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살림의 문화를 깨우는 사람들

광주전남 목정평 6월항쟁기의 부문활동

▪살림문화재단▪ 2013. 4. 22. 00:53



(광주YWCA의 목정평의 단식현장으로 달려온 전세계의 외신들의 취재진에 둘러싸여  입장을 밝히는 단식목회자)


876월항쟁 30주기를 맞이한

광주전남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활동기록


 

87년 전두환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직선제개헌 요구를 거부하는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 후 즉각 거센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며칠간은 오히려 거짓말같이 잠잠했고 충격은 섬뜩 했다.

4.14일 전국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영구집권을 위한 4.13발언에 대한 기독교성직자의 입장을 발표한다.

 

정국의 위기를 직감한 광주NCC인권위 총무 이우송신부가 4.16 상경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오재식원장)을 찾아 차선각목사(당시부장)를 만나서 ‘4.13호헌조치는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을 함께하고 광주전남목정평의 재건과 프로그램을 위하여 50%의 재정지원을 협의하였다. 또한 강사로 문동환교수를 선임하는데 까지 협조를 구하고 광주에 돌아온다.

 

당시 필자는 광주NCC 최진호간사와 함께 천주교 젊음의 집을 목정평 세미나장소로 계약하고 전남목정평회장인 김현삼목사와 함께 광주전남 목정평 재건조직을 회복을 논의하였다. 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정등룡목사와 전도사를 포함한 젊은 목회자를 중심으로 단 시일 내에 광주'젊음의 집'에서 4.24-4.27일까지 호헌저지 및 직선제개헌을 주장하기 위한 목정평 연수계획을 확정하고 광주전남 확대 재건모임을 준비했다.

 

이때가 오래전부터 활동해 오던 전남목정평에서 사실상의 광주전남 목정평으로의 명칭변경과 확대 재건총회에 해당되는 시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광주전남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회장/.김현삼목사, 총무/김성룡목사, 서기/이우송신부) 회원41(기장19,예장통합19,감리교2,성공회1)4.24-4.27일까지 34일에 거쳐 광주'젊음의 집'에서 4.13호헌철폐와 직선제개헌을 주제로 문동환박사(한신대교수)를 주강사로 모시고 목정평연수를 마치고 27일 오전에 호헌철패를 위한 새로운 결단을 하면서 성명서를 기초하면서 목정평의 차기 행보를 준비하게 되었다.

천주교는 이미 421일부터 광주교구사제단12명이 호헌저지 직선제개헌 단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광주 전남 목정평의 문제는 단식을 위한 준비된 공간이 없었다 이를 두고 고민하던 중 문득 광주YWCA 김경천총무님께 전화를 드려 사정을 말씀드리니 목사님 신부님 돈 걱정 마시고 회관5층으로 오십시오.”라는 답을 듣고 고마워할 겨를도 없이 염치불구하고 YWCA 5(숙소)로 긴급 이동해 들어오게 되었는데 목정평에서 이후에도 비용을 지불한 기억이 안난다.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전날 밤에 준비된 성명서를 채택하면서 41명중 김병균목사를 비롯하여 광주전남 목정평 소속 27명의 성직자들은 그날 즉시 단식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정하고 광주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어 광주 YWCA 5층으로 올라가서 준비 없이 곧바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다.

 

동시에 전세계의 외신들이 광주YWCA의 목정평의 단식현장으로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독일의 고백교회와 영국을 비롯한 세계성공회, 그리고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인 WCC, 아시아교회협의회인 ACC로 뉴스가 타전되면서 한국의 반독재민주화투쟁은 월드뉴스의 머릿기사가 되기시작한다.

 

이때 6층의 NCC인권위원회 사무실은 성직자 단식을 지원하고 시민홍보를 맡게 되는데 전남대 졸업반인 문기전 학생을 자원봉사직 목정평간사로 일해 줄 것을 부탁해 단식기간 내내 목정평 단식을 도왔다. 그는 후일에 YMCA의 실무자로 일하게 되었다.

 

광주전남의 많은 목회자들이 단식을 하는 동안 목회자가 속한 교인들의 애절한 기도와 지원은 단식기도에 임하는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되고 사민사회에는 그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동력이 되었으며 진보와 보수를 넘어 원로성직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했다.

 

그리고 함께하지 못한 일부성직자들은 단식준비를 위해 집에 다녀와 속속 재결집하면서 단식성직자의 숫자가 불어나는데 나중에는 KNCC성직자의 범주를 넘어 순복음교회를 비롯해 보수교단에 까지 파급되어 단식성직자의 수가 50명으로 늘어갔다. 나중에는 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를 통해 광주전남 도내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반독재민주화투쟁의 대열에서 함께하는 성과를 이뤄낸다.

 

예비단식 없이 진행된 단식의 과정 속에서 회장 김현삼목사님께서 탈수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이송이 되면서 다시 합류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는데 가까운 후일에 김현삼회장이 지병으로 소천 하셨다. 그 원인은 죽음을 담보로 한 투쟁형 목회자단식에서 시발된 지병의 악화로 볼수 있다는 견해가 나왔다. 동지들은 깊이 동감했다. 이후에도 몆 분의 목사님께서 병원으로 가셨으나 무사했다.

 

4.27일 단식기도에 들어가 이후 5.8일까지 12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던 중 서울에서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장이명남목사,허병섭,장성룡,이해학,)의 지도부에서 긴급히 광주에 내려와 단식을 중지해주시라 이제 그만 서울의 전국목협에서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단식뿐 아니라 삭발식도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와서. 광주전남 목정평의 단식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광주 전남지역의 성직자들은 주일예배를 거른 단식13일만에 돌아가 건강을 회복해가면서 510(주일)에는 자기공동체의 교회신자들과 단식성직자들은 함께 눈물겨운 예배를 드리면서 시민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는 876월항쟁을 견인해내는 광주전남목회자운동의 기여라고 평가된다.

이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장이명남목사,허병섭,장성룡,이해학,) 목사35명은 56일 상오9시부터 서울서대문구충정로2190-10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전원이 삭발하고 호헌저지 및 군부독재퇴진을 위한 단식기도에 들어갔다.(경향87.5.6 기사)

위의 기사와는 달리 호헌저지 및 군부독재퇴진을 위한 목회자 삭발 단식기도는 삭발단식 5일째 53명이 삭발을 하면서 선교교육원은 주위에 경찰에 둘려쌓여 단식성직자의 가족조차 만날 수 없었다.

결국 구호는 4.13호헌철폐와 군사독재정권 즉각퇴진으로 변하면서 광주 전주 대전 춘천 청주 부산 인천으로 확대되면서 876월의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한동안 멈칫했던 국민들의 4.13 호헌 조치에 대한 반발도 이제 보수성이 강한 종단에서도 머리를 들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보수적이던 기독교회 내에서까지 노골화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탄력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광주전남에서 출발한 한국기독교운동세력은 서서히 밀물이 되고 있었다.

 

동아일보기사에 따르면 통일민주당은 김태룡대변인의 발표 성직자단식격려성명을 통해 29일전남지역의 교직자와 서울지역의 신부들의 호헌철폐 및 직선제개헌요구단식기도와 시국선언발표에 대한 성명을 통해 이같은 신부 목사 교수들의 애국충정에서 나온 고귀한 행위에 대해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며 이들의 요구대로 속히 ‘4.13호헌선언을 철회회하고 민주화개헌논의를 개재하라고 촉구한다.(동아87.4.29 기사)

 

역사 속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영은 단식을 마친 영성의 목회자 김병균 목사(광주전남목정평회장)와 장헌권 목사 정종득 목사 등, 성직단과 기독시민대중들에게 힘을 주시어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와의 연대를 이루어 대한민국의 모든 거리를 채워 나가게 되었다

 

당시 경찰은 도심일대를 완전 차단하고 일체의 시위를 봉쇄했으나 반민주 반독재투쟁의 현장에 주저앉아 최루탄과 속칭 지랄탄이 숨을 막는 현장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대중투쟁의 불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기독교계가 일구어낸 기독운동의 쾌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2013.04.22

이우송신부/살림문화재단 다석채플 성공회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