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56.미군기지 필리핀에서 배워야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39

 

미군기지 필리핀에서 배워야

 

지난 90년 9월 필리핀의 마닐라에서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수십만 명의 시위대들이 ‘세계 평화축제’에 참가한 33개국 대표들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이들은 ‘미군기지 철수가’를 부르며 상원의회 건물로 몰려가 ‘미군기지사용 연장 조약’의 인준을 거부한 의회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필리핀에서 9월 16일은 축제일이 되어있고 필리핀 내 미군기지의 종말을 고하기로한 날을 정했습니다.

늘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여겨왔던 필리핀의 정치의식은 결코 후진국이 아니었습니다.

 

상원의원 가운데 우익으로 잘 알려진 마세다의원도 반대표를 던졌고, 강력한 반기지 운동가인 피멘텔의원은 역설적이게도 ‘대가가 공정히 치러지기만 한다면’ 기지사용의 연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발언하는 유연성까지 보였습니다.

당시 필리핀 상원의원의 결의가 아세아지역의 평화를 위해 끼친 공헌은 높이 명가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2일 정부의 국방 외교 당국에 따르면 김영삼대통령은 권영해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용산기지 이전계획이 애초의 한. 미 합의대로 96년 말까지 완료되기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이전기간의 연장이 불가피하다는데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백지화될 위기를 맞게 되어 군민들은 물론 외무부까지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 90년에 한. 미 당국이 합의한 내용은 96년 말까지 용산기지를 지방으로 이전 완료하기고 했습니다.

그런데 합의 끝에 일정과 규모는 장래 상황 변화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을 받아들여 오늘날 이의 제기의 소지를 남겨놓고 말았습니다.

주둔국의 심장부를 떠나기 싫은 미군측은 북한의 핵문제 미해결에 따른 2단계 주한 미군 철수계획 유보와 이전에 따른 조건을 이유로 버티기가 계속될 전망입니다.

 

미군 당국의 요구 수용 방침을 가진 국방부와 달리 외무부는 애초 한미 당국의 합의 사항대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면서 국방부가 내세우는 가지 이전 기간 연장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또미군측이 요구하는 백억 달러에 가까운 엄청난 이전 비용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한 미군 당국은 92년 4월 주한미군기지 전체의 통폐합과 연계해서 용산기지를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해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또한 요구사항도 단위부대이전과 17억 달러 이전 벼용 부담 합의 사항도 완전히 뒤집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한 미군을 향한 우리 국민의 저항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국제적으로 동서긴장이 무너졌고, 국민적인 반미의식과 통일의 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미군의 지방이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미군 존재 자체를 다시금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늘 후진국의 후진정치를 연상했던 필리핀의 시민의식과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정치인들의 정치의식이 국가의 자존심과 국익이라는 명제 앞에서 하나가 되는 정치문화가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우리의 정치도 국민의식의 고양과 함께 성숙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정치를 기대합니다.

[CBS 1993.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