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문화재단/다석류영모(多夕柳永模.1890~1981)

[최재천의 책갈피]종교 간 분열을 넘어선 희망과 대안/다석채플

▪살림문화재단▪ 2012. 9. 24. 06:40

[최재천의 책갈피]종교 간 분열을 넘어선 희망과 대안

다석 마지막 강의 류영모 | 박영호 풀이 | 교양인

우리는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종교 사상의 체계를 세운 우리나라 대표적 철학자 다석의 사상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죽음의 입 안에 있다. 죽음이 입을 다물면 죽는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메이지시대 걸승으로 나중에 도쿄대 인도철학 교수를 지낸 하라단산이 도쿄대 학장의 장례식 법문을 하게 됐다. “그대들도 죽는다.” 딱 한마디였다. 지난 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중국인의 스승’ 지셴린이 아흔 넘어 설법했다.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가는 문이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 같던 법정 스님도 떠나갔다. 스님의 죽음 얘기. “죽음은 삶의 한 모습입니다. 삶의 한 과정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무의미해집니다.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의 ‘죽음 강의’는 어떠했을까. 다석에게 있어 죽음은 “몸 옷을 벗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것을 겁낼 필요가 없었다. “믿음에는 죽음에 겁이 없다”는 것이다. 다석이 다른 자리에서 말한 걸 박영호 선생이 풀었다. “종교의 핵심은 죽음이다. 죽는 연습이 철학이요, 죽음을 이기자는 것이 종교다. 죽는 연습은 영원한 생명인 얼나(참 나)를 기르기 위해서다. 몸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요, 몸이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는 죽지 않겠다고 야단쳐도 안 되고, 몸이 죽으면 끝이라고 해도 안 된다. 몸나가 죽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몸나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이다.”

지난 2008년 7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세계철학자대회’가 열렸다. 이때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소개된 이는 다석과 함석헌 선생. 다석은 30년 전에 이미 우리 곁을 떠났다. 다석은 81살 되던 1971년 8월 광주에 있는 자생적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했다. 이 강의를 수사 한 사람이 녹음했다. 2000년이 되어서야 강의 녹음 테이프의 존재가 알려졌고, 이를 다석의 직제자 박영호가 풀었다. 예수도 석가도 자신의 말을 자기가 정리하지 못했다. 이는 제자들의 몫이었다. 동서고금을 회통하는 다석 사상을 처음 접하는 이가 이번 강의록을 통해 이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못된다. 직제자는 다석의 강의를 날짜순이 아니라 주제별로 재분배함과 동시에 다석의 삶과 말을 동서고금의 성인의 삶과 말에 교직시키면서 다석의 사상을 온전히 드러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종교 사상의 체계를 세운 우리나라 대표 철학자 다석의 사상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실 정통 기독교적 입장에서 다석의 기독 신앙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럿이다. 첫 번째 다석의 종교관은 종교다원주의와는 구별되는 일원다교(一元多敎)인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에 있다. 수사와 수녀들을 상대로 한 이번 19장의 강의 가운데 맹자 강의가 둘, 중용·주역·요가·가톨릭의 봉헌경 강의가 각각 하나다. 두 번째 다석에게 “선생이라곤 예수 한 분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의 스승이다. 다석에게 석가와 예수를 절대시하고 우상시하는 것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세 번째 다석에게 현존 기독교는 지나치게 사도 바울이 만들어낸 육체부활신앙, 타율신앙, 교리신앙의 틀에 갇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바울의 교회는 예수가 흘린 피로 속죄함을 믿어라, 예수가 심판하러 오는 것을 믿어라 하는 등의 완전히 타율적인 신앙인 것이다. 다석은 일평생 수도, 교육, 금욕의 삶을 실천한 끝에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들었다. 그 깨달음의 경지, 믿음은 어떠했을까. ‘생사와 애증, 욕망의 노예인 제나(自我, 에고)로 죽고 진정한 나인 얼나(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로 솟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석은 종교 간 분열과 갈등을 넘어선 희망과 대안으로 이 험한 세상에 다시 찾아왔다.

최재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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