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이우송사제칼럼

63.멋과 의미있는 피서를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19:48

멋과 의미있는 피서를

(성공회광주성당  이우송신부)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것이 당연한 계절의 이치다. 겨울은 난로로, 여름을 선풍기나 에어컨으로 이겨낼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자연의 순리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거스를 때 역천자(逆天者)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사람들이 옛 어른들에 비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철이 없다든지 역천자적인 사고와 행동 때문인 듯하다.

겨울에 반바지와 런닝셔츠도 춥지않고 여름에 긴팔 양복을 입어도 덥지 않는 주택구조와 냉, 난방시스템은 우리를 철없게 만들고 있다.

한겨울에 수박을 먹는등 계절에 관계없이 온갖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철부지란 철모르는 어린 녀석을 일컫는 말인데 요사이 철없기로 말하면 어른 아이 별 차이가 없다. 철따라 파종하고 김매고 거둘 철에 거두어야 철이 든다거나 갈미봉에서 묻어오는 남서풍에 비 설걷이를 해야 꼭 철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때를 알아 헤아릴 수 있어야 철부지를 면하는 것이다. 단지 계절만이 아니라 삶의 여정에도 때를 알아서 처신하는 것도 성숙한 자세일 것이다.

삼복더위를 피한다며 서해안으로 동해안으로 떠나는 기나긴 피서행렬이 미더워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시간과 경비도 문제려니와 몰리는 인파속에서 시달리는 피서여행은 지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는게 대다수의 지적이다.

어딘가를 꼭 다녀와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남 다녀오는 바캉스를 다녀오지 못하면 문화인축에 끼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일까. 각자의 여건에 걸맞게 즐기며 보내는 건전한 피서문화가 절실하다.

추억어린 고향을 찾는다거나 테마가 있는 피서를 떠나는 것이 인파와 교통채증에 시달리며 유명피서지를 찾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옛 어른들처럼 가까운 자연을 찾아 냇물에 탁족도하고 더불어 등목도 하면서 더위를 체감하며 자연과 친화하는 여유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멋스러움일 것이다.

삼복중 기승을 부리게 될 말복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삶을 통해 복더위를 극복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더위에 별 재주 없는 옛 어른들이 무더운 여름을 더위로 즐기면서 이열치열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철들기엔 아직도 먼 필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 생존의지혜가 아니었을까. 말미에 자랑 같지만 객담 한 마디하고 싶다.

지금껏 집 한간 장만하지 못한 탓에 올 여름은 손수 집을 한 채 짓기로 했다.

주택에도 유행 같은 것이 있어 황토집이 좋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담양의 창평 용수리 시골마을에 쌈직한 땅을 구입했고 집짓는 공부도 좀 해보고 주변의 좋다는 황토도 퍼다 놓고 황토집을 흉내 내 보기로 했다.

자연보습이니 원적외선이니 하는 사치스런 이유는 어울리지 않고 땀 섞인 황토를 짓이기며 삼복더위를 난다면 필경 또 다른 피서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탈 도시의 신 귀거래사라고나 할까.

몆해째 계속되는 도심의 열대야 현상 속에서도 시골의 여름밤은 시원하게만 느껴진다.

 

(예향 전남소식14호 97.7.31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