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이우송신부 / 인물탐방
이 땅 어디를 둘러보아도 교회의 뾰쪽한 첨탑과 십자가가 위세를 자랑한다. 대도시의 거대한 빌딩이나 목 좋은 골목 어귀에는 어김없이 휘황한 네온사인을 후광처럽 두룬 십자가 가 하늘나라로 향하는 이정표 구실을 자부하며 서 있다. 한적한 사골 마을의 정겨운 풍경 속에도 십자가는 이미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되어있다.
- 이 땅의 기독교 -
서구의 기독교 문화가 이땅에 첫 발을 내디딘지 얼마쯤 되는지, 무슨 목적을 안고 들 어왔는지, 전문가들의 도움을 빌린다. 하더라도 상세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2백년 안확일 것 같다. 반만년의 긴 민족사속애서 그리 걸지 않은 기간에 신자 천만을 자랑하는 기독교는 이 땅에 확고한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하느님의 은총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이 땅의 양식 있는 많은 성직자와 지식인들은 엄청난 양적 팽창애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거듭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얼핏 보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 나 한국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전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다.
- 본질적 의미의 종교로의 회귀 -
대한성공회 이우송(39. 성공희 대전교구 광주교회 주임신부)신부는 87년 이래 한 국의 교회는 외형적 내리막길에 있다고 보고 있다. 교회라는 공간이 갖는 사회적 의미의 축소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본질척인 의미의 종교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이신부는 믿고 있다. 인류는 끊임없는 영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지금도 2천년 전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답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논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존 재 할 수 없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마치 진공관 컴퓨터 터미널과 같습니다. 교회가 터미널이고 선자는 거기에 맞물린 퍼스컴이라고 볼 때 각 개인의 용량은 급격히 커지고 있는데 비해 교회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교리나 도그마는 천5백년전 그대로인 셈입니다. 교실 한간을 다 차지하는 8비트짜리 구식 진공판 컴퓨터로는 도저히 수용이 안되는 것이지요. 변하지 못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신비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교는 다사 태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근본적인 가르침의 길로 다사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정한 종교로 회귀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언 가르침을 원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며, 그런 사람이 만나는 터미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기복신앙과 大교회주의 -
이신부는 한국교회가 정상궤도를 달리지 않고 편법과 자기기만에 빠져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가 기복신앙과 대교회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개인의 구원에 때달라는 기복신앙과 신앙보다는 돈벌이에 치중하는 재벌교회가 목표가 되어버린 대교회주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모델처럼 어느 새 일반인들의 뇌리에 정착되고 있다
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다.
어느 시대에서나 교회는 쉽게 권력과 돈에 굴복하여 부유한 자의 편얘 서 왔고, 한국교 회는 그 대표적인 혜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인 나눔과 공동체의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익 집단으로 전락해 았 다는 것이 이우송신부가 바라보는 오늘의 교회 현실이다.
- 또 하나의 문화사대주의 -
이우송신부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문화적 역할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사제이다.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사대주의 사상을 주업시켜 민족의 자주성올 상실시켜왔다고 그는 보고 있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가 이 땅에 들어와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상호 습합의 과정을 거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힘을 앞세워 우리의 전통문화를 미신 혹은 우상문화로 선전하면서 그 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전통문화는 배척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이런 시각이 곧 또 하 나의 문화 사대주의로 굳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라기보다 한국교회가 자신들의 역할과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련 이신부의 생각은 대한성공회 광주교회에서 실천적으로 보언 〈계절민속학교〉로 이어진다.
- 기독교 문화의 토착화에 힘써 -
84년 처음 열린 〈계절 민속학교〉는 기독교 문화가 한국전통문화와 어떻게 어우러지고, 어떻게 토착화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이신부는 서구문화에 의해 단절 의 위기에 놓인 우리의 전통을 기독교에 의해서 다시 세워보겠다는 생각으로 계절민속학교를 주최했다. 뿐만 아니라 민요. 농악 등을 통해서 민중들의 건강한 문화형성을 돕고 민중들의 응어리를 풀어주자는 데 그 뜻을 두고 처음 이 일울 시작했다. 상가 2총 건물에 세들어 있던 광주성공회에서 시작된 민속학교는 5차에 걸쳐 3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 작은 교회의 움직임은 급속히 퍼져 각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전통민속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례가 늘어갔다. 지금은 거의 일반화 되다시피 한 일이지만 서슬이 퍼런 5공시절이라 〈민중〉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몸을 사리던 때였으나 작은 교회에서 엄두도 내기 힘든 일올 성공시킨 것이다.
이런 이신부의 문화에 대한 애착어린 활동은 그가 교구의 사정으로 충청도 아산의 백석포라는 바닷가 시골 교회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 작은 교회와 삶의 공동체를 표방하며 차츰 자리를 잡아가던 이신부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 소외당한 이웃과 함께 -
원래 이신부가 처음 광주를 선교의 대상지로 전택한 것도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고 그만큼 할 일이 많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재로 ’80년 이후의 광주는 5.18 민주화 운동을 위시하여 노동자. 농민. 번민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한 이들이 가장 많이 모인곳 이었다 해도 크게 빗나간 말이 아닐 것이다. 이산부가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라든가 NCC 인권위원회 등의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것도 이런 연유애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젊은 시절 그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강남대학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그는 사회사업이라는 것이 6.25 이후 구호물자와 함께 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사회의 근본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질주하는 자본주의속에서 치이고 념어진 자들을 부축하고 달래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판단이 서자 주저 없이 사회복지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성공회신학교에 입학했던 것 이었다.
- 작은 교회로 -
목회자가 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집안이 오랜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할아버지 때부터 교회와 인연을 맺은 탓에 그의 집안은 일찍 개화되었고 해남의 시골마을에서 두 아들을 도회지로 대학을 보내는데 큰 아버지는 서울대음대를 다니는데 마을에서 이웃사람들이 당신네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딴따라가 된다고 들 하는데 라는 말에 할머니가 잿물을 마시는 소동이 일어나 결국 음악대학을 중퇴하고 신학교를 다니게 된 사연이며 아버지는 조선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집안내력이 있다.
6.25때는 조선신학교 졸업생이었던 큰아버지가 전도사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굳이 성공회를 선택한 것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붙인 교회 중에 가장 이성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성공회는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교리에 있어서 관대함은 타 교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런 성공회의 특성과 이신부의 성품이 맞물려서인지 그는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교회에 다니라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맡고 었는 교회의 신자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거의 없다.
교회를 신자의 숫자와 교회의 크기로 따지는 것이 그는 항상 못마땅했다.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잘못된 인식과 태도애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 數理도 하나의 이정표에 불과 -
성공회는 규범은 있어도 교리는 없다고 할 만큼 교리에 매어있지 않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성공회는 교구 사제가 원하면 결혼을 한다. 물론 수도자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성공회를 특징 지우는 두 기둥은 이성과 전통에 있다. 교리라는 것은 하나의 이정표에 불과한 것이며 하느님나라에 이르기까지 도구로서 필요한 것이지 그 이후에는 훌훌 털어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수단을 본질로 오해하고 있는 한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착된 도그마나 교리로는 더 이상 인간의 영적 성장을 이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문익환 목사가 주장하는 교리 개념의 재해석에 크게 동의하고 있다.
예컨대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어 숨을 불어 넣었다는 것은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성서의 곳곳에서 보이는 이런 류의 표현은 시대적 혹은 민족적 언어로 바뀌었을 때 올
바른 이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작업은 기독교가 이 땅에 올바르게 자리 잡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 현실과 이상의 만남 -
이제 40대에 접어드는 그는 지금까지 지녔던 사고나 사4상이 상당 부분 편협했었다고 자 인한다.
그동안 진보 진영의 선두에 자리 잡아왔던 그가 이제는 삶이나 신앙이 그렇게 논리적 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더라고 자신을 돌이킨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도 결국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간의 경험 속에서 이상은 현실을 바탕으로 세워져야 하며, 현실은 이상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익힌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도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가 바탕이 되었을 때 신비는 그 자체로 안정 된다는 것이다.
- 사제의 길 -
그는 입고 있는 사제복이 자신의 옷이라는 생각을 아직까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고단하고 힘든 영혼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걸맞는 옷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생각은 자신얘게 철저한 이신부의 품성을 오히려 돋보이게 했다.
진정한 사제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의 교회들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사제라는 성직이 우리 사회의 빛으로 존재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잡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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