의인들을 빛나게 하셨나이다.) 또 qua nos dignos habuisti adstare coram te et tibi sacerdotes ministrare (우리가 당신 앞에 나아가기에 그리고 사제들처럼 당신을 섬기기에 합당하도록 하시려고) 와 같은 개혁자들과 자유주의 개신교 교파들이 싫어할 만한 부분은 삭제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점은 개신교의 이단적 교리를 드러내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라는 구절은 아무 근거도 없이 고의적으로 첨가했다는 사실이다.
크랜머의 공통기도서 2권에서와 같이 새미사의 성체기도문 제2양식에서도 가톨릭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삭제되었다. 성체기도문 제2양식에는 nobis(우리를 위하여)가 확실히 가톨릭적으로 해석되도록 만드는 세 개의 기도문 Te Igitur,(교회와 교회의 구성원들을 위한 기도) Memento domine,(산 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 Quam Oblationem (면병축성경 직전에 위치한 변화지례의 첫번째 기도) 는 없앴다. 따라서 2양식에는 성체축성을 준비하는 기도가 전혀 없다.
전통미사에서는 nobis(우리를 위하여)라는 단어를 크랜머식으로 해석(실체변화를 부정하는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새미사의 성체기도문 제1양식에서는 사제의 (실체변화를 일으키겠다는)축성지향의 정황이 불분명하다. 또한 제2양식에서는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완전히 사라지고 개신교식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해 Hugh Ross William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크랜머식으로 밖에 달리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Hugh Ross Williamson, 현대미사(락포트, 일리노이 주, TAN, 1971)-
더구나 성체기도문 제2양식에도 고의로 nobis(우리를 위하여)를 삽입하여 성체기도문 제1양식에서의 문제(실체변화 부정, 혹은 실체변화가 사제의 축성경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정)를 유지했다. 또한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 위하여 새미사를 만든 이들은 자기들이 성체기도문 제2양식을 선호함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로마는 성체기도문 제2양식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사목적 이유로 다른 기도문이 채택되지 않으면” 주일미사에 사용하기를 권한다. 또한 특히 평일미사와 특별한 목적의 미사에도 매우 적합하다. 더구나 “어린이미사, 청년미사, 소그룹을 위한 미사”에 사용할 것을 장려한다. 또한 무엇보다 교리수업에서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강한 권고 이외에도 성체기도문 제2양식은 짧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상 사제들은 이것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참 가톨릭 미사의 개념은 잊혀졌다.
이 시점에서 교황 바오로 6세가 새미사의 축성경문에 첨가한 가상의 구절 quod pro vobis tradetur(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를 언급할 가치가 있다. 루터와 크랜머도 그들의 새미사에 이와 똑같이 했었다. 루터는 그의 요리문답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은 오직 믿는 마음만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루터의 설명은 이 비참한 문제 전체에 있어서 nobis(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 확실히 증명해준다.

성체기도문 제3양식

“세세대대로 당신께서는 동방과 서방에서 완전한 봉헌이 당신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려 백성들을 모으셨나이다.” 이 구절은 미사집전에 필수적 요소는 사제가 아니라 신자들임을 한 번 더 확인한다. - Fr. Joseph Jungmann, 미사 : 역사적, 신학적, 사목적 연구 (Collegeville, MN: Liturgical Press, 1976), p. 201 -
마이클 데이비스도 이에 대해 지적했다. “새미사의 모든 성체기도문 양식 중에서 축성의 효력은 사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사제는 공동집전하는 신자들의 설교가나 사회자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표현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 같은책 p. 343 -

성체기도문 제4양식

성체기도문 제4양식은 Cipriano Vagaggini 신부가 만들었다. 그는 여기에 또 다른 이단적 요소를 집어넣었다. 전통미사의 성삼첨례(삼위일체대축일)의 감사서문경과 비교해 보자.

새미사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께 감사와 영광을 드림은 옳은 일이나이다. 당신 홀로 살아계신 참 천주이시나이다…

전통미사

거룩하신 주님,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천주성부여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당신께 감사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으며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독생성자와 성신과 함께 한 분의 천주, 한 분의 주님이시며, 위격은 하나가 아니라 셋, 실체는 하나인 삼위일체이시나이다.

새미사 라틴어판의 unus Deus(한분의 천주)라는 표현에도 삼위일체 교리가 드러나지 않지만 이를 ‘당신 홀로 천주이시나이다’ 로 오역하여 전통교리를 완전히 벗어났다. 이 기도문에서 성자와 성신의 언급이 전혀 없이 “홀로”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삼위일체 교리를 비록 명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암묵적으로는 부정한 것이 확실하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것을 “아리우스 전문”이라고 했다.(이단자 아리우스는 삼위일체교리를 부정했다.) 그리하여 이 오역은 1985년 2월 24일에 “당신은 한 분이신 천주이시나이다.” 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무려 16년 동안이나 이런 이단적인 미사경문이 사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례개혁자들이 가톨릭교회의 근본교리조차 경시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성체성사제정 이야기

루터교의 미사와 같이 새미사에는 전통미사의 핵심인 “변화지례(축성경)” 부분에 “성체성사제정 이야기” 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정” 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제정을 말하며 완전히 적법한 신학용어이다. 그러나 미사가 단지 “이야기를 말하는 것” 이라는 주장은 명백히 거짓이며 완전히 개신교의 사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공식 교리서는 “미사의 핵심은 이야기에 있다”고 했으며, 프랑스의 공식인가를 받은 미사경본은 미사는 “단지 이미 성취된 유일한 희생제사를 기념하는 것이다.”(Il s' agit simplement de faire memoir de l'unique sacrifice deja accompli.) 라고 하였다. 이 진술은 신자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초판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이는 실제로 여기서 지금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대신 단지 2,000년전 최후의 만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단지 최후의 만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지 않는다. 사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자격으로 행위해야 한다. 즉 사제는 단순히 한 인간의 자격으로 축성경을 염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직의 권한으로, 즉, 모든 미사의 주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자격으로 축성경을 염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제의 입을 통해 무한한 능력으로 실체변화를 일으키는 분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총지침서 개정판은 새미사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사제는 그리스도로써 행위한다고 제대로 말하긴 했다.      그러나 축성경을 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제는 “성체성사제정 이야기” 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전례없던 제목은 개신교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축성은 주 예수의 말씀들과 표현들로 성취된다. 왜냐하면 사제는 천주를 찬양하는 말을 하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도 하지만 성사를 완성할 때가 되면 사제는 이때부터 자기 자신의 말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사를 완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 성사의 축성경문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처럼 염해진다. 따라서 성사를 완성하기 위해 인간인 사제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발음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이해해야 한다.
-신학대전 3부, 78문제, 1절 “성체성사의 축성경문은 무엇인가?-

축성경문을 단지 이야기형식으로 말하는 것은 성사를 무효하게 만든다. 즉, 축성 후에도 그대로 빵과 포도주로 남는다는 말이다. 저명한 전례학자 O'Connell 신부는 말한다.

축성경문은 우리 주님께서 옛적에 하신 말씀을 옛날이야기 하듯, 예를들어, 성주간 복음의 최후의 만찬 대목이나 그리스도 성체첨례의 복음을 읽듯이 하면 안된다. 이는 이 말씀을 발음함으로써 지금 여기서 어떤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지향을 갖고 그리스도의 자격으로 말하는 사제의 당면적 확언으로써 해야한다.”
- 미사집전, J. O'Connell 신부, Milwaukee: Bruce, 1941, v. 1, p. 226. -

그리스도의 말씀 개작

이제 축성경문을 보자. 이 경문은 전통미사에서 가장 거룩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 당신 자신의 말씀이며 이 경문으로 인해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거룩하여 이 부분을 전에는 금으로 썼었고 늘 크게 대문자로 강조하여 페이지의 가운데에 인쇄해왔다. 그런데 새미사는 이 경문을 개작하여 제정이야기안에 조그맣게 수록하였다.
축성경문을 발음하는 행위는 성체성사의 요건이며 경문을 훼손하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성사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성사의 교의적 정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을 주기 위해 제정하신 가시적 표지” 이며 이 가시적 표지는 “재료”와 “경문” 으로 구성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했다. “말씀(경문)과 재료가 결합하여 성사가 생긴다.”
전통미사의 축성경문은 사도시대부터 불변했다. 그 후 플로렌스 공의회(1438-1445)의 소위 아르메니안 칙령에 의해 교회법에 명시되었다. 트렌트공의회의 교리문답에 의하면 축성경문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는 수난 전날에 거룩하시고 존경하올 손으로 빵을 들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며 당신의 전능하신 천주 성부 당신께 감사를 드리고 그것을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곧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신 후 같은방식으로 거룩하시고 존경하올 손으로 이 귀한 영광의 잔을 들어 당신께 감사를 드리고 그것을 축복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너희와 많은 이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쏟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 신앙의 신비, 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식들을 자주 행하여라.

새미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개작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그 죽음에 넘겨지시기 전, 빵을 들어 당신께 감사를 드리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신 후, 주님께서는 잔을 들어 다시 당신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너희와 모든 이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쏟을 내 피의 잔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바오로 6세는 이 새 양식을 발표하며 1570년에 전통미사를 성문화 한 성 비오 5세 성하의 회칙Quo Primum에서와 같이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한다’ 가 아니라, 이와 같이 하기를 “희망한다(Volumus)” 고 하였다. (1969. 4. 3. 회칙 로마미사 Missale Romanum) 개혁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직접하신 말씀도 지극히 거룩하며 무류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므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새 성체기도문들을 도입하며 그것들이 “전혀 새롭다”, “놀랍고 비범하다.” 고 표현했다. 사실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하신 축성경문을 변경한 것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는 라틴어 mutatio(변경, 바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경문의 본질이 “변경”되면, 즉, 성사에 쓰는 경문의 의미가 변경되면, 그 변경된 경문을 사용한 성사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비록 그 변경이 본질적인 것인지, 즉, 경문의 의미가 변경되었는지의 여부가 확실치는 않고 의심스러운 정도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의심스러운 경문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된다. *
*성사의 경문은 필수적인 단어와 본질적인 단어로 나뉜다. 본질적인 단어들은 필수적인 단어들과 너무나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필수적인 단어를 아주 조금만 바꾸어도 의미가 달라져 버린다. 필수적인 단어들도 물론 경문의 완전성에 필요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성사의 경문의 위력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떤 식으로든 경문을 건드리기를 주저할 것이다.
성체성사의 축성경문을 변경하면서 개혁자들은 “성서와 일치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서는 전통보다 더 중요한 계시의 원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히 말해 성서는 전통의 일부분이다. *루터도 성서와 일치시키려고 축성경문을 이야기말하기 식으로 바꾸었고 가톨릭의 새미사도 루터와 똑같이 했다.
우리가 실체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사용하는 축성경문은 성서가 아니라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께서 축성경문을 제정하실 때 복음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첫번째 복음서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도 한참 후에 집필되기 시작했다.
Cardinal Manning은 말했다.

우리종교는 성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성서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도 않는다. 우리신앙은 신약성서가 집필되기 전에 이미 세상에 존재했다.” – Henry Cardinal Manning, The Temporal Mission of the Church (London: Burns and Oates, 1901) -

예수회 신부 Joshep Jungmann 은 말했다.

미사의 핵심은 축성경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다음의 놀라운 결과를 말해준다. 최초의 성체성사 제정이야기의 원문은 결코 성서본문을 가지고 작성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성서이전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우리는 성체성사가 복음사가들과 성 바오로가 복음이야기를 기록하기 훨씬 더 전에 집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Fr. Joseph A. Jungmann, S.J. 로마예식의 미사: 그 기원과 발달 (new York, Benziger, 1950), v. 1, p. 194 –

Gaspar Gueranger 신부도 그의 책 Institutions Liturgiques (전례 제정)에서 말했다.  “그 예식들은 사도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도들의 전례는 완전히 성서 밖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전통의 영역이다.”
이 밖에도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는 다음 사실을 지적했다.

복음사가들은 성체성사제정 사화에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기록하지 않았다. 1) 당신의 눈을 하늘로 드시어 2) 영원한 계약(복음서에는 새로운 계약이라고만 기록됨) 3)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 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들이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하였다. “감히 자기 신심에 의해 이것들을 삽입할 정도로 간 큰 자가 있었을까?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몸소 축성경문을 전수했고 사도들도 직접 그것을 교회에 전수했다.” - De Sacro Altaris Mysterio 거룩한 제대의 신비에 대하여, Maurice de la Taille에 의해 인용됨, The Mystery of the Faith 신앙의 신비, Theses XXIV and XXV 24, 25문제, p. 454. -

사실 복음사가들은 축성경문이 모독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확한 축성경문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초대교회는 성사들의 축성경문을 감추어야 했으므로 복음사가들은 그것을 전하려 하지 않았다. 디오니시우스는 교계제도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말했다. 그들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신학대전 3부, 78문제, 3절)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전통과 트렌트공의회의 교리문답과 보편공의회의 교령을 거슬러 성체성사의 축성경문을 바꾸었다. 그러나 교회는 본래 그럴 권리를 소유하지 않는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 Apostolicae Curae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는 모든 성사의 재료와 경문을 바꿀 수 없고 심지어 건드리지도 못한다. 단, 행렬이나 일반기도문, 성가 등 성사의 본 경문이 암송되기 전이나 후에 이루어지는 예식의 비본질적인 부분은 바꾸거나 폐지하거나 도입할 수 있다.”

이는 유례없는 의견이 전혀 아니다. 다음 말씀을 보라.

성사의 본질에서 어떠한 부분도 개정할 권리가 교회에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황 성 비오 10세, Ex quo nono, Denziger 2147A).

다음은 로마미사경본에 수록되는 교황 성 비오 5세의 회칙 De defectibus (1572) 의 일부분이다.

만일 누가 성체와 성혈의 축성경문에서 무엇을 삭제하거나 변경하여, 이로 인해 이 경문들이 의미하는 바가 원래의 것과 달라지게 되면 그는 성사의 효력을 일으키지 못한다.” - Missale Romanum, Desclee. De defectibus. Ch. V, par. 1. -

이제 새미사의 축성경문이 본질적으로 달라졌는지(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달라졌는지)를 알아볼 차례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경문의 의미가 달라지면 성사는 무효이다.

성사의 경문의 본질적인 부분이 파괴되면, 즉, 경문의 본래의 의미가 없어지면, 그로써 성사는 무효가 된다.” (신학대전 3부, 60문제, 8절 “성사의 경문에 어떤 단어를 첨가하는 것이 위법인가?”).

개혁자들은 의미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들의 말이 진실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변경 1 : 이들(이 예식들)을 행하여라 => 이를 행하여라

새미사는 “이들”(복수)을 “이”(단수)로 바꾸었다.
본래 주님께서 “이들”이라고 하신 것은 “이 예식 전체”를 거행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말씀을 “이”로 바꿈으로써 이것이 지칭하는 바로 앞 구절인 “이것을 받아 먹어라(마셔라)” 만을 명하셨다고 해석할 수 있게 하였다. 먹고 마시는 행위만을 명하셨다는 해석은 ‘미사는 희생제사가 아니라 식사’라는 개신교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명사의 수만 복수에서 단수로 바꾸었지만 의미는 달라졌다. (본래의 의미 : 예식 전체를 행하여라 => 바뀐 의미 : 빵을 먹는 행위를 행하여라) 의미변경으로 본질이 파괴된 경문을 사용하면 성사를 무효로 만드는 성사모독죄를 범하게 된다.

변경 2 : 면병축성경에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이라는 구절 첨가

이 구절의 “너희를 위하여”가 무슨 뜻인지 위에서 다루었다. 이는 루터교의 신학인 “실체변화는 사제의 축성경이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영혼의 상태)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를 암시한다. 새미사 입안자들 중 하나인 루터교 신학자가 이를 넣었을 것이고 가톨릭교회는 루터교와 일치하기 위해 이를 받아들였으며 루터교는 이 가톨릭의 새미사를 자기네 전례로 채택하여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이 구절은 루터도 자기의 새미사의 축성경에 첨가했던 것이고 루터는 이 구절을 첨가한 이유에 대해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은 축성에 필요한 것은 오직 믿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루터는 사제의 축성경이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으로 실체변화가 일어난다(물론 신자들의 신앙으로 실체변화가 일어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축성을 하면 무효이다.)고 한 반면 크랜머는 실체변화를 아예 부정하였다.(실체변화에 의한 성사적현존이 아닌 영적현존을 주장했다) 루터와 크랜머가 이 구절을 삽입한 것을 그대로 모방한 새미사 입안자들의 목적은 실체변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즉, 경문의 의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이 구절의 삽입으로 경문의 의미는 변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변경 3 : 포도주 축성경 안에 있던 “신앙의 신비여” 라는 구절을 축성경 뒤로 옮김

전통에 의하면 이 구절은 사도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새미사에서 이 구절은 축성경 뒤에 첨가된소위 “기념환호”파트로 옮겨졌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축성경문이 신앙의 신비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이 신앙의 신비라는 뜻으로 오해하게 된다.(의미의 변경) 새미사에서는 축성경 직후에 신자들에게 “주님께서 오실때까지…” 라고 말하도록 했다. 이는 주님께서 이미 이곳에 성사적으로 현존해 계심을 암묵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오실때까지’라는 말은 현재 아직 오시지 않았고 미래에 오실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성경문의 의미는 바뀐 것으로 의심된다.
어떤 이들은 주장하기를 축성경의 본질은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이므로 다른 부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그것을 바꾸거나 삭제해도 경문의 본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 가지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1) 축성경문 앞에 있는 구절들은 축성경문의 의미를 변질시킨다.
2) 축성경문 그 자체는 본질의 일부요소이지 성사에 필요한 완전한 경문이 아니다.
3) 사제는 참 미사 안에서만 실체변화를 의도한 축성경을 염할 수 있으며 참 미사 밖에서는 그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즉, 새미사가 참미사가 아니라면 축성경을 염할 수 없으며, 다른 부분이 불완전하더라도 축성경만 완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대한 필요에 의해서라도 양형이 아닌 일형(성체와 성혈 중 하나만)만 축성하거나 미사 밖에서 양형을 축성하는 것은 위법이다.”-1917년 교회법 817조-

베네딕도회 수사이자 교회법학자인 Charles Augustine 신부는 말했다.

미사 밖에서 축성을 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뿐 아니라 아마 축성미수(무효)가 될 것이다.” (따라서 새미사가 불완전한 미사라면 새미사의 축성은 미사 밖의 축성이 되어 이는 신성모독이 된다.) - Charles Augustine 신부, 교회법 해설 (1917) (St. Louis: B. Herder Book Co., 1925), v. 4, p. 155, 교회법 817조에 대한 해설.

어떤 이는 교회법이 1983년에 개정되었으므로 옛 교회법을 가지고 비평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고주장한다. 그러나 (교회법과 사회법에 공통적인)원칙은 법은 명시적으로 폐지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유효라고 하였다. 1983년 교회법 5조에도 그렇게 나온다.
축성경문의 필수단어 앞뒤에 위치한 문장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문맥에 의해 의미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성사에 사용되는 경문의 완전성에 그토록 집요했던 또 하나의 이유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어떤 이는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만 축성경의 본질에 속하며 그 뒤에 오는 단어들(너희와 많은 이들을 위하여 쏟을 새롭고 영원한, 신앙의 신비)은 본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다음에 오는 단어들은 술부述部(내 피의 잔)의 수식어(修飾語)이다. 따라서 수식어는 문장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더 정확히 말한 이들은 다음에 오는 마지막 단어, 즉, ‘이 예식들을 자주 행하여라’ 까지가 축성경문의 본질(그러나 이 마지막 구절은 축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제는 성작을 내려놓고 이것을 암송하기 때문이다) 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축성경의 본질은 ‘사제가 성작을 손에 들고 허리를 숙인 자세로 발음하는 모든 단어’ 이다.” -신학대전 3부, 78문제, 3절, “성혈축성경은 타당한가?”-

변경 4 : 사제의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당신의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하게 하소서, 아멘.” => 사제의 말 “그리스도의 몸” 신자의 응답 “아멘”

전통미사에서 사제가 성체를 배령할 때 하는 기도가 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당신의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하게 하소서, 아멘.” 이며, 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새미사는 이것을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말하면 신자가 “아멘” 으로 응답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새미사를 지지하는)보수주의자들 중에 “사제-의장”이 이 말(그리스도의 몸)을 할 때 (성체의) 실재가 확인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변경도 개신교사상에 의한 것이다. 전미주교전례위원회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몸, 아멘” 이라는 구절은 공동체의 영향력과 역할을 매우 강력한 방식으로 옹호한다. 사목자(원문)는 세례와 견진을 받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공동체가 어떤 존재이며 전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정한다… 이 변경은 몇 가지 반향을 일으킨다. 1) 이는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이는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의 동의에 집중하게 한다. 3) 이는 성체성사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의심스러운 축성을 받아들여도 되는가?

위에서 새미사의 개정된 축성경문이 그 의미가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비록 이 사실을 확신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변경된 축성경문의 의미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은 들 것이다. 그러면 의심스러운 축성경문을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교회의 전통 가르침을 들어보자.

성사를 집전할 때 또한 미사에서 축성을 할 때, 유효성에 있어서 더 안전한 쪽을 버리고 의심스러운 쪽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교황 인노첸시오 11세(1670-1676)는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강하게 단죄했다. 이는 종교를 거스르는 중대한 죄, 즉,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을 모독하는 중대한 죄이다. 또한 이는 애덕을 거스르는 중대한 죄이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는 성사받는 이가 받을 수 있었던 성사의 은총과 효과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의덕을 거스르는 중대한 죄이다. 왜냐하면 수혜자는 유효한 성사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 Henry Davis,예수회 사제 Moral and Pastoral Theology(윤리, 사목신학) London: Sheed and Ward, 1936, v. 2, p. 27.-
재료와 경문은 반드시 확실히 유효해야 한다. 따라서 의심스러운 의견을 따르거나 의심스러운 재료나 경문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는 신성모독죄가 되기 때문이다.” - Heribert Jone 신부, Moral Theology(윤리신학) Westminster, MD: Newman, 1952, p. 323.-
축성경문은 한마디도 빠뜨려서는 안되며, 한 단어라도 첨가해서는 안되고 아무것도 바꾸면 안 된다. 또한 경문을 발음할 때 중단하거나 전와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Canon J. M. Herrve, Manuale Theologiae Dogmaticae(교의 신학 입문) Paris: Berche et Pagis, 1934 -


그러므로 성사를 베풀거나 받는데 있어서 그 유효성은 “개연적”이어서는 안된다. 유효성은 반드시 확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