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43.성탄절 기독교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신화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28

성탄절 기독교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신화

 

오늘밤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미사라는 뜻으로 크리스마스라 불리는 성탄절입니다.

애청자 여러분. 오늘은 특별히 성탄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성탄절은 기독교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신화로서 깊은 의미가 있는 예전입니다. 미사는 초기부터 그리스도 교회에서 한밤중에 장중하게 행해졌습니다.

로마 교회(서방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354년경부터로 보이며 조금 뒤인 379년부터 그리스정교회(동방교회)가 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성탄 미사는 특히 어린이들이나 가족중심의 축일이었다. 또한 크리스마스와 결부하여 산타클로스의 설화와 전승이 있다. ‘크리스마스의 할아버지’ 즉 산타클로스의 민속에 따라 차차 세속화하여 보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 이것은 3세기 말, 어린이를 보호하는 소아시아의 성 니콜라스의 이름이 네덜란드어로 성 클라우스로 발음된 것이, 네덜란드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잘못 불려져 성녀(聖女:산타)를 뜻하는 것 같은 산타클로스라는 애칭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성탄의 의미를 교회에서 찾기보다 교회 밖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성탄절을 고리타분하게 교회에서 지내느냐. 할 정도로 즐기는 분의기에 익숙해 있으며 스스로 자축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말 분위기에 편승해서 타락하는 사회의 일면에 기독교의 절기가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대형백화점의 선물상점이나 심지어 술집마저 성탄을 상징하는 대형 장식물을 내걸어 상인들의 상술에 성탄절이 이용당하는 경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기쁘고 즐거운 성탄절을 축제 분위기속에서 보내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과소비니 향락 분위기와 일치시켜버리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에겐 부끄러움이지요.

그러니 앞에서 지적한대로 성탄의 의미를 선물이라는 것에 부여하거나 상업화를 추구한 자본주의가 성탄절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놀고 즐기는 식의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면서 성탄절을 오늘날 교회의 물량주의 및 교회성장의 가속화를 위한 계기로 삼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대형화와 함께 오만해진 무서운 허위의식은 반드시기독교의 쇠퇴를 예고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기리는 축일에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을 구별해서 예수는 우리의 주인이니 꼭 우리들만의 축제라고 주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매년 12월이 시작되면 교회에서는 대림절 혹은 대강절이라는 절기를 통해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보다 타종교에 훨씬 더 너그러운 불교사찰에서는 그들이 이해하는 ‘성인 예수’를 기리는 분위기에 더불어 들뜨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4월 초파일에 구경삼아 절에 가서 기웃거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성탄절 이브를 맞이하여 성탄절이 교회 주변의 불우한 이웃과 더불어 나눔을 실현 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입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성탄의 기본정신을 더 이상 가족이기주의니 교회만의 기쁨 차원으로 축소 굴절시켜서도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마구간으로 오신 예수 탄생, 이런 뜻 깊은 성탄 전야가 허위의식의 흥청거리는 전야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예수탄생의 의미보다 산타클로스가 더 부각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민족적 위기를 맞이한 금년의 성탄이야말로 그 의미를 조용히 묵상하고 민족과 이웃의 평화를 준비하는 뜻있는 날이기를 기원해 봅니다.

[CBS 1994.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