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17.종교라는 잔에 담긴 술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04

종교라는 잔에 담긴 술

 

며칠 전에 필자가 존경하는 장로교의 강신석목사님을 뵌 적이 있다. 그 목사님께서는 얼마 전 모임이 었어서 인천을 다녀왔다 면서 그 곳에서 만난 성공회신부님을 만난이야기를 해 주셨다.

식사와 함께 술을 곁들인 자리였는데 에큐메니칼한 분위기와 함께 어느 한구석 막힘 이 없이 시원 사원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는 뒤에 덧 불이는 말씀이 더 재미있다. 개신교 에서도 진작 술을 마실 수 있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분열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그렇다고 저 분이 술을 드시는 분도 아닌데 ... ’라고 생각하면서 말씀의 속뜻을 몇번 곱씹으니 그 답이 나오게 되었다. 아마도 한국교회의 옹졸함을 저렇게 표현하신 것일 거라고 지금 한국교회가 가장 심하게 느끼고 있는 전통과의 충돌은 제사와 주초(酒草)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서 한국사회가 지닌 다원적 특성과 기독교 교리와의 융합으로 인하여 큰 충돌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일부 보수 교회에서는 아직도 여전하다.

주초문제의 경우, 신앙이 요구하는 경건과 전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겨 스스로 금하 는 개인적인 결단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인류의 형성과 더불어 원시시대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굳이 근거를 찾는다면 중국 은나라 시대의 유적에서 증명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삼한시대에 곡주를 중심으로 제조하였는데 신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여 서로가 친숙해짐으로서 재앙을 막고 풍족한 수확을 기원해 왔다. 또 구약성서에서도 노아가 최초로 술을 빚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관심은 우리가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직스런 선생님인 예수께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는 첫 데뷔작이 곧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을 술로 바꾼 기적이다. 잔치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술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일상에 동원된 당시의 대중언론은 어떤가?

“보아라. 저 사람은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고, 세리와 죄인들 하고도 어울리는구나"(마태1:19)

그 분의 별명은 분명 ’먹보와 술꾼’이었다. 식탁에서 드러난 예수의 사람됨은, 하느님

의 사람으로서 또 예언자로서 우러러 보인다. 그리고 당시의 죄와 용서를 일깨워 주고있 다. 예수의 제자인 성인 바울이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을 위해서나, 자주 앓는 그대의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마시도록 하시오"(디모5:23)라고 술

을 권하고 있다.

결국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일상생활의 상징언 행과 포도주를 통해서 나눔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삼한시대에 떡과 술을 빚어 신과 함께 먹고 마시며 원시공동체를 형성했다면 기독교의 전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초대교회의 예수공동체는 오늘날의 성찬과 달리 공동체가 배불리 먹고 마실 만큼의 넉넉한 빵과 포도주를 모았고, 함께 음식을 드는 시간은 예배에서 최대의 하일라이트였다.

그것은 상징에 앞서 구체적이었다. 이것이 후일에 미사, 즉 성만찬의 전형이 되면서 상징으로 바뀌고 말았다. 상징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라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소용되는 음식의 개념 또한 강하다. 8세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유럽의 지배종교였던 기독교가 와인을 의식용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수도승들의 최대 연구과제가 되 기도 했던 술이, 한국교회애서 전통문화와 충돌을 빚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칼하다고 하겠다.

끝으로 제도교회의 담장을 극복한 YMCA운동에 적절한 용해제로서, 그리고 활력소로서의 술잔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YMCA회보 빛의 아들 제114호 1994.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