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18.조계종사태를 바라보면서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05

조계종사태를 바라보면서

 

한국 불교의 얼굴인 조계종이 총무원장 선출과정에서 드러낸 정권과 불교 폭력배와 불교의 관계 그리고 종단내부의 헤게모니 다툼과 돈거래 등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냄으로서 세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사태를 바라보면서 내용을 아는 일각에서는 저만한 일로 더구나 어제 오늘의 일이어서 신기하냐는 듯 초연해 하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니 믿음과 인생살이가 이렇게 호들갑스러워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에 사람을 믿지 마라. 세상에는 믿을 것이 하니도 없느니라. 종교를 전부 아편이라 고 생각하면 틀림없느니라. 혹은 내 딸아 남자들이란 모두 도둑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떨까요.

요즘의 교사들은 하나같이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들이라고 수시로 흥분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끊임없이 사회와 인생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놓으면 자녀들의 정신세계 속에 뿌리 깊은 불신만 남아있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늘 부정적인 생각과 불신으로 인격이 형성되어서야 몸은 건강할 수 있을까도 염려가 됩니다.

선생이 위선자라면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열심히 공부할 리가 없고 성직자가 모조리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신앙생활은 활 수 있으며 교회나 성당 혹은 사찰에 갈 수 있겠습니까.

부정적인 사고나 불신은 한결은 더 나아가서 모든 정신질환의 확실한 원인이 됩니다.

남을 믿지 못하고 그들이 자기를 해롭게 활 것이라는 생각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서 자기의 행위를 계속 확인하고 반복하는 병을 강박중이라고 하지요.

이 땅의 사찰에 교회 학원 등 비리가 예상되는 그 어느 곳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거대환 정신병동이요 아울러 지옥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모르긴 몰라도 신앙의 대상이요 근거지인 교회니 사찰의 비리가 폭로되고 학교의 비리가 폭로될 때마다 세인들의 충격의 강도는 더 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간접원인이 되어 정신과를 찾는 비율도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거꾸로 성직자의 제복 속에 숨겨진 부정이 드러남으로 오는 치유도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드러난 부정이 전체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조계종사태를 바라보면서 정치권파 유착된 범죄니 폭력배와 함께 한 범죄를 조사해서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 일을 반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서도 아프지 않고 괴롭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다고 할지라도 아예 믿음을 부인하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종교 속에 담겨진 본질을 찾아내고 보배처럼 간직하는 일이 더 성숙한 종교생활일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한 번씩 배신도 당하고 괴로워하면서 사는 삶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바보스러워 보일지 모르니 분노와 실망보다는 이를 계기로 더욱더 자기 종교에 정진하는 편이 신앙의 성숙도를 높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 불교를 바라보면서 결코 불교만이 아닌 한국의 기독교 안에 드려나지 않은 부끄러움은 없는지 되짚어 볼 일입니다.

[CBS 1994.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