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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국제사기꾼에게 털어 바친 국방비

▪살림문화재단▪ 2013. 4. 20. 20:08

국제사기꾼에게 털어 바친 국방비

이우송사제칼럼

 

국방부가 프랑스 무기상에게 속아 국고 53억원을 사기당한 사건은 정치권의 쟁점사안 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도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제적인 무기상들과의 거래에서 뇌물수수 사건이나 잘못 바뀐 무기가 선적되어 문제가 된 적은 있으나 이처럼 큰 액수의 국방비를 몽땅 사기당한 일은 처음이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국방부의 군수본부가 신용도 불분명한 국제 무기상에게 거금을 사취당한 과정은 의구심까지 갖게 합니다.

미간 오퍼상의 무역도 아닌데 미등록업체로서 중개상 자격도 없는 광진교역이 국방부 군수본부 측과 접촉대리인 역할을 수행했던 점, 실제 광진교역이 국방부가 사기 사건을 인지 한 후 7월에 사무실을 폐쇄하고 잠적했던 점 국방부와 외환은행이 지난 91년 5월 똑같은 수법으로 2, 3차사기를 당했던 점 등이 석연치 않습니다.

한편 국방부가 사기 사실을 확인하고도 6개월이 넘도록 손을 쓰기는커녕 거래상이 있는 프랑스에 수사조차 하지 않아서 가짜 선하증권을 재출한 FEC와 에피코사가 사무실을 폐쇠하고 달아날 수 있는 시간을 준 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고질적으로 있어 왔던 군수 비리로 군수 본부측의 담당자가 해당업체와 짜고 이를 묵인했다는 의구심을 더하게 합니다.

이번 사건이야 말로 해이된 군의 기강과 무기도입업무의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서 다시 한 번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와서 국방부나 외환은행 양측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식의 공방을 벌이거나 변명 따위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일 뿐입니다.

또한 국가 예산의 1/4이 국방비이고 그 예산의 절반이 군수품 조달에 쓰여지고 있는데 군이 특성을 빌어 보안과 비밀유지를 핑계 삼아 감춰지기만 한다면 투명해야 할 국가예산에 블랙홀이 존재하는 꼴이 됩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의 책임은 누가 지든 국민의 혈세를 국제사기꾼에게 바치게 되었습니다.

사건 발생의 원인과 규명을 해야 할 텐데 쌀 정국에 이은 개각과 함께 떠나는 각료에게 짐 하나 더 지워 떠나게 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책임자나 새로 입각한 각료가 책임 있는 사과도 하고 방지를 위한 혁신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가지고 있는 석연치 않는 의구심까지 투명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CBS 1993.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