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14.지역감정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어!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01

지역감정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어!

 

역사를 통해 살펴볼 때 지역감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선거철만 되면 목소리가 놓아지는 지역감정. 이것은 역대 독재정권이 만들어 놓은 도깨비의 일종이다.

도깨비란 이성의 눈으로 보면 안보이다가도 감정의 눈으로만 보이고, 낮에는 없다가도 해가 떨어지면 어두움 속에서 활개를 치는 것이 도깨비의 속성이니까.

정작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내용은 달아오르는 대선 분위기 안에서 한번은 선택을 해야 함에 있는데 이 기회를 영남이다, 호남이다, 혹은 강원이다, 라는 지역 대결이 아니라, 민주냐, 반민주냐 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는 것이다.

최근에 민주당이 재야와 손잡게 된 것을 가지고 민자당에서 김대중 후보의 노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정치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과 재야의 대표적 세력인 민주주의 민족통일전국연합은 대통령 선거에서 범민주 단일화 문제에 대한 정치협상을 마무리 짓고 김대중 후보의 지지와 정치연합에 대한 입장을 같이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과 전대협, 전노협, 전교조 등 전국연합 측은 협상을 통해서 반민주악법개폐, 업종연맹의 합법화, 군비축소, 국방예산공개원칙, 해직교사, 해고노동자 복직 등 54개 항에 합의했으나 5개 항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이견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전국연합 측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고 했다는 점이다.

민주당도 재야세력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진보세력과 젊은층의 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중도우파를 강조한 민주당에서는 중산층의 감표를 우려해 단순한 정책연합에 불과하다고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입장과 일부 일반인들은 김대중씨가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연합전선을 구축하려고 하겠지만 전국연합은 재야운동조직이기 때문에 마땅히 운동의 입장에서 민주화를 계속 추진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느냐는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정치와 운동을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데서 비롯된 사고이다.

급변하는 국내의 정세에 적응하기 위해서 정치와 운동의 통일을 지향해 온 재야운동의 노선을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빚어진 오해일 수 있다.

이번에 민주당이 전국연합과 손잡은 것은 야권의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대 독재정권이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을 극복한 형태의 민족민주운동 세력의 전국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정권교체의 필요성은 역설하면서도 어디 그렇게 되겠어. 라는 냉소주의적인 모습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야당이 집권하자면 진보세력은 일부 보수 세력을 모두 끌어안아야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정치발전과 역사발전의 필연성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나머지 5개 항에 대해서는 계속 합의하여 국민정서에 맞게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중산층의 감표나 보수 세력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아울러 성숙한 유권자는 정치가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권리임을 인식하고 높은 이상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처선 혹은 차악이라도 찾아서 발걸음을 내 딛어야 할 것이다.

[성공회정의실천사제단 회보 제12호 1992.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