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목사님의 눈은 남아서 이 땅의 통일을 지켜볼 것
이우송 성공회사제
* 20년 전, 문익환 시인께서 이승을 떠나 저세상으로 드시던 그날의 방송칼럼입니다.
다시는 이런 세상이 더 이상은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희생을 감내하면서 한 시대의 예언자로 살아오신 문익환...
역사는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진보하리라던 희망마져 져 버리게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오래된 낡고 꾸깃꾸깃한 칼럼한편을 다시금 꺼내게 됩니다.
예수를 선생으로, 주군으로 모시던 문익환의 장례식이 있던날, 생방송칼럼을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던 당시를 회상하면 느낌이 새롭습니다.
정부도 대통령도 없고, 교회도 성직자도 신자도 없고 돈도 집도 명예도 없고, 오직 '영혼의 道'만으로 본인이 편한 자기자리를 찾아가신 다음세상의 문익환이 부럽습니다.
어두웠던 민족의 격변기에 한해의 시차를 두고 태어나서 옳던 그르던 백성 앞에 지도자로 우뚝 섰던 정일권씨와 문익환 목사님이 한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이 된 두 분을 연관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앞에 대조적인 삶을 살다 우연히 같은 날 세상을 떠난 것인데 사가들은 이런 사건을 후일에 어떻게 기록할까 생각해봤습니다.
해방 이후 조선국방경비대를 거쳐 서른세살의 나이에 육군창모총장을 지낸 정일권씨 그는 군사 구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에 의해 3공화국의 국무통리로 임명된 후 한일협정 비준 삼선개헌 등 숱한 역사의 고비에서 박정희와 함께 권좌를 누렸던 숭악한 사람입니다.
그 시절 문익환 목사님은 교사로서 성실한 목회자로서 그리고 실력 있는 신학자로 살아 왔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의 칼날이 번득일 때부터는 민주구국선언으로 감옥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정일권씨가 신군부정권이후 노년시절까지 자유총연맹총재등 권력의 주변을 맴돌면서 해방 후 현대사를 풍미하고 있을 때 문익환 목사님은 민족사를 끌어안고 감옥을 넘나들며 통일을 노래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일권씨는 확실히 풍운아였습니다. 장례식까지 집권여당대표의 보위를 받으며 성대히 떠나는 모습이 개인에게는 영광이 될지 모르니 문민시대로 장식된 현대사에 걸맞지는 않아 보입니다.
한 평생 조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스려져 가신 문익환 목사님. 우리민족의 가장 큰 아픔이 외세에 의한 분단이며 우리가 뜻을 모아 분단을 극복해 보자시며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악법인 보안법을 손수 어기기로 하신 문익환 목사님.
십자가를 지고 민족의 허리에 감긴 철조망을 온몸으로 걷어내시다 스러져가신 그는 분명 통일의 그날까지 살아 우리와 함께 할 민족의 혼입니다.
생전에 써놓은 통일 염원의 시에서 ‘역사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분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평양으로 떠나시기 전 ‘서울역에 나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소년처럼 억지를 쓰시던 이시대의 시인이며 예언자’이셨던 문익환이 이렇게 떠나셨습니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대통령을 대신해 청와대에서 김정남 수석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왔다는 청와대의 김정남 수석의 빈소 방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 앞에는 통일에 최대의 장애물인 국가보안법이 엄존해 있습니다.
앞에 영면을 취하고 계신 문익환 목사님은 가석방 상태에서 사면복권도 안된 채 입관되어 있습니다. 현행법상 국사범의 시신 앞에 대통령이 기릴 것이 무엇일까요.
정작 김영삼 정권이 기려야 할 과제가 있다면 통일운동의 우두머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통일꾼 문익환의 부활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내일은 영결식이 있는 날입니다. 이제 온 국민은 진정한 민주화와 통일의 날을 준비하면서 문익환 목사님의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가운데 평안히 쉬시기를 기원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문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셨으나 젊은 청년에게 안구기증을 통해 남기고 가신 문목사님의 눈은 남아서 이 땅의 통일을 지켜볼 것입니다.
[CBS 1995. 1. 21.]
1990년 김대중대통령과 문익환목사와의 만남. 김대중평화센터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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