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말은 나옴직한 각피질
필자는 7살때 사골에서 살면서 물을 싫어한다는 이유 때문에 할머니로부터 맴생이(염소)
넋신이 들었다는 말을 들으며 염소는 목욕을 안 하고 사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필자는 요즘도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면 어김없이 양 무릎과 양 팔꿈치에 각피질이 쌓이고,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효자손의 도움을 얻어 손이 안가는 구석까지 박박 긁어 혈액순환을 시키는 버릇이 남아있었다.
환절기.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환철기를 맞이한 셈이다. 최근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신문과 TV에서는 각종 비리에 관한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연 일 터져 나와 우리 국민들이 부정부패에 관한 한 불감중이 우려된다.
어느 봉사단체의 장이 우리나라 공무원의 실상을 조사해 본 일이 있다. 세분해 본 결과 134종에 달하는 공무원직 가운데 100% 청렴한 공무원은 철도의 건널목지기인 전철수 밖 에 없었다.
등대수도 어선에 기름을 팔아먹은 적이 있었고, 기상대의 측후소도 쌀 상인에게 뇌물을 받고 있지도 않은 폭풍정보를 이유로 ”불가항력증명서”를 발부해 준 일이 있었고, 우편 집배 원도 외국에서 온 우편물의 우표를 떼어내 우표 수집가에게 팔아넘긴 예가 있었다.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는 비리들을 보면서 이 나라 군상들이 정말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이 제도적 장치일까. 아니면 국민 개개인의 도덕성 회복일까를 생각하면 막다른 골목에 설 수 밖에 없다.
최근 코리아 리서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30대 여성 61.4%가 교사에게 금품제공의 경험이 있었다고 하며 조사자료 에서는 사립중학교 교사에 대한 금품제공 경험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여기까지 와 있다. 이제껏 대학입시 관련 비리가 노출되었을 때 언론과 여론은 소수 지배계층에 속해 있는 관료와 학부모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속으로 분노하고 한편으로 좌절했지만 청작 속사정은 전 국민이 비리의 주범이면서 피해자인 셈이다.
단지 자신들에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즉 나에게도 유휴재산이 있었다면 먼산투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나의 오른손에 권력이 주어졌더라면 남용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잘나가는 군벌 장군의 아내였다면 갖다 바치는 뇌물을 마다했을까. 혹시 여건이 허락된다면 자식이 공부를 좀 못해도 돈 좀 들여 일류대학에 안 보냈을까. 한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
다만 이 사회 구조 안에서 오늘 내가 어느 계층,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범죄의 강도가 강하고 약할 따름일 뿐 공직자가 아니라고 억지 쓰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좀 더 부끄러운 자책을 하자면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재물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노동의 대가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일간지를 덧칠하듯 터져 나오는 구조적인 범죄와 특정인들의 범행을 비호하자거나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 양비론적으로 희석시키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쏟아지는 부패의 쓰래기 더미가 내 집에서 별 관심 없이 내놓은 작은 오물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단어를 정확히 선택하는 일도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리와 범죄는 의미가 유사해 보이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비리의 사전적인 내용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뜻이고 범죄의 사전척안 내용은 ‘죄를 범함’이다. 5공 비리, 수서 비리, 학원 비리, 군 관련 비리 등 오용하고 있으나 명약관화한 범죄를 버리란 용어로 선택혜서 부정부패에 의한 국민의 의식을 낮은 차원의 부도덕성 정도로 인식시키려는 언론과 사법당국 또한 또 다른 다중범죄가 아닐까.
이제 김영삼 정권은 문민시대의 개혁 정치에 걸맞게 그동안 은폐되어온 범죄의 환부를 도려내고 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캔터베리판구의 엑스트라교구라는 소아기적 구습을 벗고 독립관구라는 어른스러운 옷을 갈아입은 한국성공회는 그간 환절기를 거치며 춥지도 덥지도 않아 뭉기적거리다 벗겨내지 못한 해묵은 때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잘만 불려 벗겨내면 서말은 나옴직한 각피질이 우리 교회의 혈액순환을 장애하지는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성공회신문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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