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연구소/安哲(안철)

종교와 의학의 통전(생명의 구원)을 위하여[1]

▪살림문화재단▪ 2013. 6. 2. 02:10


안철사상

종교와 의학의 통전(생명의 구원)을 위하여[1]

                                                                              

                                                                                   글쓴이: 김 정 관

 

   [세상은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창조주 하나님의 동산이다.

    모든 생명체가 병고 없이 다툼 없이

    사랑과 정으로 살아가는 낙원이다.

    자연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

   {동물, 식물, 어류, 조류}들은

    병 없이 세상을 살다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자연의 수명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다.(안철)]

 

 

  히브리 민족은 이 세상은 하느님이 창조했고, 하느님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하느님의 동산인 에덴에서 모든 생명체와 함께 살게 했다는 고백을 그들의 경전인 성서에 기록하고 있다. 세계창조를 기록한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느님의 창조가 “하루아침에 쓰인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에 서서히 성장하는 가운데 주의 깊게 풍부해진 교설이다. (폰 라트). 또한, 창조이야기는 신화이거나 전승된 역사적 사료로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창조이야기는 히브리민족이 오랫동안 역사적 경험과 전승과정 속에서 히브리민족 그들 신에 관한 ”성숙한 신학적 결론“이고, ”정신과 신앙전통이 가장 잘 정리된 신앙 고백적 선포“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히브리인에 신앙고백을 안철은 “세상은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창조주 하나님의 동산이다.”라고 고백한다. 성서는 히브리인들이 고백한 하느님이 창조주요. 이 세상 모든 것은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의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자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에 모든 신앙의 기초요, 초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철은 히브리인들이 고백한 민족 신을 거부한다. 기독교인들이 교회라는 집에서 고백하는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지 않는다. 기독교에 유일신론적 신앙(Monotheistic Faith)을 믿지 않는다. 굳이 안철에 신관을 말해야 한다면 다원적 신앙(Polytheistic Faith)에 가깝다. 그렇다고 다원적 신앙의 신관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안철이 고백한 신은 상대적인 신관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관이다. 모든 생명을 구원하는 신만이 안철이 고백한 신이다. 성서 속에 신, 교리적인 신을 철저히 거부한다.

 

  안철에 사상(종.의.통)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독교의 성서를 이해해야 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적인 성서가 아니라, 성서 그 자체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안철은 성서를 읽으면서 한 장 한 장씩 찌어버리면서 성서를 읽었다. 버림으로써 상대적 진리를 버리고 절대적 진리를 받아드렸다. 그의 독특한 성서 읽기를 나도 계속하고 있다. 성서를 버림으로써 절대적 진리를 깨달음에 이룰 수 있다. 성서를 온전히 버릴 때 절대적 진리이신 신을 만날 수 있다. 안철은 절대적 진리이신 신을 버리고 상대적 신을 믿는 교인들을 어리석은 자로 보았고, 교인들을 종교적 중독자로 만들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목사를 사기꾼으로 보았다. 종교의 탈을 쓴 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그들에게 종교 사기꾼이라고 불렸다. 왜 세상 사람들은 길고 긴 역사를 경험했으면서 종교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인가?

 

  안철에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중국 고전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주역을 이해해야 한다. 우주자연에서부터 인생살이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온갖 이치를 풍부하고도 포괄적으로 담은 완벽한 철학 체계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논술된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철은 종교와 의학을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며 통전을 이루였다. 이원론적인 기독교관을 지양하고, 모든 것은 변화 발전하며, 생명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구원이 있고 병 없이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주역에서 말하는 모든 사물이 변화 발전하는 법칙을 이해해야 “종교와 의학의 통전(생명의 구원)을 위하여”에서 말하는 생명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안철은 생명의 구원 사상을 완성하기 위해 교회와 세상과 씨름하면서 많은 것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가족마저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안철은 한국 기독교장로회 교단으로부터 장로 안수를 받았고, 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이였으며, 군부독재시절 반정부 최전선에서 대정부 투쟁을 했던 기청회장( 한국 기독교장로회 전국 청년연합회)으로써 기독교 정신으로 이 땅에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선봉장 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버렸고, 장로이기를 거부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로이기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장로이기를 거부했다고 해야 옳다. 그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교리라는 악마를 가장 싫어했다]교회라는 곳에서 생명의 구원을 외면하고 사교집단으로 변해버린 것을 목격하면서 교회를 거부했다. 그는 말년에 저에게 [“ 기독교의 최대 사기문서가 사도신경이다”]라고 유언처럼 남기셨다. 저는 그 말을 듣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전율했던 체험을 잊을 수 없다. 저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 신학을 전공했던 신학도였으며 목회를 10년을 하면서 수백 번도 사도신경을 외우면 기도했던 사람이기에, 교인들에게 나도 사기꾼이 되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어찌 그날에 그 말을 잊을 수 있으랴!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양심이 무너지는 아픔, 그것이었다.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안철 그는 그렇게 내 인생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받았던 신선한 충격을 감당해 오고 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생명, 그것이 인류에게 화두가 아닌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부, 성자, 성신이 한 분이라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복음서의 개념이 아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Arius, c.250-336)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293-373)의 논쟁 이후 성립된 삼위일체 논쟁으로 만들어진 사도신경은 기독교교회 독단적인 교리일 뿐이다. 예수의 행적과 말을 모아 편집한 복음서에는 아버지(파테르)와 아들(휘오스)가 있을 뿐이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내가 하느님이다, 라고 말한 사실도 없고, 예수 자신이 하느님과 하나다. 는 의식은 복음서 어느 곳에도 없다. 한 사람으로 하느님에 섭리와 뜻에 순종하며, 그에 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예수는 하느님이다”라는 낡은 (초대교회 논쟁) 논쟁은 그만두기로 하자. 존 로빈슨 신부처럼 이제는 “신에게 솔직”하자. 인간들에게, 자신에게 솔직하자. 그리고 말하자. 말장난으로 절대적 진리이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을 그만두기로 하자. 예수는 하느님을 아람어로 아바(Abba)라고 불렸다. 얼마나 솔직하고, 절대자에 대한 애정 어린 친근한 표현인가. 절대적 진리는 어렵지 않다. 단순하다. 어렵다는 것은 그 속에 속임수가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 오직 하나(One), 하나만이 절대 진리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삼위일체론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은 초대교회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두 종교지도자 간에 7,8년간 신학적인 뜨거운 논쟁을 니케아종교회의(Council of Nicaea, 325년 5월)에서 325년에 조정해 만든 것이다. 두 파간에 싸움을 조정하고 야합해서 만든 결과물이 사도신경이다. 니케아종교회의에서 회의 결정한 내용이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 이였다. 기독교 경전과는 무관한 종교회의 결정이 기독교의 중심내용이 되었기에 사도신경은 비성서적이며, 하느님, 예수, 성령이 “하나”요. “한 몸”이라는 사도신경에 고백은 종교적 사기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안철에 생각이었다.

 

  안철이 사도신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다석 류영모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류영모는 “하나”가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했고, 하나인 하느님만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는 상대적 진리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 진리는 없다. 오직 절대적 진리가 있다면 “하나” 즉 하느님만이 절대적 진리이다.

저는 안철로부터 혼자 강의를 들었다. 서석 이 우송은 나보다 먼저 안철 강의를 들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서석 이 우송은 안철 사상을 잘 안다. 안철에 으뜸 제자가 서석이 아닌가? 저는 안철에게 강의를 들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그것이 나에게는 생명의 구원이었고, 하느님에 축복 이였다. 그의 가르침에 중심은 “생명과 구원”이다. 신적인 카리스마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병 없는 세상과 생명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사상에 폭이 넓고 깊었기에 수용하면서도 넘어지고 무너지는 사선을 넘으면서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 담을 넘는 사상이었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현대의학에 도전했으므로 법정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죄인이 되었다. 그는 종교와 의학의 통전을 통해 생명의 구원이 삶에 주는 자연적 기쁨에 몰두했다. 그의 위대함은 균형을 잃지 않는 몸의 조화로움과 통전적인 사고에 있었다. 조화로운 생명에 구원이 그의 실천적인 모습에 있었다. 사회와 사람이 단절된 공간에서 그는 생명의 구원을 위해 몸부림쳤고, 교회에서 이단자로 낙인 찍혀 교회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교회는 교회와 다른 사상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를 이단자라 부른다. 수많은 이단자가 “다르다는 것”을 말할 때 함께 범죄의 공범자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만든 신의 이름으로, 교회를 지탱하는 교리에 이름으로 어김없이 종교재판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그들이 만든 성스러운 장소에서 몰아냈다. 하느님을 죽이는 일도 마다지 않는다. 생명을 죽이는 피비린내를 마다지 않는다. 천도교에서는 인간이 하늘이고, 하느님이라고 했다지. 인간이 곧 하느님이라 했다지, 기독교는 하느님과 인간 위에 교회가 있고, 교리가 있다. 마치 짐승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듯이, 몰아낸다. “신들은 분파가 없다. 어느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소로우의 일기). 또한 ”하느님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가리지 않으신다(소로우의 일기).

 

  안철은 모두가 “예”하며 침묵하고 있을 때, “아니다”라고 일어섰고, 교회를 향해 아멘에 중독된 이들처럼 아멘, 아멘 하고 있을 때, “아니오”라고 교회제도를 거부했으며, 현대의학이 의학으로 현대인들에 신으로 군림하고 있을 때, 현대의학으로는 병을 고칠 수 없고 종교와 의학의 통전만이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몸으로 외친 것이 그의 위대함이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병고 없이 다툼 없이 사랑과 정으로 살아가는 낙원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갈 때, 병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만이 살려고 하면 병으로 죽는다. 풀 한 포기의 소중함과, 소 한 마리에 생명과 인간의 생명은 같다. 이 세상이 멸망으로 달리는 것은 인간만이 살려고 하는 욕심과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교만이다. 인간에 “가장 겸손한 생각만이 광산 깊은 곳에서 캐낸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순수한 광맥을 낸다(소로우의 일기)”. 인간이 병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자연과 통전적으로 교감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다. 인간이 위대해 지기 위해서는 인간이기를 먼저 포기하는 일이다. 균형을 잃지 않고 모든 생명체들과 자연스럽게 발바닥으로 서서 함께 살아갈 때 인간은 병에 걸리지 않고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의 구원을 받는 축복이 있다.

 

  인간들이 다른 생명체들을 소외시키고 지배하기 때문에 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낙원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병 없는 곳, 병 없이 살다 자연수명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는 곳, 사랑과 정이 있는 곳이 낙원이다. 안철은 철저히 피안의 세계를 거부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늘나라를 거부했다. 허상의 세계라는 것이다. 현세에서 병 없이 사는 것이 낙원(하느님 나라)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안철 사상을 이해하려면 성서와 주역을 이해해야 하고, 다석 류영모를 알아야 하고, 동무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연구하지 않고는 안철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 저는 안철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성서와 주역, 그리고 류영모, 사상의학을 이해하고, 알고 연구하면서 그의 사상을 조금씩 이해해 갔다.

 

=필독서=

1. 성서(창세기 1,2장/ 레위기)

2. 주역

3. 사상의학

4. 다석 류영모 전집(1-6권/ 어록, 명상록, 얼의 노래, 박영호 풀이/ 두레출판사)

 

  안철은 “자연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 {동물, 식물, 어류, 조류}들은 병 없이 세상을 살다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자연의 수명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다.“ 고 말했다. 병 없이 세상을 살다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려면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때 가능하다. 안철은 자신에 몸으로 임상시험을 하면서 4가지 체질에 따른 음식을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누었다 . 이 글을 계속 써 가면서 체질감별 방법과, 체질에 따른 음식, 손에 놓는 사암 침을 놓는 자리를 차례로 소개할 것이다. 또한 안철로부터 치료를 받고 병 없이 사는 사람들에 간증을 소개하고, 지금까지 철저히 음식을 가려 먹으면서 병원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지 않고 구원에 삶을 사는 이들을 소개할 것이다.

 

  신이 주신 성전(몸)인 내 몸을 몸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 안철은 음식을 골라 먹는 행위를 예배라고 부른다. 내 몸을 신의 자연 섭리에 맡기는 것이 병 없이 사는 방법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자기에게 맞는 음식만 먹는다. 그러기에 병 없이 살다 자연수명이 다하면 간다. 오직 인간만이 모든 음식을 먹는다. 멸종한 공룡에 운명을 보지 못한다. 인간이 멸종할 수 있는 원인은 음식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죽으면 하느님을 믿든 믿지 않든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온 곳이 흙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섭리가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하늘나라는 인간들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지 못하고 만들어 낸 허상에 세계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신의 섭리고,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수명을 사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지 하늘나라는 하느님에 축복이 아니다. 안철은 병 없이 세상을 살다가 자연수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와 의학에 통전에서 주장하는 생명의 구원이다.